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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전 세계 극장가에는 <그래비티>의 광풍이 불고 있다. 얼굴과 대사가 나오는 인물은 두 명뿐인 단출한 영화가 슬리퍼 히트를 기록하며 제작비의 열 배 가까운 흥행수입을 올리고 있다. 우주라는 절대 고독의 공간에 홀로 던져진다는 근원적 공포가 관객의 무의식을 강렬하게 자극한 덕분일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중력(gravity)'은 러닝타임의 끝 무렵에 잠깐 등장한다. 천신만고 끝에 지구에 불시착한 뒤 땅을 딛고 일어서는 여주인공은 온몸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대책 없이 광막한 우주로부터, 아이가 울고 강아지가 짖는 지상의 일상 속으로 귀환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문단의 새로운 재능으로 떠오른 리즈 무어의 두 번째 장편소설 <무게-어느 은둔자의 고백> 또한 일종의 중력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라는 행성이 그 위에 있는 물체들을 잡아당기는 힘이 중력이라면, 지상에서의 삶이 인간의 존재와 영혼을 내리누르는 힘이 무게(Heft)라는 관점을 이 묵직하고도 감성적인 소설은 견지하고 있다.

지상의 우주정거장

 리즈 무어 지음 /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13,000원
 리즈 무어 지음 /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13,000원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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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몸무게 때문에 남들보다 서너 배의 중력을 느끼는 주인공 아서는 10여 년째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은둔생활자다. 우주정거장처럼 적막한 공간에 잠시나마 활력이 도는 시간은 음식을 준비하고 먹을 때뿐이다. 일상의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운동이라곤 거실 소파에서 주방으로, 다시 침대로 이동할 때 걷는 몇 발짝이 전부다.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끈은 과거 대학교수 시절에 알게 되었던 어느 여학생(샬린)과 십수년간 이어온 편지 교류였다. 그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뿐만 아니라 식탐으로 비대해진 몸과 은둔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히 숨겨왔던 터였다.

한동안 뜸했던 샬린에게서 연락이 오고, 편지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고교생 아들의 진학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말에 아서의 견고한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10년 동안 집안 곳곳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를 치우려고 부른 미혼모 가사도우미는 아서의 고립된 삶에 유쾌한 균열을 일으킨다.

소설의 내러티브는 은둔생활자 아서와, 샬린의 아들인 켈이라는 두 남자의 1인칭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아서가 음식과 고독에 중독되었던 것처럼 샬린 역시 술에 중독된 채 외로움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충격적인 샬린의 자살에 이어 세상에 혼자 남은 켈이 짊어진 신산한 삶이 아서의 무거운 삶과 변주된다.

이 지점이 바로 소설의 매혹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아서의 독백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샬린에 대한 궁금증을 당사자의 관점이 아니라, 아서와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사춘기 아들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한 인간을 둘러싼 여백을 마치 수묵화처럼 드러내 보임으로써 존재의 진면목을 포착하는 작가의 솜씨는 그 자체로 쾌감을 준다. 본인이 잘 알 수도 있는 여성의 관점을 과감히 포기하고, 늙고 어린 두 남자의 내면으로 들어간 작가적 도전이 빛을 발한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 고독의 무게, 중독의 무게가 이 작품의 출발점이지만, <무게>는 <그래비티>와 반대 방향에서 희망을 찾는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한 걸음 세상으로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삶을 옥죄고 있는 중력장을 벗어난다.

아서가 10년 만에 현관을 나서 한 블록 떨어진 공원까지 산책을 다녀오는 몇 시간의 사투는, 샌드라 블록이 우주정거장들을 갈아타고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만큼이나 스릴 넘치고 감동적이다. 켈이 자신의 양부를 찾아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노동자인 그 아버지가 건네준 전 재산 100달러 지폐로 차에 기름을 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결코 슬프지 않다.

그 순간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로켓을 워밍업시켜 세상 속으로 발진시키기 위해서는 곁에 있는 누군가의 온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손 한 번 내밀고 밥 한 번 같이 먹는 관심만으로도 점화될 만큼 그 로켓의 연료는 휘발성이 강하다.  

얼마 전 우석훈 박사가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어느 금요일 밤, 홍대앞 단골 곱창집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늘상 한적하던 식당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고 골목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 일행에게 물어봤더니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 그렇다더군요. 홍대앞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라고도 하고요.

<88만원 세대>에도 썼지만 저는 한국의 청년들이 급격하게 파시스트화 되고, 일베와 같은 히키코모리들이 대세가 될 거라 내다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광경을 보니, 적어도 우리나라 청년들은 그런 길로 가지는 않겠다 하는 안도감이 들더군요. 일주일에 한 번 광장으로 나와 친구들과 만나 술 마시는 문화가 살아 있는 한, 히키코모리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우리 청년들에 관해 굉장히 희망적입니다."

슬픔은 슬픔으로 이긴다 했던가. 가을이라 그런지 '세상이 저 모양이라' 그런지 산다는 일이 무척이나 스산한 요즈음, 고독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설 한 권 들고 침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작위적이지 않은 온기와 희망 한 자락도 느낄 수 있는 건 덤이다. 여력이 된다면, 내 곁에 있는 아서와 샬린과 켈을 한번쯤 돌아봐도 좋을 일이다.

* 이 작품을 쓴 리즈 무어는 창의적 글쓰기(Creative Writing)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 그녀의 길거리 공연을 감상하러 가기


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문예출판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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