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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 등 향군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주최로 열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연기 촉구 특별강연회'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이 불안한 안보상황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상훈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 등 향군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주최로 열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연기 촉구 특별강연회'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이 불안한 안보상황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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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에이, 속상해서 원……."

지난달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해 재향군인회(이하 향군) 회원인 김민형(가명, 70)씨는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굼뜨게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앞을 서성이다가 짜증이 난 듯 계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긴 20층이에요"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군인'다운 씩씩한 목소리로 "상관없어"라며 양팔을 휘저었다. 그의 한 손에는 빵과 음료가 담긴 흰색 봉투가 꼭 쥐어져 있었다.

20일 낮 12시경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앞은 이제 막 끝난 강연회를 듣고 나온 300여 명의 향군 회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앞서 회의장에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향군 주최로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 연내 매듭' 촉구 특별강연회가 열렸다.

박상훈(가명, 71)씨는 회원들이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간 뒤에도 한참동안 로비 소파에 앉아 지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대화의 주제는 천안함 침몰 사태인 듯싶었다. 그는 "여기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의 대응태세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에 상당히 분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국가안보체제가 반쪽 났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박씨는 군의 보고체계가 미숙했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군이 너무 해이해졌다. 이게 군대냐"며 "사고 발생 사실을 (합참의장에게) 50분이나 늦게 보고했다는데, 그 시간이면 (북한) 전투기가 몇 번은 때렸을(공격했을) 시간"이라고 혀를 찼다.


"안보 위기" 목소리 높였지만, 이명박 정부 탓은 안해

이상훈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주최로 열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연기 촉구 특별강연회'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을 통해 불안한 안보상황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상훈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주최로 열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연기 촉구 특별강연회'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을 통해 불안한 안보상황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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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박씨의 말대로, 이날 강연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모두 이번 천안함 침몰 사태를 두고 국가안보체계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었을까? 적어도 강연자들의 강연 내용만을 본다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오히려 이들은 사실상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의 도발'로 간주하고, 보복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특히 천안함 침몰 사태를 계기로 전작권의 전환을 연기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태로 군의 대비 태세에 큰 허점이 드러났지만 정작 안보를 강조하며 탄생한 이명박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선 박세환 향군 회장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말로만 엄포를 놓고 쌀과 비료를 퍼다 주면 말 잘 들을 것이라는 오판이 오늘의 사태를 가져왔다"며 이번 참사를 지난 정부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또 "이번 사태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전작권과 연합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며 "불행한 사건이지만 이번 침몰 사건을 계기로 전작권 연기 문제를 더욱 힘 있게 압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북한에 대한 보복조치를 전제로 한 발언이다.

그는 "북한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지 않으면 이런 도발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보복 절차에 들어가면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나?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우리의 응징에 겁을 먹고 사과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상훈 전 연합사 부사령관(전 국방부장관)도 "친북 좌파정권 10년 동안 많은 부분에서 멍들고 상처 입었다"며 지난 정부의 책임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채명신 전 주월사령관은 아예 "지금 당장 전시체제로 전환하고, 전작권을 한미연합사에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천안함 사고에 대한 군 대비태세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원인 규명을 위한 각계의 논의와 주장들을 색깔론으로 폄훼하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군함이 암초에 부딪혔다거나 한국군 상호간에 오발이라는 등의 엉터리 같은 소문을 퍼뜨려서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국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냐, 대한민국이냐"고 반문한 뒤, "이번에 북을 응징하더라도 앞으로 우리 내부에 있는 적을 부각시켜서 그들을 샅샅이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향군이 채택한 결의문에서도 "정부는 금번 사건에 대해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고 사실을 왜곡해 혼란을 초래한 친북좌파 세력을 척결하라"는 촉구가 이어졌다.


"어버이연합이 주먹다짐을 해야 할 곳은 청와대"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희생 장병 추모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희생 장병 추모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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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하루 전인 19일 청와대에서도 향군의 강연회와 비슷한 주문들이 터져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외교안보자문단 오찬 간담회에서다. 이 회의에는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현홍주 전 주미대사, 안광찬 전 비상기획위원장, 하영선 서울대 교수, 남주홍 경기대 교수 등 자문위원 10명이 참석했다.

자문위원들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전시작전권 전환의 재검토 필요성이 커졌다"고 조언했고, 이 대통령은 이번 천안함 사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물론 이 자리에서도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나 군의 대비태세에 대한 지적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자문단은 조용히 있는데, 이 대통령이 나서서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안보의식을 강화하고 국가안보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이런 기류는 보수신문에서도 역력하게 보여진다. <조선일보>는 지난 17일 <지난 10년 누적된 군 기강과 정신력 문제 점검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천안함 침몰 사태의 책임을 노무현·김대중 정부에 돌렸다. 그 근거에 대해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천안함 사태 발생 초기 군은 사고 시각을 두고 세 차례나 말을 바꿨다. 사고 당일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사고 발생 후 각각 52분, 49분이 지나서야 최초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합참 근무수칙에 따라 즉각 상황을 보고했어야 할 합참 지휘통제반장이 보고를 깜빡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에 '깜빡할 일'이 따로 있지 우리 군함이 두 동강 난 사태의 보고 경로나 단계에 대한 근무수칙을 어떻게 '깜빡할' 수 있는가.

그날 공군 전투기 편대는 천안함 폭발 후 1시간 18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출동했다. 우리 군함이 괴폭발로 침몰한 초비상 사태에, 더구나 적기가 발진해 10분도 안 돼 영공을 유린할 수 있는 지리적 상황 하에서 군간 협력이 이래서야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입체적 작전이 가능하겠는가. 이 상황에서 북의 전투기가 뜨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전투기를 띄우지 않았다는 게 말이라도 되는 이야기인가."

<조선일보>는 "우리는 군의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또는 어느 개인의 순간적 판단 착오로 빚어졌다고만 보지 않는다"며 지난 1999년, 2002년 발생한 1, 2차 연평해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만 2년을 넘어 3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천안함 침몰 사태를 과거 정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현직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인데, 짧게는 8년 전, 길게는 11년 전 사건을 언급하는 것도 억지스러운 대목이다. 결국 <조선일보>가 세세하게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를 향하고 있는 셈이다.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지난 16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이번 사건 최초 보고가 지연되고 일부 조치가 미흡해 국민의 불신과 의혹을 초래하게 돼 송구하다"며 "이 부분에 대해 감사원 직무감사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명백하게 이명박 정부에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6일 오전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이 "천안함 침몰사고의 중립적 진상조사를 위해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일 오전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이 "천안함 침몰사고의 중립적 진상조사를 위해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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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6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3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4번째 안보장관 관계회의 때 '해군이 초기대응을 잘해서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냐"고 반문했다. 다음은 당시 송영길 최고위원의 연설 중 일부다.


"사고 발생 12일이 지났는데 이번 사태가 사고인지, 적의 공격에 의한 피습 사건인지 성격 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재난사태인가 안보사태인가 둘 중 어디에 해당되더라도 국가안보체제가 두 동강 난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이 국가안보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하고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참여정부 때 만들어 놓은 위기관리 매뉴얼 시스템을 다 파괴하여 버리고 국가안보위기 관리능력을 형편없는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기능을 무력화했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기능을 격하시켰다가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사망하고 나서야 뒤늦게 복원했다.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총리실 비상기획위원회를 해체하는 등, 그야말로 체계적으로 안보의 기반을 파괴해왔다. 사태 발생 시각도 특정하지 못하고 각종 재난 구호장비, 시설, 조직의 위치, 협조 경로, 심지어 가족들에게 비상연락하는 절차조차 제 때 취하지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북한 공격설'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국방부장관 말을 추론하면 북한이 UFO 수준의 잠수정과 레이더에 안 잡히는 스텔스 어뢰 등 신병기를 개발했거나, 아니면 우리 해군의 레이더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를 모르고 방치하여 작전 중인 초계함이 우리 측 영해에서 피격되었다면 국방부 장관 문제가 아니라 내각이 총사퇴할 중요 안보 위기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어버이연합이 주먹다짐을 해야 할 곳은 아사달 노인회가 아니라 청와대"라고 했다. 지난 17일 극단적인 보수 성향 단체인 어버이연합이 "천안함 사고는 북한과 무관하다"는 취지의 좌담회를 열고 있던 '아사달 노인회' 회원들을 때려, 큰 부상을 입혔던 사건을 빗댄 말이다.

향군과 보수언론을 비롯한 안보 중시 세력들의 투철한 국가관이 언제까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될지 주목된다.


태그:#천안함 침몰, #초계함 침몰, #재향군인회, #전시작전통제권,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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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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