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봄을 찾아왔더니, 눈 덮인 산이 인사하네."

봄이 어디쯤 왔는지 궁금하여 집을 나섰다. 마음에는 이미 봄이 와 있는데, 체감하는 기온은 차갑다. 아직은 봄이 이르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남쪽에는 봄이 왔을 것이란 생각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조급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봄을 찾아 나섰는데, 정작 맞이하는 것은 눈내린 산이었다.

지리산
▲ 어머니 산 지리산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지리산. 노란 산수유가 피어 있는 고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지리산 산봉우리 위의 눈은 눈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의 하얀 수염처럼 보인다. 누구라도 모두 다 수용하시는 고향 마을의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이시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웃고 있는 것 같다.

산은 할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고향을 지키면서 평생을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가슴은 포근하다. 할퀴고 떠나간 자식들일지라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그런 분이다. 고향을 떠나는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분이시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막무가내로 떠나가는 자식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지리산
▲ 눈 덮인 지리산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봄을 찾아 나선 길에 조우한 산은 그래서 더욱 더 정겨운지 모르겠다. 생각하지도 않은 만남이지만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산의 넉넉함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포용하는 산의 여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말없이 바라보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이 믿음직스러운 것은 깨어 있기 때문이다. 자리만을 지키고 있다고 하여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깨어 있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을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도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면 그 삶은 비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흥겨움
▲ 봄의 흥 흥겨움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말은 깨어 있어야 가능해진다. 깨어 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아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서 나아갈 바를 분명히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분명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삶이 바로 깨어 있는 삶이다. 그런 사람은 산처럼 넉넉함이 배어날 수 있다.

깨어 있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넘어야 할 고개가 아무리 높고 힘들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극복해야 할 아픔이 아무리 크고 힘들어도 중간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나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포기하지 않고 일을 마무리 하였을 때의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산
▲ 고향이 그리워지는 산
ⓒ 정기상

관련사진보기


봄을 찾아 산동에 와서 생각지도 않은 지리산을 보고 고향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였다. 노란 산수유 향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하얀 수염을 바람에 날리고 있는 지리산의 모습도 좋았다. 사람들이 왜 지리산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봄꽃이 만발한 가운데에서 하얀 눈이 쌓인 지리산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색달랐다. 또 다른 봄의 여운이었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지리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