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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밤새 6~7번이 화장실에 다녀오신 어머니를 지난 금요일 입원시켰는데 다행히 큰 병은 없어 오늘 퇴원하셨습니다.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 되는데 꼭 집에 가서 가져갈 것이 있으니 시골에 가야 한다기에 결국 따라 나섰습니다. 강원도는 온통 눈나라라고 하는데 이곳 진주도 봄을 시샘하는 잎샘 추위가 왔는지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가는 겨울이 봄을 시샘하는 잎샘 추위가 왔다지만 이곳저곳은 이미 봄 누리였습니다. 쑥 하나가 긴 겨울을 이겨내고 땅을 뚫고 나왔습니다. 쑥에게는 아직 이른 날인지 다른 쑥들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 녀석은 성격이 급했나 봅니다.

 

"야 쑥이다, 쑥."

"쑥국 끓여 먹으면 정말 입맛 나는데."

"그런데 쑥이 없네. 아직 빠른가? 많으면 국도 끓여 먹고, 떡도 해 먹고, 쑥털털이(쑥에 가루를 묻혀 털어서 찐 음식으로 경남 지역 토박이말)도 해 먹고."
"당신 그 정도 해 먹으려면 쑥을 얼마나 뜯어야 하는지 알아. 아마 하루 종일 뜯어도 안 될 걸."

"쑥만 좀 있으면 뜯으면 좋겠다."

"쑥은 없지만 냉이는 많아요. 냉이 캐면 되겠네요."

 

쑥은 없었지만 냉이는 많았습니다. 입맛 없는 봄날 냉잇국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약간 쓴맛이 나는 냉이. 이 녀석은 생명력이 매우 강합니다. 옛날에는 냉이 무침이나 냉잇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을 돋우는 묘한 능력을 가진 이 녀석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봄배추를 본 아내가 갑자기 자기는 김치를 담가 먹는 것보다 살짝 데쳐 배추된장국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한 움큼 뽑았습니다. 배추를 데쳐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는 말이 어안이 벙벙했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배추된장국을 한 번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봄배추는 무엇보다 겉절이를 해 먹는 것이 맛있습니다.

 

"봄배추는 겉절이가 맛있는데."
"데쳐서 된장국 끓여 먹으면 맛있어요. 한 번 먹어보세요."

"그래요 당신 말 들어야지요. 둘 다 해 먹으면 안 될까요?"
"그냥 된장국 드세요."

 

겉절이는 넘어갔지만 쪽파김치를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쪽파김치를 좋아하는데 아내는 잘 담가주지 않습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한 번씩 사 먹는데 맛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해 가을 어머니께서 쪽파를 심었는데 봄이 되자 쪽파가 났습니다. 쪽파를 보자 입안에 침이 고였습니다. 쪽파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에 어머니는 쪽파를 뽑고, 아내는 시어머니가 뽑은 쪽파를 다듬었습니다. 오늘은 쪽파 김치를 먹을 수 있을지 기대가 컸습니다.  

 

 

"여보. 쪽파김치 담갔는데 맛 좀 보세요."
"응 이게 쪽파김치라고?"
"그럼 쪽파김치지. 무엇인데요."

"쪽파무침아닌가. 무침이든, 김치든 당신이 담갔으니 맛있어요. 정말 오랜 만에 쪽파김치 먹었네. 고마워요."

 

시금치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봄에 나는 시금치가 좋습니다. 시장과 마트에 가면 시금치 한 단에 3000원은 주어야 한다면서 아내가 시금치까지 캡니다. 시금치를 나물로 해 먹어도 맛있지만 토장국에 넣어 먹는 것도 좋습니다.

 

"시금치 보세요. 생긴 것은 별로 인데 정말 맛있게 생겼어요."

"원래 못 생긴 것이 더 맛있어요. 당신 요즘 시금치 한 단에 얼마 하는지 아세요.'

"잘 모르겠는데. 시금치를 잘 안 사 먹으니 알 수가 있나요."
"3000원은 주어야 해요."

"한 단에 3000원! 정말 비싸다."

"그래요. 요즘 정말 비싸요. 좀 싸게 팔면 안 되나."

 

어머니를 집에 모셔드린 것 밖에 한 일이 없는데 오늘도 어머니와 동생이 긴 겨울 동안 땀 흘려 거둔 봄배추, 시금치, 쪽파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냉이와 쑥도 먹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봄을 시샘하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녁은 봄나물로 밥상을 차리게 될 것입니다. 겨울 내내 입맛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제 입 안에 침이 고입니다. 잎샘추위 물렀거라 봄나물 나가신다.


태그:#봄, #쑥, #냉이, #쪽파, #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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