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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로 잘 알려진 오쿠다 히데오, 그의 이름은 '코믹'한 소설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3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올림픽의 몸값>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당돌하게 진지하다고 해야 할까? 올림픽을 '인질' 삼아 국가를 협박하는 청년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답지 않게 진지하며 또한 문제적이다. 다시 말해, 오쿠다 히데오 소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이 개최되려고 하던 그 시절, 일본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전쟁의 아픔을 뒤로 하고 국가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자는 마음에 모두가 단결하고 있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예삿일이고 올림픽 기간에는 야쿠자들이 알아서 도쿄를 떠나있겠다고 할 정도였다. 모두가,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서로 협박편지가 날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일이 생긴다. 올림픽 경비의 총책임을 맡은 경시감의 집에서 폭파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어서 경찰학교의 기숙사도 폭발하는 등 폭파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한다. 당황한 경찰은 모든 인력을 동원해 사건을 단순 화재 사건으로 처리하면서 범인을 잡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내게 되는데, 뜻밖에도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이었다. 이름은 사마자키 구니오.

 

지금도 그렇지만 도쿄 올림픽이 열리던 시절만 하더라도 도쿄대 학생이라면 대단한 엘리트로 대우받고 있었다. 사회적인 성공이 보장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구니오는 무엇 때문에 올림픽을 인질 삼아 대담한 폭파 사건을 벌이는 것일까? 극단적인 사상가일까? 아니면 돈이 필요해서일까?

 

경찰은 이유를 찾지 못한 채 허탕만 친다. 그러는 사이에 올림픽 개최일이 코앞에 다가오고 구니오는 1억엔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가 바라보는 앞에서 또 다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겠다고 말한다. 누가 봐도 장난이 아닌, 진짜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니오는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올림픽의 몸값>은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도쿄로 '부'가 집중되던 그 시절의 빛과 어둠을 포착한 소설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빛이나 어둠, 둘 중에 하나만 경험한다. 다른 쪽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러나 구니오는 다르다. 도쿄대 학생으로 출셋길이 보장된 그는, 형의 죽음을 통해 '어둠' 속을 걷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이 모르는, 혹은 외면하려고 하던 가난한 사람들의 '피눈물'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수재로 소문났던 구니오는 인부로 일하던 형의 죽음을 알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경험하기 위해서, 일종의 '속죄'의 하나로 형이 하던 막노동을 하게 된다. 그것은 분명 치기 어린 행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막노동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비인간적인 대우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초라한 삶을 마주하면서, 그는 분노하게 된다.

 

'올림픽'에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일을 시키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을 빼앗고 구박하고 닦달하는, 노예처럼 부려먹는 자본가들을 보고 변한 것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과는 상관이 없었다. 인간으로써,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이너마이트를 훔쳤고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국가에 돈을 요구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올림픽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돈가스 한번 제대로 먹어본 적 없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돈을 나눠주려고 했을 뿐이다.

 

구니오의 생각이 위험천만하다. 하지만 공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의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데 반해 <올림픽의 몸값>의 '그'는 '응원'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올림픽의 몸값>은 테러리스트를 동경하는 소설일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구니오를 잡으려는, 올림픽 개최일에 태어날 둘째 아이를 손꼽아 기다리는 경시청 형사 '마사오' 또한 정의롭기에, 그래서 응원하게 만든다.

 

보통은 선과 악을 나누기 마련이다. 혹은 작가가 편을 들어서 덩달아 독자도 편을 들게 된다. 그런데 <올림픽의 몸값>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다. 도망자와 추적자, 테러리스트와 형사, 모두를 응원하게 만든다. 낯선 느낌을 주는데 그것이 나쁘지 많은 않다. 상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독창적인 구성으로 독서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테러리스트는 올림픽을 인질로 거액을 챙길 수 있을까? 불공평한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분노와 그것을 맞서는 정의감이 빛나는 <올림픽의 몸값>, 올림픽의 몸값만큼이나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림픽의 몸값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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