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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국의 초중학교에서는 교과부의 무리한 교육과정 삽질로 대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6월이면 학기말을 바라보면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때아닌 내년도 학교교육과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교육과정은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을 비롯한 학교교육의 설계도다. 학급이 1년 단위로 편성되기 때문에 교육과정은 보통 연말에 전체 학생 수나 교사 수급,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올해는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이 상반기부터 내년도 교육과정을 짜거나 늦어도 9월까지는 마무리하라는 재촉에 학교가 정신이 없다.

 

대체 교과부는 왜 이렇게 재촉하는 것일까? 그건 MB 정부가 멀쩡한 교육과정을 자기 입맛에 맞게 바꿔서 작년 연말에 2009개정교육과정(교과부 2009-41호)를 고시했기 때문이다. 보통 교육과정을 바꾸는 데는 3~5년이 걸리고 고시하고 2년 뒤 초등학교부터 연차적용한다.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 내용을 바꾸고 교사 연수하고 새로운 틀을 짜고 사회적 준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학생들이 진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교육과정을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속전속결에 교과서도 없이 무조건 시행해라?

 

그런데 2009개정교육과정은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총론 먼저 고시하고, 교과 내용은 지금 고쳐서 내년에야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장 내년부터 초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적용하라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당장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교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주문할 학생들 교과서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교사들의 전보이동이나 임용도 미리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다. 내년도 교육과정을 미리 고민하자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2009개정교육과정이 지금 학교 현실이나 학생들의 상황과 맞지 않고 아직 교과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자체의 학문적 문제나 현실적 문제는 더욱 많다.

 

교과부 발표에 따르면 2009개정교육과정은 MB정부의 교육과정선진화정책에 따라 학년별 교육과정을 학년군교육과정(초등 1,2/3,4/5,6학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전환하고, 교과군을 도입하여 학기당 이수과목수를 8개 이내로 줄인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도록 창의적 체험활동을 도입하여 사교육도 줄이고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것이다.

 

교육계는 2009년부터 2007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어 학생들이 7차교육과정, 2007개정교육과정, 2009개정교육과정 3개나 배워야 하니 혼란이 크다고 반대했다. 또 학습부담은 입시구조나 국영수 등 입시교과가 더 크니 교육과정을 무리하게 뜯어 고치기보다는 적용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제대로 연구하고 사회적 논의기구부터 만들자고 했다.

 

교과부는 이런 교육계의 우려를 무시하고 교육과정 개정을 몰아붙이더니 올해부터 학교자율화라는 이름으로 2009개정교육과정을 조기 실시하여 학교현장은 4개의 교육과정이 뒤섞여서 혼란에 빠져 있다. 개인 컴퓨터의 프로그램마저 충돌을 하면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데 전국의 학교에서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교육과정이 4개나 섞여 있으니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때문에 2009개정교육과정은 작년에 미래형교육과정으로 추진될 때부터 '교육대운하', 'MB교육과정', '졸속교육과정'으로 비판받았다. 4대강 사업이 군대까지 동원한 밤샘공사로 뭇생명을 파헤치는 것과 같이 학교 현장을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다.

 

국·영·수 집중교육과정

 

교과부는 2009개정교육과정이 획일적이고 입시 중심의 교육과정을 벗어나 학교별로 다양한 교육과정을 전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는 어떠한가? 우선 교과(군)별 수업시수 20% 증감에 따라 국영수가 늘고 나머지 교과의 시수가 축소되고 있다. 일제고사와 입시중심의 교육과정운영이 이루어지는 학교 현실에서는 이미 예상되는 일이었다.

 

초등학교마저 체육시수가 줄었고, 중학교에서는 공통교과인 음악, 미술, 체육, 도덕, 기술·가정과 선택교과인 한문, 컴퓨터, 제 2외국어 등의 시수가 줄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과목이 없어질 것이고, 있더라도 수능대비 자습시간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교사들의 주장이다.

 

한 국가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미래에 어떤 인간으로 자랄 것인지를 그려놓은 청사진과 같다. 대부분의 나라가 초중등교육에서는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춰 꼭 배워야 할 내용과 미래사회를 대비한 교육을 하려고 한다. 2009개정교육과정은 멀쩡한 교육과정을 뜯어고쳐서 입시에나 필요한 국영수교육을 학교장 자율로 보장한다고, 이것이 다양성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사교육비에 눌린 학부모나 과중한 학습부담에 눌린 학생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없다.

 

집중이수제 때문에 전학생은 무조건 피해자

 

게다가 2009개정교육과정은 집중이수제(모든 교과를 주당 4시간 이상 배우도록 과목수를 8개로 줄이는 것) 때문에 도덕,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실과(기술·가정), 제2외국어와 선택교과 등 국어, 영어, 수학을 뺀 나머지 교과를 학교선택에 따라 다른 학기에 배우게 된다. 이 때문에 전학을 가는 학생들은 같은 과목을 배우거나 못배우는 교과가 생기게 되어 결국 피해를 입게 된다. 특히 전학을 자주 하는 초등학생들의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하다. 교과부는 시도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책임을 떠밀고 있다.

 

교육의 효과 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학생들의 발달 특성이나 교과의 특성에 따라 적은 내용이라도 꾸준히 배워야 할 것이 있고, 특정 시기에 집중해야 하는 내용이 있다. 이 중 학생들의 감성이나 도덕성, 신체활동과 관련된 교과나 활동은 발달단계에 맞춰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아동기의 감성발달은 이후 이성발달이나 지적 성장의 직접적인 토대가 된다.

 

그런데 이런 내용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할 교과부는 이것도 학교장 자율이라고 강변한다. 학교장들은 학부모 설문조사로 해결하려고 한다. 당장 입시서열화 구조에서 내 자식이 유리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은 주지교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그래도 전인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교육과정 파행을 지적하면 학교에서 절차만 밟으면 문제가 없다고 발뺌한다.

 

대체 교과부는 왜 있는 것일까? 이렇게 하려면 아예 문을 닫는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교과서? 없으니 알아서 해라

 

집중이수제를 하려면 교과서도 바꿔야 한다. 지금은 학년군 체제에 맞는 교과내용도 개발되어 있지 않고 개정교육과정의 교과서는 2014년에야 다 보급될 예정이다. 현재 학년별 체계로 만들어진 교과서를 그냥 쓰기에는 문제가 많다. 3학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을 1학년이 배우면 너무 어렵고, 1학년 것을 3학년이 배우면 수준이 맞지 않는다.

 

계절과 시사를 고려해 만든 교과서를 아무 때나 쓰려면 수업에 몰입하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다. 봄노래를 가을에 부른다고 생각해보자. 초등학교는 교과의 경계를 벗어나 주제 중심 통합 수업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현재 학년별 학기별 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비판에 대해 중등에서는 그나마 교과서라도 다행이라고 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당장 내년에 2009개정교육과정을 적용하려고 해도 안 나온 교과서가 많기 때문이다.

 

중학교에는 내년에 1, 2학년 교과서밖에 없고, 고등학교는 1학년 교과서밖에 없다. 교과부는 아직 안 나온 교과서는 7차교육과정 교과서를 그대로 쓰라고 한다. 교과목 자체가 새로 생겨서 7차교과서도 없는 것은 인접교과 교과서를 쓰거나 교사가 알아서 가르치라고 한다.

 

교육과정 총론은 2009개정교육과정, 교과서는 내용체계가 다른 7차, 2007개정교과서를 섞어서 가르치고, 그나마 헌교과서조차 없으면 알아서 해라? 이러다보면 평가 과정이나 내신을 낼 때 불공정 시비도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걸 자율성이라고 해야 할까?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까?

 

한 학기 내내 자기 반 수업 한 번 못하는 담임

 

학년, 학기 집중이수제는 학급담임 구조와도 맞지 않다. 지금은 그 학년 수업을 하면서 담임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2009개정교육과정에서는 국영수 외에 모든 교과가 다 학년, 학기 집중이수제에 해당된다.

 

이렇게 되면 수업시수가 적은 예체능 교과 교사들이 담임을 맡게 되면 한 학기만 수업을 하고 한 학기는 다른 학년 수업을 해서 내내 얼굴을 못보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수업도 한 번 안하는데 어떻게 담임의 역할을 하고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주지교과 교사들만 담임을 시켜야 할까?

 

초등도 예외 없는 교과구조조정, 아이들의 미래와 직결

 

집중이수제 때문에 늘어나는 과원교사, 기간제 교사도 문제이다. 수업시수가 줄었거나 개설되지 못한 과목교사들은 복수전공을 통해 교과목을 바꾸거나 부정기 전보를 당할 수 있다. 아니면 순회교사·상담교사·자습감독교사라도 해야 교직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이나 학회에서 교과목간 구분이 명확하고 폐쇄된 구조여서 대학 4년간 전공을 하고 학교에서 잡무에 시달리며 꾸준히 가르쳐도 교과목 전문성을 기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단기간의 보충교육으로 다른 교과목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결국 교사들의 질이 낮아지면서 학생들의 수업의 질까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모두 입시교과로만 몰릴 것이니 보통 공교육에서조차 교과와 학문의 다양성이 보장받지 못하고 대학에서는 더더욱 위축될 상황이다.

 

선택받지 못하면 나가야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시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생기는 교과, 교사 구조조정은 정상적인 사회발전이나 학문적 연구,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나온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의 과중한 입시교과 학습부담,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한 학벌사회 서열화구조에서 공교육에서 책임져야 할 교육을 국가가 "자율"의 이름으로 사실상 입시교육의 먹이로 놓아버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이다.

 

여기에는 22조에 이르는 4대강 사업예산 때문에 무리하게 정규교사를 줄여야 하고, 동시에 교사를 보따리장사로 전락시켜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소규모 학교나 시골 중등학교에서는 예체능이나 인성교육을 고민하고 담당할 교사가 한 명도 남아있지 못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조차 올해 이미 학교자율화라는 이름으로 주지교과만 늘리고 나머지 교과는 홀대받고 있다.(놀시간 없는 초등학교, 체육시간도 빼앗겼다) 기초단계에서마저 균형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첫단추부터 잘못 꿰는 셈이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입시교과만 배워서 행복해질까? 미래 사회의 문제가 입시교과만 열심히 배운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생기는 교과나 교사의 구조조정은 이렇게 학생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우리 나라 학문, 예술의 다양성까지 저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교과와 무관한 초등교육현장마저 교과의 구조조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09개정교육과정 폐지가 대안

 

그럼 대안은 없을까? 교육과정자율화를 표방한 2009개정교육과정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는데, "자율화"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적합한 준비도 없이 무조건 수업시수 20%증감, 집중이수제로 학기당 이수 과목수 8개를 고수하는 형식에 휘둘리기 전에 현재 아이들이 배워야 할 교육과정에 눈을 돌려야 한다.

 

교사는 교수학습을 하는 입장에서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하고,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현재 바뀌는 교육과정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현재 2007개정교과서를 보면 초등학교는 학년보다 2-3단계 높은 내용들이 많고, 3학년 수학과 사회, 과학을 보면 중고등학교나 대학에서나 배울 법한 내용이 나와 있어 교사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교과 내용이 어렵다는 비판은 중학교에서도 나오고 있다.

 

시도교육청은 교과부의 무리한 요구에 맞추기보다 진정한 수요자 만족과 교육과정 정상화를 위해 현장 실사에 나서야 한다. 그 동안 시도교육청의 교육과정 담당자들은 교과부가 시키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6․2 지방선거로 전국이 진정한 민선교육감, 자율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당장 초등학교는 결손을 보충할 교과서가 없어 수업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교과부는 나몰라라 하고 시도교육청은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한다.(그림의 떡 초등교과서) 시도교육청은 교과부가 만든 2009개정교육과정 문서에 제목만 바구거나 교구도 갖추고 돌봄교실도 만들라고 하면서 정작 학교에서 각종 잡무와 수업공개, 평가업무에 휘둘려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는 현실은 전혀 모른 척 하고 있다. 교사들이 7차교육과정, 2007개정교육과정, 2009개정교육과정 이름조차 헷갈리고 교육현장이 엉망이 되어가는데에도 교과부에 교육과정 개정 중단을 요구하기는커녕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큰소리친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은 교과부의 무리한 2009개정교육과정 추진에 있다. 교과부는 학교 현장을 공사판으로 만드는 2009개정교육과정 시행을 중단하고 학생들이 쓸 교과서 만드는 데에나 제대로 신경을 써야 한다. 진정한 교육개혁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교육시민단체, 학생들과 함께 미래교육의 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07개정교과서와 새로 만드는 2009개정교과서가 다 나오는 2013년까지는 2009개정교육과정 적용을 보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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