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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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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South Korea)에서 군함이 가라앉아 군인 40여 명이 실종되었다"

지난 26일(미국 현지시각), 노란 개나리가 예쁘게 피기 시작한 미국 버지니아의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다가 모국에서 날아든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미국 라디오 공영방송인 NPR을 통해서였다. 

'뭐, 또 사고라고? 군함이 침몰되고 40여 명의 군인이 실종되었다고?'

NPR에서는 서울 특파원을 연결하여 천안함의 침몰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군함이 가라앉았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희생자 규모가 한둘이 아닌 40여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어서 라디오 볼륨을 크게 올렸다.

이번 사고는 북한과 경계하고 있는 서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군함도 그냥 침몰한 게 아니고 두동강이 나서 폭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하여간 뭔가 심상찮은 일이 크게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피 같은 젊은 군인 46명이 실종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이 지났고 사고 현장도 수온이 차갑고 유속도 빠르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비통하기 짝이 없다. 

안전사고에서 자살로... 군대 간 오빠의 죽음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나흘째인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조속한 구조작업을 요구하며 해군 관계자를 붙잡고 항의를 하고 있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나흘째인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조속한 구조작업을 요구하며 해군 관계자를 붙잡고 항의를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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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터넷을 통해 희생자 가족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피눈물과 분노, 실신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30년 전 똑같은 일을 겪었던 내 부모님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오른다.

지난 1980년 10월 8일, 내 오빠도 서해안 오이도에서 '군 복무중' 사망했다. 처음 오빠의 사망 소식을 전화로 알려온 소속 부대의 대위는 오빠가 '안전사고'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것이 나중에는 '자살'로 바뀌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건강한 몸으로 군 복무를 하던 20대 청년이 느닷없이 자살했다는 말에 아버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랫동안 싸웠다. 골리앗인 정부를 상대로.

하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힘 없는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한 싸움은 애당초 게임이 안 되었다. 군대라는 격리된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멀쩡한 청년이 서늘한 주검으로 부모를 맞이해야 했는지 그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결국 내 부모님은 이번 천안함 침몰 희생자 부모님들처럼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쓰러지셨다. 특히 어머니는 피 같은 아들의 죽음 앞에 큰 충격을 받아 눈도 잘 안 보이고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耳鳴) 증세로 한참을 고생하셨다. 뿐만 아니라 자식을 먼저 보낸 죄 많은 어미라고 그 후에는 어디 여행도 안 가셨다. 그런 상처를 가슴에 품고 계시다 결국 2년 전 돌아가셨다.

벌써 오래된 일이어서 지금은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집안의 슬픈 과거사가 이번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와 피눈물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

국방의 의무 이행하러 간 착한 자식들

내게는 친정 조카가 딱 둘 있다. 둘 다 사내 녀석인데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현재 국방의 의무를 이행중이다. 공군으로 지원을 한 큰 조카는 상병이고 육군인 작은 조카는 이병이다. 

두 아들 모두를 군에 보낸 올케의 마음은 퍽 쓸쓸할 것이다. 아들이 안전하게 제대할 때까지 걱정도 많고 조바심도 많이 날 것이다. 하긴 내 올케뿐 아니라 자식을 군에 보낸 모든 부모들의 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군대도 많이 나아져 민주화가 되었고 먹는 음식도 좋다고 한다. 지난 3월 중순에 첫 휴가를 나온 작은 조카도 군 생활에 대해 대체로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 하긴 멀리 사는 고모가 전화로 걱정스레 물으니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다행이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사고와 같은 군대에서의 대형 사고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모두 불안에 떨게 한다. 왜냐하면 국민의 의무라고 규정된 '국방의 의무'는 '정상적인'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치러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직계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아니면 사돈의 팔촌이라도 군대 문제와 연결이 안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군더더기 같지만 말 나온 김에 국민의 4대 의무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나라 헌법 제2장에는 국민의 4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의 의무(31조), 근로의 의무(32조), 납세의 의무(38조)와 국방의 의무(39조)다. 혹시 의무의 뜻을 모르는 이를 위해 부연 설명하자면 '의무'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다. 사전에서 '의무'의 뜻을 다시 찾아봤다.

[의무]
1.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 곧 맡은 직분.
예) 아버지의 의무. 윤리적 의무. 그는 맡은 바 의무를 다했다.

2. <법률> 규범에 의하여 부과되는 부담이나 구속. 법적 의무도 그 위반에 대하여 형벌이나 강제력을 가한다는 데 특색이 있다.
예)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헌법 제2장 39조)

우리나라 지도층은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27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밤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발생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건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재소집했다. 안보관계장관회의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김태영 국방부장관, 현인택 통일부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등이 참석했다.
 27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밤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발생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건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재소집했다. 안보관계장관회의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김태영 국방부장관, 현인택 통일부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등이 참석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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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씁쓸한 사실은 이번 천안함 사고와 관련하여 대통령 주재로 지하 벙커에서 열렸다는 '안보 관계 장관회의'의 참석자 면면이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대통령 유고 시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등 안보 관계 장관회의의 상당수 장관들과 청와대 비서실장, 청와대 정책실장,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모두 군 미필자(면제자)라고 한다. 

물론 합당한 이유로 군 복무를 면제 받았다면 굳이 그것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자원하여 군에 가고 싶어도 받아 주지 않아 면제를 받았다면 그것은 오히려 측은하게 여겨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남들 다 가는 군대를 심각한 문제 때문에 못 간 것이니까.

하지만 뭔가 석연찮은 이유로, 또는 고의적으로 병역을 기피했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라의 안보를 논하는 자리에 나와 말로만 안보를 외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습게도.

더욱 허탈한 것은 이런 고위층의 군 면제가 본인에서 그치지 않고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입법, 사법, 행정부 고위층 자제들의 병역 면제 비율이 일반인 면제 비율에 비해 훨씬 높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 때문에 결국 '무전(無錢)입대, 유전(有錢)면제' '무권(無權)입대, 유권(有權)면제'라는 희귀한 말까지 나온 것이다. 국민의 의무라고 못박아 놓고 국민개병제가 원칙인 나라에서 '신의 아들'은 면제 받고 '사람의 아들'만 입대를 하는 해괴망칙한 현실 말이다.  

다른 나라 지도층은 어떨까

우리처럼 국민개병제가 실시되지 않는 다른 나라의 지도층들은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지난 1월, NBC-TV <투데이> 쇼에는 바베이도스에서 자선활동을 벌이고 있던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가 출연했다. 해리 왕자는 전쟁중인 아프카니스탄의 최전선에서 공군으로 복무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는 이라크로 파병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두 지역 모두 전쟁터인 곳이 인상적이다. 그의 형인 영국 왕실 계승 서열 3위인 윌리엄 왕자 역시 육군에 이어 공군, 해군 지휘관을 모두 거쳤다.

이런 영국 왕실의 전통은 그 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필립 공 역시 해군 장교로 2차 대전에 참전을 했고, 그의 세 아들(찰스, 앤드류, 에드워드)도 모두 군 복무를 했다. 특히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 때 해군장교로 참전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자신의 아들을 한국 전쟁에 참전시켰고 중국의 마오쩌뚱 아들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그 때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병제인 미국의 경우에도 지도층과 그 자제들의 군 입대 사실은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의 상원의원인 민주당 짐 웹도 해병대로 월남전에 참전을 했고, 아들 역시 해병대로 이라크에 파병되어 군 복무를 했다. 짐 웹은 선거 당시 아들의 낡은 군화를 가지고 다니며 반전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보수주의자들로 잘 알려진 공화당의 지도층 자제 역시 군 복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대선 때 오바마에 맞섰던 존 메케인 상원의원의 아들도, 새라 페일린의 아들도 모두 이라크에서 군 복무를 했다.

외국의 경우는 이렇듯 사회지도층인 '노블리스'들이 그 신분에 걸맞는 사회적 의무(오블리주)를 다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칭 '애국' 보수를 외치는 우리나라 지도층과 그 자제들의 군 복무 실태는 어떠한지 무척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맺으면서 며칠 전 이곳에서 발행된 한 신문의 사설 첫 대목을 우리나라 지도층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위선자들은 이렇게 말해왔다. "내가 행한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행하라(Do as I say, not as I do)."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만 의무를 다하라고 말하는 당신은 혹시 위선자가 아닌지?


태그:#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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