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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글을 쓰는 일입니다. 2300여 회원 모두가 이명박 정부의 반문화적 행태와 정치, 경제, 환경, 사회, 문화, 복지 전반에 걸친 부당함과 천박함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글을 이 탄압이 멈추는 날까지 신문을 포함한 모든 매체에 지속적으로 쓰야 합니다."-한국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이 화가 단단히 났다. 법원이 김정헌(64)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자 김정헌 위원장이 복직해 한 지붕 아래 두 수장을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이번에는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최일남)에게 '노예문서'로 불리는 '시위 불참 확인서'를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오광수)는 지난 1월 19일 올해 문예진흥기금 지원 대상 가운데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된 한국작가회의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구지회에 공문을 보냈다. 예술위는 이 공문에서 "불법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을 담은 확인서를 2월 10일까지 내라고 했다.

 

한국작가회의는 이에 대해 지난 6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 확인서는 각서다', '굴욕적이다', '굉장히 큰 수모다', '돈으로 작가를 길들이려고 하는 행태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배수진을 치고라도 싸워야 한다' 등 맞대응에 따른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작가회의는 이에 따라 지난 8일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굴욕적인 확인서 요구를 거부한다"

 

"이미 재정적인 탄압과 압박은 지난해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올해 들어서면서 더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경제적 탄압을 있는 그대로 당하고 핍박받으면서 현 정권의 부도덕함을 증거하든지, 아니면 공세적으로 싸워서 문제를 해결하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작가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단체에 대해 불법 폭력 시위 운운하며 굴욕적인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예술에 대한 무지이며 창작의 자유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이라며 "굴욕적인 확인서 요구를 거부한다. 예술위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문학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못 박았다.

작가회의는 이어 "이는 2300명이 훨씬 넘는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을 잠재적 피의자로 간주하는 반인권적 행정폭력"이라며 예술위에 대해 "문건 작성 주체 확인, 예술위 위원장 사과, 확인서 제출 요구 취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설립 목적에 맞는 순수한 지원기구로 거듭날 것" 등을 요구했다.

 

작가회의는 예술위로부터 올해 예산으로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발간에 2천만 원,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 1천만 원, '4.19 50주년 세미나'에 400만 원 등 모두 3천400만 원을 지원받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술위가 보낸 집회에 가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거부함에 따라 지원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고문을 받으면서도 작가정신 지켜냈다"

 

"'굴욕적인 확인서 제출을 거부한다'고 검은 글씨로 쓴 현수막에 앞에 앉아 염무웅 선생님께서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성명서를 읽었다. 실제로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확인서를 써주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안 쓰면 지원할 수 없다는 상황에서 작가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순간 우리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오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도종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예술위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내일을 여는 작가>의 정간 또는 폐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오는 20일(토) 열리는 총회를 통해 회원들의 뜻을 모아 민예총 대구지회를 비롯한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 방안 등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종환 총장은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하는 작가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몇 푼의 보조금을 미끼로 작가 예술인들을 길들이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여러 날 우울했다"며 "이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독자적인 결정이라기보다 자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이명박 정부의 반문화적 행정폭력을 그냥 지시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도 총장은 "지난 해 12월 말 문예진흥기금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추진해온 <내일을 여는 작가> 봄호의 편집이 거의 완료되었는데, 고료를 지급할 수 없는 사태가 찾아오게 되었다"며 "작가들에게 문예지 발행을 중단시키는 일은 발표지면을 빼앗아가는 일이면서, 창작의 공간 하나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일이라는 걸 현 정권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2MB에게 화살을 날렸다.

 

도 총장은 "작가회의는 지난 시절 이보다 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다. 감옥에 끌려가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책을 빼앗기고, 고문을 받으면서도 작가정신을 지켜낸 바 있고, 한 시대의 맨 앞에 서서 싸우기도 했다. 그것이 민족의 현실을 걱정하고 정권의 부도덕함에 맞서는 일이라면 생존의 위협을 무릅쓰고 싸웠다"며 이버 확인서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확인서 요구는 문화예술인 눈 귀 입 닫게 하려는 짓거리

 

"임기가 거의 다 끝나 가는데 어젯밤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사무실에 앉아 여러 회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게 무슨 팔자인가 싶기도 합니다. 언론 보도를 접하며 궁금해 하시기도 하고, 놀라시기도 할 것 같아 지금 처한 작가회의의 현실을 회원 여러분께 있는 그대로 알려 드립니다."-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도종환

 

시인이자 언론인인 윤재걸(63)은 "예술위가 작가회의와 민예총 대구지회에게 복종문서인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은 문화예술인들 눈과 귀와 입을 닫게 하려는 짓거리"라며 "한 시대 문화예술을 이끌고 가는 문인들에게 집회에 참가하지 말라는 것은 '하늘도 보지 않고 하늘을 보았다'라고 쓰라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승철(52, 시인, 작가회의 이사)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은 9일(화) "모든 집회에 참가하지 않아야 문예진흥기금을 내주겠다는 예술위 확인서는 노예문서에 다름 아니다"라며 "이 같은 일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없었다. 이제 시인 작가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서 투쟁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적(53, 민통선 교회 담임목사) 시인은 "2MB 정부는 시인 작가뿐만 아니라 국민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단체인 작가회의에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은 시인 작가 길들이기를 위한 사전포석이다. 이번에 예산 때문에 만약 확인서를 써주게 되면 다음  번에는 더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작가회의가 올해 추진하는 사업은 지금까지 57호를 낸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발행, 16회째 열어온 '세계작가와의 대화', '4.19 50주년에 돌아보는 한국문학', '회원 수련회', '작가대회', '고교생 백일장' 등이다.

 

한편, 한국작가회의는 오는 20일(토) 오후 3시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 강당에서 '제23차 2010년 정기총회'를 연다. 이번 정기총회에서는 예술위 확인서 제출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과 2009년 사업 및 활동 보고, 각 분과 위원회 지회 지부 보고, 2009년 작가회의 평가 보고, 임원 선출(이사장, 부이사장, 사무총장, 감사), 2010년 예산 및 사업계획을 매듭짓는다.

 

다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에 보낸 공문과 확인서이다.

 

1. 귀 단체가 신청한 사업 중 2010년도 문예진흥기금사업으로 지원 결정된 사업에 대하여 특별 지원조건을 안내하오니 절차에 따라 지원사업을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정부의 보조금 집행지침에 따라 "불법폭력시위를 주최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 구성원이 소속단체 명의로 불법시위에 적극 참여하여'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단체"에 대한 문예진흥기금 지원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3. 유감스럽게도 우리 위원회는 귀 단체가 2008년도 불법폭력시위단체인'광우병국 민대책회의'에 소속되어 있음을 경찰청으로부터 확인한바 있습니다.

 

4. 우리 위원회는 귀 단체가 불법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지의 여부를 귀 단체 로부터 확인한 후 지원금을 지급하고자 하오니 이에 대한 확인서(붙임양식)를 우리 위원회 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제출기한 : 2010년 1월 31일까지(소인 유효)

제출방법 : 우편 발송 또는 내방제출

제출처 :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13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컨설팅부

 

확인서

 

본 단체는 2008년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었으나 실제 불법 시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문예진흥기금지원금관리규정」 및 「민간단체 보조금의 관리에 관한 규정」등 관련 규정에 따라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단체명 :        (직인)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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