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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자리한 충남 민속자료 제 7호인 이삼장군 고택
▲ 이삼장군 고택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자리한 충남 민속자료 제 7호인 이삼장군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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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1677∼1735) 장군은 조선조의 무신이다. 함평인 이삼 장군은 윤증 문하에서 수학을 하였으며, 정주 목사를 거쳐 함경도와 평안도의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그 후 포도대장, 훈련대장의 소임을 맡았으며 함은군에 봉해졌다. 영조 5년인 1729년에는 병조판서를 지냈다. 장군은 기계 제조와 무술에도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관서절요>가 있다. 이 집은 이삼장군이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하사 받아 지은 집이다.

고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가옥

이삼 장군의 고택은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51번지에 소재한다. 1727년에 지어진 이 집은 ㄷ자형 안채와 ㄱ자형 사랑채가 이어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안채는 정면 다섯 칸, 측면 한 칸 반의 크기이다. 세 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과 윗방, 오른쪽에는 건넌방을 두었다. 안채의 왼쪽 뒷면에는 사당이 있고, 안채의 오른쪽으로는 부엌과 연결 된 행랑채를 두고 있다. 대청의 마루에 툇마루를 덧 낸 것은 이 집의 특징이다.

현재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집은 한 마디로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채 앞으로는 문간채가 있다. 문간채는 다섯 칸으로 문을 보면서 우측에는 마구간이 있고, 솟을 대문을 마련했다. 그리고 방과 광을 들였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앞에 사랑채와 행랑채, 그리고 안채의 안방 뒤편이 연이어져 있다. 지붕을 보면 안채와 사랑채의 지붕이 조금 높고, 중앙의 행랑채는 조금 낮게 조성을 하였다.

이삼장군 고택의 솟을대문. 고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솟을대문 이삼장군 고택의 솟을대문. 고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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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에 높은 마루를 놓아 누정처럼 꾸몄다.
▲ 사랑채 모서리에 높은 마루를 놓아 누정처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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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을 높이 쌓고 안채를 드렸다. 대청은 세칸으로 꾸몄다
▲ 대청 기단을 높이 쌓고 안채를 드렸다. 대청은 세칸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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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앞에 또 툇마루를 달아 이중으로 조성하였다
▲ 툇마루 대청 앞에 또 툇마루를 달아 이중으로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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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바라보면서 좌측의 행랑채의 끝을 누각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마루를 달아내 난간을 두르고, 뒤로는 방을 들였다. 방 밑으로는 아궁이를 놓았는데, 모서리에 마루를 내달아 이곳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행랑채와 사랑채의 사이에는 안채를 출입할 수 있는 문을 달아냈다. 

집 안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우한 이삼 장군

이 문간에 이어진 행랑채는 두 칸의 방과 한 칸의 한데부엌을 두고 있다. 행랑채에는 쪽문이 밖으로 나있는데, 이 문이 부엌의 뒷문이다. 이어서 안채의 안방 바깥 담벼락이 연결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사랑채에 누마루를 놓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누마루에서 앞으로 펼쳐지는 정경을 보기도 하고, 술 한 잔을 마시고 시도 읊었을 것이다. 문제는 행랑채의 뒤편이다. 이곳에도 역시 넓은 툇마루를 놓았는데, 지붕을 빼어 달아냈다. 그냥 툇마루가 아닌 사랑채의 분위기를 닮게 만들었다.

안채의 뒤편 역시 툇마루를 놓았다. 일직선으로 모든 채에 툇마루를 달아낸 것이다. 안채의 뒤편 툇마루는 낮은 담을 둘러, 이곳이 부녀자들이 기거하는 곳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모든 채에 같은 마루를 달아냈다는 것은, 장군이 모든 집 안의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우를 했다는 것을 뜻한다.     

안채와 사랑채의 끝부분에서 만나는 안채 중문. 이 중문과 행랑채와 연결된 또 하나의 중문이 있다.
▲ 안채중문 안채와 사랑채의 끝부분에서 만나는 안채 중문. 이 중문과 행랑채와 연결된 또 하나의 중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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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에 붙은 읽가문을 들어서면 두겹으로 된 담장이 보인다.
▲ 안담 사랑채에 붙은 읽가문을 들어서면 두겹으로 된 담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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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채에 툇마루를 달아냈다. 집 안 식솔 누구나 다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 툇마루 모든 채에 툇마루를 달아냈다. 집 안 식솔 누구나 다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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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지은 집으로 일부가 변형되기는 했지만, 대체로 조선시대 전통 양반가옥의 형태를 잘 갖춘 집이다. 전국 어디를 다녀보아도 이런 형태의 가옥은 볼 수가 없다. 조선시대 사대부가들은 반상의 구별이 뚜렷하고 부녀자들의 행동을 제한했기 때문에, 이삼 장군 고택의 구성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삼장군 고택의 남다른 점 알아맞히기

안채를 들어가려면 행랑채 끝에 난 일각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사랑채 끝과 안채 끝이 맞닿은 곳에 나있는 문을 통해서 안채 출입을 할 수 있다. 또 한 곳의 문은 사랑채와 행랑채 사이에 난 중문이다.

이삼 장군 고택을 찬찬히 돌아보면 재미난 것들이 있다. 자녀들과 함께 이삼 장군 고택 답사를 하게 되면, 장군의 고택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딴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숨은 굴뚝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삼 장군 고택에는 숨은 굴뚝 하나가 대문채에 있다. 바로 솟을대문을 바라보고 좌측에 돌출이 되어있는 굴뚝이다. 그런데 이 굴뚝은 벽에 붙어, 담벼락과 똑같이 기와와 돌을 이용해 문양을 넣어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 하나의 굴뚝은 안채 대청 뒤편에 선 두 개의 굴뚝이다. 돌을 쌓아 굴뚝을 올리고, 그 위를 옹기로 마감을 한 것이 특이하다.

대문채에 숨은 굴뚝.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 굴뚝 대문채에 숨은 굴뚝.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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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편으로 조성한 일반적인 굴뚝에 옹기 연통을 내었다
▲ 옹기굴뚝 기와편으로 조성한 일반적인 굴뚝에 옹기 연통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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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답사를 하면서 무의미하게 돌아 나올 것이 아니고, 아이들과 함께 숨은 것을 찾아보면 쏠쏠한 재미가 있다. 재미가 나는 답사는 아이들도 즐거워한다. 이삼 장군의 고택은 그런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좋다.


태그:#이삼장군 고택, #민속자료, #논산, #주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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