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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지난 12월에 초등학교 6학년 일제고사 개인점수표를 나눠주었다. 성적표를 받은 아이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들어가고 교사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정부가 돈 몇백 억을 들여 시험을 치르고 합숙훈련하며 채점까지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겐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점수가 너무나 중요한 집단이 있다. 바로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 관료들이다. 교과부는 일제고사 점수를 시도교육청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지난 26일 옥천의 한 교사에 따르면, 방학 중인데도 관내 초중학교 교사들을 불러모아 일제고사 대책을 논의했다고 했다. 게다가 27일에는 교과부에서 옥천교육청 실사를 나오니 어느 학교가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대체 왜 교과부가 옥천교육청에 오는 것일까?

 

옥천교육청이 작년에 비해 점수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교과부가 지역별 점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교사들이 보기에 걱정하던 아이들 점수가 잘 나온 걸 봐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점수가 많이 올랐다고 만족하는 분위기다. 교사들이 보기에는 교육청이 아이들을 어떻게 잘 가르쳤길래 점수가 올랐나 칭찬하러 오는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 언론인 <옥천신문>에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교과부가 다녀갔는지 알아봤으나, 교과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옥천교육청 시험점수가 오른 비법

 

그렇다면 과연 옥천지역은 어떻게 시험 점수가 많이 올랐을까? 6학년 아이들이 전 해에 비해 똑똑했기 때문일까? 시골 지역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2∼3명만 있는 작은 학교라도 그 아이들 수준에 따라 보통 학력이 될 수도 있고 기초미달이 될 수도 있다(교과부는 학생 개개인을 기초미달 - 기초학력 - 보통 학력 - 우수 등 4단계로 나누고 있다).

 

하지만 전체 점수가 오르려면 이런 요행으로는 어렵다. 옥천교육청은 2009년에서 시험점수를 올리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아주 많이 했다. 과연 옥천교육청과 옥천의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첫째, 여름방학 보충 수업으로 학생과 교사들이 쉴 틈이 없이 문제풀이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충북 교육청의 드러나지 않는 지도에 의해 충북의 많은 학교가 지난여름에 보충수업을 했다(방학 줄여 공부해라? 이런 교육 거부하고 싶다). 이 중 옥천은 평균 4주 정도 보충수업을 하고 방학이 거의 없던 학교도 있어서 다른 지역에 비해 정도가 심한 편이다.

 

이런 현실을 보다 못한 지역 단체와 전교조가 8월 10일에 규탄 집회를 했고 지역 언론인 <옥천신문>에서는 교육과정 파행사례를 꾸준히 보도했다. 

 

 

8월 13일에는 전교조 충북지부가 파행사례 시정을 위해 교육장과 면담을 하러 갔다. 공문을 통해 사전약속을 하고 갔는데도 교육장은 나오지 않고 지역 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 소속 학부모들이 대신 나와 2시간여 소동이 벌어졌다. 지역 학부모들이 찬성해서 한 일인데 왜 전교조에서 참견하느냐고 따졌다. 보충수업에 항의하는 전교조나 <옥천신문>이 다 곤혹스러웠고, 이후 <옥천신문> 독자게시판을 통해 보충수업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둘째, 군 교육청 시험을 7월부터 9월 사이에 3번이나 봤다. 군 교육청은 7월 13일에 10월 일제고사 대비 시험을 봐서 점수가 낮은 2개 학교에 추가 수업을 요구해 한 학교는 방학 내내 8교시를 하기에 이르렀다. 충북교육청이 10회분 모의고사를 반드시 치르도록 한 데다가 군에서도 강조를 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시험문제를 푼 것일까? 게다가 여름방학 중인 8월 12일에도 시험을 치렀다. 6학년 학생들이 모두 보충수업을 하니 가능한 일이다.

 

셋째, 2학기가 되자 기초미달 학생을 특수반으로 돌려버린 사례도 들려왔다. 학부모는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동의했다가 사실을 알고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시험점수 올리느라고 비인간적인 일까지 자행된 것이다(관련내용이 옥천신문에 보도되었다).

 

여기에 밤늦게까지 보육을 이유로 야간보충학습을 하고 10월 시험을 볼 때까지 예체능과목 수업도 안 한 채 문제풀이와 요점정리에 시달렸으니 옥천 교육청 전체 점수가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중학교는 0교시 수업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이 과정에 학생들의 인권이 짓밟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사들도 미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과연 시험점수 오르면 아이들의 학력이 오른 것일까?

 

옥천교육청의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겨울방학 기간인 지난 22일에도 5학년 진단평가를 봤는지 이 결과표를 가지고 26일에 관내 초중학교 교사들이 모여 학교별로 5분씩 학력향상계획을 발표했다. 전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작년 1년 시달린 결과 이제 교사들은 모든 학생들을 보통학력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곳도 있고, 초등학교에도 밤 8시까지 보충수업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중학교에서는 수준별 수업 즉 우열반 수업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이 기세라면 3월 진단평가 치르는 학년들은 모두 봄방학을 반납하고 보충수업을 하고, 일제고사를 보는 7월까지 예체능 수업은 꿈도 못꾸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시험에는 어느 정도 기술이 필요하다. 수업시간에 활동을 너무나 잘하고 발표도 잘하는 아이지만 시험점수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학원에 다니지 않아 시험기술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방법을 알려주면 점수가 일부 올라간다.

 

그 다음은? 이제 공부에 대한 흥미까지 떨어져버리는 것은 성인들이 이미 겪어온 일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중반부터 열린교육 붐이 일고 2000년부터 시작된 7차교육과정은 학교에서 보는 일제고사도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상을 줄까? 징계를 내릴까?

 

교과부는 2009년에 이미 "임실의 기적"이 조작으로 얼룩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옥천에 실사를 나오는 것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는 그동안 이런 사실을 몰라서 실사를 나오는 것일까?

 

지난 가을 전교조는 옥천교육청을 비롯한 충북 전 지역의 교육과정 파행사례를 제시하고 교과부는 전국에 교육과정 파행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낸 적이 있다. <옥천신문>을 보면 생생한 사례와 지역의 우려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과부는 이런 옥천교육청에 학력향상 증진상을 줄 것인가? 교육과정 파행과 인권 탄압 책임을 물어 징계를 내릴 것인가? 이 결과에 따라 2010년 대한민국 교육현장은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일제고사는 우리 사회에 숱한 갈등을 낳고 교육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옥천교육청이 저렇게 까지 한 것은 결국 교과부가 조장한 것입니다.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교과부는 하루빨리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것에 힘을 모으는 것이 어떨까요? 


태그:#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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