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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바람이 멈추지 않고 분다. 여기도 막걸리, 저기도 막걸리, 온통 시내가 막걸리 타령이다. 흥겨운 그 타령에 나 또한 가만있질 못하고 오늘도 기어이 개코네 막걸리로 향한다.

 

부평 문화의 거리 근처 한산한 뒷골목을 엄마 품처럼 언제나 따스하게 품고 있는 그곳. 처음 이곳에 발길을 담그게 된 것이 2002년 개혁국민정당에서 활동할 무렵이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맑고 깨끗한 정치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볼 작정에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몸 아픈지 모른 채 열심히 선거활동을 했다.

 

밤이 늦도록 선거활동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함께한 선거운동원들과 개코네로 모여 하루의 평가와 힘들고 고된 이야기들을 막걸리 한잔에 술술 풀어가던 시절이었다.

 

전국을 돌며 노무현이라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 좀 들어달라며 국민이 진정 존중받는 정치를 일궈보자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1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던 아니 믿을 수조차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보며 가슴속의 한을 달래주듯 펑펑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개코네 막걸리와의 질긴 인연을 끊지 않고 변함없는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던 주인장의 미소와 함께 한 잔 두 잔 넘어가는 막걸리와 함께 내 나이도 조금씩 발효되어간다.

 

이곳은 이해와 화해가 흥으로 머무는 곳

술 값 눅고 안주 값 헐하며 맛깔스럽기까지 하다.

잡다한 세상사, 인간들의 애증, 꿈을 향한 대소의 몸부림이 술 탁자에 오르락내리락

주전자 가득 뿌연 막걸리가 쥔장의 마음만큼 시원한 이 곳, 부평의 뒷골목

가곡도 부르고 음악도 흐르고 회화와 시가 있는 이 곳

내가 살맛을 이어가는, 나처럼 미친 친구가 나를 찾는 곳

아는 이들, 좋은 이들을 모두 초대하고 싶은 주막^^

쥔장은 이수언 이라는 멋진 춘천산 아짐씨.

우리같이 미친 사람들과 사귄단다. 곱게 미친 사람들과~

개코나 미쳐도 곱게 미치면 좀은 아름답꼬 허겄다~^^

아짐~!!! 막걸리 하나 더~!!! 개코댁 사랑혀~

(주모의 후한 인심에 반해버린 어느 애주가 시인의 소박한 글)

 

원조 개코네 막걸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 됩니다

 

개코네 주모인 이수언 아짐씨. 손님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막걸리 사랑에 푹 빠져버린 사람.

막걸리 덕에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운 억척어멈 이씨. 그는 오늘도 손님들에게 내줄 신선한 해물과 찬거리를 준비하며 막걸리 인생의 3막3장을 펼치려 한다.

 

"99년도에 처음 개코네라는 이름을 걸고 춘천과 부평 두 군데에서 막걸리 집을 열었지요. 그때만 해도 돈 걱정 없이 보냈던 터라 크고 화려하게 하려고만 했어요. 욕심이 크면 화를 부른다고 했던가. 춘천에서 하던 막걸리 집을 폐업하고 결국 자식을 남겨두고 부평 막걸리 집을 키워보려고 혈혈단신 올라와 갖은 고생 다하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개코네 주모는 처음 올라와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손님에게 싱싱한 해물과 생선을 공급하기 위해 노량진 새벽시장으로 매일같이 출근해 안주준비를 하고 새벽까지 장사를 하느라 어떨 때는 서서 잠을 청하기도 했단다.

 

오는 손님들도 각양각색이어서 주모에게 술 취해서 해코지 하는 사람, 처음엔 다정하게 왔다가 서로 취해버린 탓에 말다툼으로 시작된 싸움이 결국 폭행까지 이르게 된 연인들, 홀로 조용히 앉아 막걸리를 음미하며 그대로 시인이 되어버린 중년 여인, 금융회사 중간급 간부였다가 어느새 지점장이 되어 한 아름 선물을 들고 다시 찾아온 오랜 단골손님 등등.

 

주모는 그렇게 막걸리와 함께, 손님들과 함께 인생의 후반기를 옹골차게 보내왔다. 막걸리한잔에 담긴 슬픈 애환과 그리움, 아픈 눈물까지도 그에게는 자기의 마음과 다름없는 동병상련의 삶 그 자체였다. 주모는 이제 막걸리집 주인에서 어느새 시인으로 변해버린 그를 발견한 것이다.

 

한해가 또 시작되었다.

막걸리와 동행하는 삶은 나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날 똑같이 웃어야 하고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쳐야 하고

아파도 안 아파야 하고

슬퍼도 안 슬퍼야 하고

반갑고 기뻐도 항상 그대로 해야 하는 삶이

시작된 하루야~. (2004년 1월10일. 겨울비 내리는 어느 늦은 새벽에)

 

새벽 2시.

두 테이블 남은 손님 총 7명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그 비를 바라보며 이름을 적는다

내 마음의 그리움을 향한 추억의 이름들을

 

주모는 막걸리 집을 하면서 인생을 배웠다고 전한다. 겸손과 배려와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라며 사람을 향한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세상은 참 살아갈만한 아름다운 세상이란다.

 

그는 개코네 막걸리 집에 오는 손님들이 모두 시인이자 화가이자 사진가인 예술인들이란다. 막걸리 한 상에 평등한 인간으로 서로의 마음을 훈훈하게 덮여놓는 정겨운 이곳. 그의 인생의 평생의 동반자로 죽을 때까지 서방처럼 아끼고 보듬어 갈 것이다.

 

"주모에게 이런 행복이 있을 줄이야 정말 몰랐네요. 막걸리와 함께한 십여 해가 오는 손님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가슴에 다가옵니다. 막걸리만 팔았을 뿐인데 행복이 덤으로 와주네요. 잠깐의 헤어짐이지만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모든 손님들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태그:#개코네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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