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치과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다가 마취가 풀려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멀리 있던 사람도 아니고 전 직장 동료의 이야기다. 뼈에다가 '두두두두...' 하면서 신나게 구멍을 뚫고 있는 도중이었단다.

그 상태에서 마취가 풀려버렸으니 고통과 공포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당연히 그는 아프다고 아우성을 쳤고 간호사들이 달려와서 진정시키고 다시 마취주사를 놓을 때까지 한바탕 난리를 벌여야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치과장비가 중세의 고문도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어떤 공포는 소리의 형태로 다가온다. 한밤중의 귀곡성이 아니라, 한낮의 치과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치료실 의자에 앉아서 치과용 드릴이 입안으로 들어오며 '윙~'하는 소리를 들을 때 두려움을 느낀다. 콘크리트 바닥을 뚫어버리는 공사장의 대형 드릴처럼, 치과 드릴이 충치로 허약해진 내 어금니 가운데를 뚫고 그 밑의 신경을 건드린다면?

그건 아마 누워있던 시체도 벌떡 일어날 만큼의 통증일 것이다. 어떤 상황이던지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에 대비하라고 한다. 치과에서 최악의 상황이라면 수술도중 마취가 풀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10년 만에 치과에 갔다

치과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치과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10년 전에 충치치료를 하면서 위아래 어금니 여러 개를 금으로 때운 적이 있다. 얼마전에 그중 한 어금니의 금이 어디론가 빠져버렸다. 양치질하다가 빠져서 물에 쓸려가 버렸는지, 아니면 밥 먹다가 함께 삼켜버렸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빠져서 치과에 다시 가야한다는 사실이다.

치과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치과에 갔고 턱뼈 및 치아 엑스레이 사진과 치료받을 부위 사진도 함께 찍었다. 간호사는 때운 부분이 떨어져 나간 어금니 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주었다. 나는 무식한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이거 안 때우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되요?"
"그냥 두면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 드실때 자극이 많이 느껴질 거에요. 그 자극 때문에 나중에라도 안하실 수가 없을 걸요."

그리고 때운 부분 안쪽에서도 작은 충치가 발견되었다. 간호사 얘기대로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외의 다른 치아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으로 때우는 것을 전문용어로 '인레이'라고 한다. 오늘은 충치치료를 하고 인레이할 부분의 본을 뜬다. 2-3일 후에 기공소에서 그 본에 맞는 금을 가져오면 그것을 치과용접착제로 치아에 붙이면 끝난다.

그래서 나도 푹신한 치료실의자에 누웠다. 의자는 편안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충치가 생긴 부위가 작기 때문에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그 짧은 시간에 어떤 통증이 몰려올지 누가 알겠나.

우선 어금니 부위에 마취주사가 놓여졌다. 체질적으로 마취가 잘 안되는 사람, 또는 마취가 금방 풀리는 사람들이 있단다.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것을 치과에 와서 느낀다. 마취주사가 놓이고 5분쯤 후에 의사가 들어왔다. 입만 보이고 다른 부위는 모두 가리는 수건이 얼굴을 덮었다.

"입 벌리세요, 좀더 크게."

치료받을 부위는 제일 안쪽 어금니다. 그러니 입을 얼마나 크게 벌려야 할까. 나는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사람처럼 입을 벌렸고, '윙~'하는 소리와 함께 드릴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온몸이 긴장된다. 나는 배 위에서 깍지낀 손에 힘을 주었다.

10년 만에 치과에 가다
 10년 만에 치과에 가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사각사각하며 드릴이 어금니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치아에서 느끼는 감각을 들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취를 해서 통증은 없지만 드릴이 어금니를 긁는 감촉은 영 좋지가 않다. 10년 전에는 무슨 배짱으로 어금니 여러 개를 한 번에 치료 받았을까? 나는 치료가 무사히 그리고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거의 다 됐습니다. 좀더 참으세요."

의사는 이 말을 벌써 세 번째 반복한다. 충치부위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드릴의 감촉도 싫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도 힘들어서 못하겠다.

"다 됐습니다. 물로 입 한 번 헹구세요."

치료가 끝났다. 약간의 자극은 있었지만 통증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잠시 후에 간호사는 인레이할 부분의 본을 뜨고, 그 부분을 정체모를 물질로 임시 채워주었다.

"인레이할 때까지 음식 씹을 때 주의하세요."
"술은 마셔도 되죠?"
"예, 술은 상관없어요."

그렇게 치과를 나왔다. 대기실과 치료실에 앉아있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인레이한 금이 떨어져나간 것은 별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하나의 징조로 받아들였다.

나이 40, 몸을 돌보아야 할 때

남자 나이가 40이 되면, 그동안 자신이 몸을 어떻게 돌보며 살았는지 조금씩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몸을 제대로 관리안해 왔다면 그에 따른 이상신호를 몸 여기저기에서 보내올 것이다. 이제 나도 그 나이가 되었다. 인레이한 금이 빠진 것도 그런 신호의 하나일까?

그동안 나는 내 몸을 어떻게 관리해왔는지 생각해본다. 술을 즐기는 것 말고는 특별히 안좋은 생활습관이 떠오르지 않는다. 담배는 10년 전에 끊었고 인스턴트 커피 대신에 녹차를 마신다. 거의 매일 헬스장에 가서 유산소운동을 하며 땀을 뺀다. 170cm의 키에 63kg의 몸무게이니 비만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체질과 좋은 생활습관을 가졌더라도 신체가 노화되는 것 만큼은 막을 수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육신에도 고통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방식으로.

나의 육체에도 그런 고통이 찾아올 때가 된 것일까.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열심히 운동을 하는 이유도 언젠가는 다가올 육체의 이상신호들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 위해서다. 미루는 것은 가능하지만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감당해야할 모든 고통에 대해서 나라고 열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노화의 과정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인정할까, 아니면 그런 변화를 최대한 거부하기 위해서 발버둥칠까. 그것을 당연한 삶의 일부라고 인정하더라도, 자신의 몸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기분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더라도 치과만큼은 가고 싶지 않다.


태그:#치과, #인레이, #임플란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