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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잔치국수보다 맛이 진하고, 면발이 굵어요.
▲ 춘자싸롱 멸치국수 일반 잔치국수보다 맛이 진하고, 면발이 굵어요.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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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싸롱이라고 아세요? 서울에 있는 유명한 식당말구요, 모르신다구요? 그런데 싸롱이 무슨 술집 아니냐구요? 저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에요. 서귀포 표선에 있는데, 올레꾼들한테 입소문이 난 아주 소박한 식당이에요. 어떤 곳인지 소개해달라구요? 역시, 궁금해 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따라오세요!

간판없어 찾기 힘들어요.
▲ 춘자싸롱 간판없어 찾기 힘들어요.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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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리고 난 다음날이었어요. 아주 따뜻한 볕을 오랜만에 만끽한 날이었지요. 일행과 함께 춘자싸롱을 찾아간 것은 마침 점심때였어요. 춘자싸롱을 알게 된 건 최근에 나온 여행서에서였어요.

성석제의 음식 관련 에세이집에도 꽤 많은 분량으로 나와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호기심을 자극한 건, 바로 춘자씨였어요. 괜히 춘자씨를 꼭 보고 싶어졌어요. 봄이잖아요. 싸롱이라는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어떤 맬랑꼴리한 분위기도 느껴보고 싶어졌어요.

상록수다방옆이에요.
▲ 간판없는 춘자식당 상록수다방옆이에요.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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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식당을 찾아가려니 어려웠어요. 인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했는데, 옛날 위치였던 거예요. 표선면사무소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춘자 식당을 찾았지요. 도로변으로 옮겨왔다곤 하지만, 간판이 없어 찾기 힘들었어요. 식당 문에 춘자식당이라고 적힌 게 전부에요. 표선 사거리에서 빵집 방면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나오는데, 그걸 찾기가 힘들었어요.

안으로 들어가보니 테이블이 3개 있었고 안쪽에는 가정방으로 쓰는 듯 했어요. 이미 올레꾼인 듯한 분들이 국수를 먹고 계셨는데, 다들 등산복을 입고 있었지요. 원래 이 식당은 표선지역에서는 유명한 식당이래요. 가격도 저렴하고 빨리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올레꾼들이 오고 가면서 소문을 들은 거죠. 마침 손님과 대화를 나누시던 분이 춘자씨였지요. 단번에 춘자씨라는 걸, 아니 주인 아주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건 마치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멸치국수에 나오는 유일한 밑반찬
▲ 춘자싸롱 밑반찬 멸치국수에 나오는 유일한 밑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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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벽지에 붙여진 메뉴판을 보니 멸치국수와 콩국수가 전부였어요. 보통은 2500원이었고 곱빼기는 3500원이었어요. 콩국수는 4000원이었죠. 고민할 것도 없이 국수를 주문했어요. 음식은 말이 끝나자마자 나왔어요. 밑반찬은 깍두기가 전부였고 국수는 푸짐하게 양은냄비에 나왔어요. 제주는 국수가 유명한 거 아시죠? 그게 아니더라도 일반 잔치국수를 떠올리시면 연상이 빠르실거에요.

고춧가룩 팍팍!!춘자싸롱 멸치국수
▲ 춘자싸롱 멸치국수 고춧가룩 팍팍!!춘자싸롱 멸치국수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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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긴 뭔가 다르니까, 유명해졌을 거란 생각에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먹기 시작했죠. 생각보다 국물이 진했고, 양도 많고 면발이 굵었어요.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얼큰했어요. 근데 그게 다에요. 성석제의 책에 보면, 국물이 조금 다른 이유가 나와있어요. '제주에서 구할 수 있는 생선의 새끼'가 그 맛의 비결이래요. 그 외에는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굳이 묻지 않았어요. 전 국수집 낼 생각 없거든요.

메뉴판 써준게 고마워 감귤 3박스를 보내주시다니--
▲ 춘자싸롱 메뉴판 메뉴판 써준게 고마워 감귤 3박스를 보내주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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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맛보다 더 재밌는 얘기들을 올레꾼들과 나누는 걸 엿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다 풋, 웃음이 났지요. 그 이야기인즉, 어느 해 겨울(작년 겨울인가?)에 비가 갑자기 쏟아져 어떤 젊은 남자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대요. 아마 비를 엄청 쫄딱 맞아서 불쌍해보였겠죠. 그래서 커피 한 잔을 줬다고 해요. 그리곤 이런 저런 얘길 나눴대요.

춘자씨는 젊은남자에게 커피값 대신 메뉴판을 쓰고 가라고 했어요. 마침 국수값을 500원 올릴 예정이었다네요. 그래서 종이 한 장을 주고 쓰라고 한거죠. 그래서 지금의 메뉴판이 만들어진 거구요. 그런데 춘자씨는 그게 또 고마워 감귤 3박스를 젊은 남자가 사는 경기도에 보내줬대요. 그리고 지금은 전화통화도 하면서 지낼 정도라고 해요. 로맨틱하면서 훈훈하지 않나요?

생각해보세요. 커피 한 잔에 메뉴판을 써주고, 또 그게 고마워 감귤을까지 보내다니. 두 분의 인연이 장난 아닌 것 같은데, 춘자씨에겐 이런 인연이 많은 것 같았어요. 전화 오시는 분도 많은 듯했어요. 인기가 좋으신가봐요.

아, 먹다보니 국수가 너무 맛있어졌어요. 국수 맛이 좋은 이유, 이젠 아시겠죠? 사실 주인 아주머니 이름이 춘자라는 설이 있고, 별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직접 물어보기도 그렇잖아요? 그냥 춘자싸롱이라는 이름이 어울려요. 만약 제주에 오게 되면 춘자싸롱을 찾아가보세요. 메뉴판 두 개를 써주면, 감귤 6박스를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생길 수도 모르잖아요.


태그:#춘자싸롱, #맛집, #서귀포 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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