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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모털 엔진>
▲ 견인 도시 연대기 1편 <모털 엔진>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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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털 엔진>은 필립 리브의 '견인 도시 연대기'의 1편이다. '견인 도시'라는 것은 움직이며 이동하는 도시다. 물론 도시가 저절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도시를 이동시킨다.

도시의 바닥에는 거대한 캐터필러 바퀴가 달려있고 도시의 하층부에는 기관실과 엔진이 있어서 도시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할 수 있다.

도시는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고 시장 같은 고위급 인사들은 주로 상층부에 거주한다. 움직이는 도시에는 성당도 있고 박물관도 있다. 바퀴 달린 타이타닉호를 상상하면 적당할지 모르겠다.

도시가 이동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지구 대부분이 황량하게 변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육지는 황무지로 변하고 바다는 메말라 버렸다면 정착생활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살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이동해야할 필요가 있다. 유목생활의 미래버전인 셈이다.

핵전쟁 이후 폐허가 된 지구

<모털 엔진>의 주된 배경인 런던도 그런 견인 도시다. 런던에는 켄싱턴 가든도 있고 블룸스베리와 런던 박물관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런던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런던은 웨딩케이크처럼 일곱층의 갑판으로 구성된 거대한 무쇠덩어리다. 런던은 이동하면서 다른 도시를 사냥한다.

견인 도시의 정면 아래에는 거대한 유압식 입이 있다. 그 입으로 자기보다 작은 다른 도시를 통채로 잡아먹는 것이다. 그렇게 런던의 뱃속인 내장 갑판으로 들어간 다른 도시는 그 자리에서 해체된다. 리무진만큼 커다란 전기톱이 갑판을 자르고 벽돌, 철, 석탄, 식량을 분류해서 창고에 쌓아둔다. 잡아먹힌 도시의 주민들은 모두 도시 하층부에서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해야한다.

워낙 자원과 식량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도시를 사냥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도시들이 생겨난 것이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아주 먼 미래다. 핵전쟁으로 생각되는 '60분 전쟁'이 수천년 전에 터지면서 지구는 폐허로 변했다.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그에 따른 지진과 화산폭발이 빈번하게 생겨났다. 극지방에서는 거대한 빙하가 끝없이 밀려왔다.

'60분 전쟁'이 왜 터졌는지도 알 수 없다. 작품 속의 역사학자는 옛 아메리카 제국이 말기에 가서 광적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한다. 끔찍한 무기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지구 전체가 종말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있다. 이들은 지진과 화산폭발을 피하기 위해 바퀴 달린 도시를 만들어서 이동하며 살아간다. 도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맨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다.

도시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음모

15세 소년인 톰 내츠워디도 태어나서 한 번도 런던을 떠나보지 못했다. 역사학자들의 모임인 길드의 3급 견습생인 톰은 런던 박물관에서 갖은 잡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언젠가는 길드의 회장이자 자신의 우상인 밸런타인처럼 되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날 톰은 밸런타인과 함께 내장 갑판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밸런타인을 암살하려는, 외부에서 들어온듯한 소녀와 마주치게 된다. 톰은 밸런타인의 목숨을 구하는데 성공하고 그때부터 톰의 인생도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자신의 우상인 밸런타인이 타인에게 복수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데.

'견인 도시'라는 독특한 소재가 흥미롭지만 이 작품에서도 중요한 것은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다. 견인 도시를 이끌어가는 고위급 인사들은 대부분 탐욕스러우며 뭔가를 숨기고 있다. 하긴 도시끼리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의 도시를 발전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탐욕스러우면서 동시에 과거의 역사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을 파괴했던 '60분 전쟁'도 잊혀진 과거의 일이다. 지구상 모든 도시를 잡아먹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한다.

대신에 이들은 자신의 도시를 강하게 만들려고 할 뿐이다. 그 앞에서 도덕이나 논리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SF에서 묘사하는 미래는 대부분 우울하지만 <모털 엔진>도 마찬가지다. '60분 전쟁'도 끔찍하지만, 거기에서도 뭔가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더욱 암담하다.

덧붙이는 글 | <모털 엔진> 필립 리브 지음 /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모털 엔진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2018)


태그:#모털 엔진, #견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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