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15일) 새벽 유시민과 김문수의 TV 토론을 봤습니다. 토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시민의 압승이었습니다. 맥락을 잡지 못하고 미리 준비한 형식논리만 되풀이하는 김문수가 실망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변혁운동의 최일선에 섰던 양반이 그렇게까지 노선을 급선회한 데에는 뭔가 깊은 실존적 고민이 있었겠거니,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거든요.

 

어제 토론을 지켜보니 그 이유란 게 빤히 보여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GTX라는 지하고속철도 얘기를 할 땐 황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한때 아방가르드였고 치열한 고민을 했던 사람이라도 아차 하는 순간 저렇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것, 기득권의 힘은 사람의 지성마저도 부식시킨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유시민은 인정할 건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논지와 맥락을 놓치지 않는 내공을 보여주었습니다. 듣기에 따라 비꼬는 말일 수도 있지만, (김문수가) 잘 맞지 않는 당에 들어가 왕따를 당하면서도 그걸 이겨내고 현재의 자리까지 오른 성취를 칭찬하는 대목에선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소위 유빠는 아니지만, 단순한 지방선거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이번 선거에서 유시민이 강력한 태풍의 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염려가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코디가 안티'라는 점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보면 옥의 티일 수도 있지만(그래도 자꾸 신경이 쓰이더군요), 그렇지 않은 쪽에서 보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현대 정치는 이미지의 정치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잖아도 고깝게 보는 시선들이 많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링에 올라온 그를 궁금해하는 대중들과 만나는 첫 TV 토론이니만큼 토론의 내용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유시민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가 호감을 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빗어넘긴 듯한 직모가 그의 지적인 눈매(시인 김수영을 닮은 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샤프한 프로필과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카메라에 잡힌 그의 모습은 시쳇말로 '깬다'였습니다. 드라이질로 힘껏 세운 헤어스타일, 과장하면 가부키 배우처럼 짙은 메이크업은 그의 장점인 서글서글한 눈매를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메이크업이 짙다 보니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그만큼 확대되어 보였습니다. 토론이 끝나갈 무렵 안경을 썼을 때 그나마 이런 불편함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습니다만. 관련 뉴스 댓글에 유시민이 미국 영화 <마스크>의 '짐 캐리 같다'는 악플을 봤을 때 은근히 공감이 가더군요.

 

이건 아마도 방송사 메이크업 담당의 손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본인이 이런 것에 무심하다면 옆에 있는 사람이라도 체크를 했어야 하는 사안인 거죠. 만일 캠프 내 전담 스타일리스가 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유시민의 외모가 가진 장점을 잘 살려줄 제대로 된 선수를 채용해야 합니다. 국밥집에서, 현충원에서 간교하게 만들어내는 거짓 이미지가 아니라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유시민을 잘 드러내줄 코디가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는 표정 관리의 문제입니다. 특히 상대편이 발언하고 있을 때의 표정은 유시민의 신뢰성을 좀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비웃는 웃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특히 위에 언급한 과도한 메이크업이 그 표정을 과장되게 증폭했을 때는 아슬아슬하기도 했습니다.

 

특유의 전복적 유머와 함께 짓는 유시민의 썩소는 무척 매력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남발되면 감점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카메라에 비치는 테이블 아래 발의 위치나 자세 하나에도 많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을 섬세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이미지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역량을 캠프 내부에 조속히 만들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 장황하게 써놓고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아, 내가 유시민을 이렇게나 좋아했던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그래서 억장이 무너지는 저들의 거짓과 만행을 지켜보면서 쌓인 분노가 희망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유시민이 만들어줄 세상에 대한 희망보다, 말도 안 되는 지금의 상황이 종식되었으면 하는 희망 말입니다. 좋건 밉건, 유시민이 저 산성을 붕괴시킬 버블제트 어뢰의 뇌관이라는 판단에서 갖게 되는 희망 말입니다.

 

요즘 제가 심취해서 보는 미드가 하나 있습니다. 라이 투 미(Lie to me), 즉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드라마입니다. 라이트만 그룹은 표정심리학을 통해 거짓말을 가려내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미세한 얼굴 근육의 변화나 몸짓을 관찰하면 거짓말이 보인다는 거죠. 드라마는 '거짓말'을 포착함으로써 '진실'을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유시민 캠프의 누군가가 단 하루만이라도 시리즈를 열공한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런 권유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태그:#유시민, #TV토론, #이미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