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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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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조선시대 최고 문장가이자, '문체반정' 주역인 연암 박지원 선생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 5)에 삼종형 명원(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열하(熱河)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燕京)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본 것들을 기록한 일기이자, 기행문이다.

연암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역사와 풍속, 지리, 토목, 건축, 천문, 선박, 문화와 정치를 경험하고 겪은 충격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조선 지배층인 사대부와 조선 사회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결국 이 신랄한 비판때문에 지금은 <열하일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고, 한 번쯤은 다 읽었고, 연암 선생 최고 역작으로 평가하지만 조선말 사대부들은 1901년 한학자 김택영이 <연암집>을 엮으면서 펴내기까지 약 1세기 동안은 '불온서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김택영 이후 <열하일기>는 1948년에 시작된 최초의 전문 번역인 김성칠 선생본, 북한 국립출판사의 리상호 선생본, 윤재영 선생의 박영문고본, 가장 최근에 출간된 고미숙 선생을 통하여 번역과 편역을 통하여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또 <열하일기>가 나왔다. 도서출판 '돌베개'가 한국한문학의 산문 문학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산문 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박지원의 산문문학> 따위를 쓴 한문학자 김혈조 교수 (영남대 한문교육과)의 새 번역으로 완역 펴냈다.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며'(도강록)으로 시작하는데 연암 선생은 처음부터 명나라가 망한지 130년이 지났는데도 명을 중국의 주인으로 숭상하는 조선을 향한 신랄한 비판하고 있다. 변화를 읽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사대부를 향한 연암의 비판은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자신을 향햔 채찍일지도 모른다.

"청나라 사람이 중국에 들어가 그 주인이 되니 훌륭한 전통 문화 제도가 변하여 오랑캐 문화로 바뀌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수천 리의 우리나라는 압록강을 경계로 나라를 다스리며 홀로 과거의 문화 제도를 지키고 있다."(1권 27쪽)

그리고 중원의 주인인 청나라가 아니라 망한 명나라를 아직도 숭상할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아직도 한반도에 제한시키는 역사와 영토의식까지 부재한 것을 비판하는 연암을 보면서 읽는 이들은 연암이 단순히 우리는 못났고, 중국은 잘났다는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일순간에 지워버리는 자주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아! 후세에 땅의 경계를 상세히 알지 못하고서 한사군의 땅을 모두 함부로 압록강 안으로 한정해 사실을 억지로 끌어다 합치시키고 구구하게 배분하고는, 그 안에서 패수(浿水)가 어디인지 찾으려 하였다. 압록강을 패수라 말하기도 하고, 청천강을 패수라 말하기도 하며, 대동강을 가리켜 패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조선의 옛 영토를 전쟁도 하지 않고 줄어들게 만든 격이다."(1권 84쪽)

연암은 우리나라 굴뚝이 틈이 생기면 실낱같은 바람이라도 아궁이 불을 꺼 버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방구들은 불을 밖으로 내뿜어 골고루 따뜻해지지 않지만 청나라 굴뚝은 큰 항아라만 하게 뚫어서 벽돌을 부도탑 모양으로 쌓아 올려 집의 높이와 같게 하여 연기가 항아리 속으로 떨어져 마치 숨을 들이쉬듯 빨아 당기는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나라는 집안이 가난해도 글 읽기를 좋아하지만, 수많은 형제들의 코 끝에는 오뉴월에도  항시 고드름을 달고 있으니 원컨대 이 법을 겨울의 괴로움이나 면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1권117쪽)

추위에 떠는 가난한 인민들을 향한 선비의 애틋한 마음과 함께 추우면 생각을 고쳐 굴뚝을 새로 만들어여 하는데도, 책상머리에 앉아 글만 읽으면 된다는 사대부를 향한 비판은 230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 

책상머리에서 글이나 읽으면서 변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대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가던 연암은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420리 이며, 만리장성 밖 200여리 지점에는 있는 열하로 떠나면서 소현세자를 떠올리며 가슴을 치는 장면은 영락없이 조선 사대부다.

"아아, 마음 아프다! 소현세자가 심양의 사저에 계실 때 당시 신하들이 떠나고 머무르거나, 사신기 가고 올 즈음에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된 자는 마땅히 죽어야 된다는 말쯤은 오히려 느긋한 표현에 속할 것이다. 어떻게 머물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떠날 수 있었으랴? 어떻게 참고 보냈으며 어떻게 참고 놓아주었는가? 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통곡했을 때이다. 서캐처럼 작은 나 같은 미천한 신하가 백년이 지난 뒤인 오늘 생각해 보아도 오히려 혼이 싸늘하게 연기처럼 사그러지고 뼈가 시리어 부서질 듯한데, 하물며 당시 그 자리에서 이별의 절을 하고 하직하는 말을 하는 즈음에야 어떠했겠는가"(1권 467쪽)

100년 전 세자가 청나라에 끌려간 것을 떠올리면서 뼈가 시리는 고통을 겪는 연암은 또 다시 지배층을 보면 통탄할 일이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100년이 지났는데도 조선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나라 관원들이 말을 직접 관리보고 이런 일을 천하다고 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사대부를 향한 비판은 일하지 않고 살려는 우리에게도 귀중한 가르침이다.

"우리나라 사대부들은 모든 일들을 직접 하지 않는다. 옛날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이 한 양반이 자신의 비복을 시켜 말에게 콩을 더 주라고 주의를 주었다가 좀스럽다는 이유로 그만 전랑의 벼슬자리가 막힌 일이 있다. 말을 관리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서 모든 것을 아래 비복들의 손에 맡긴다. 비록 직책은 목장을 감독하는 일이고, 사람은 정식 벼슬을 하는 사람이건마는 도대체 말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목축을 맡은 관원들이 무식하다는 말이다."(2권 87쪽)

일하지 않는 사대부, 말을 돌보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조선 관원들. 말을 기르는 것이 진정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인데도 조선지배층은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조선이 부강해질 수 있겠는가.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말을 기르는 방법도 모르는 조선 사대부는 외교도 문외한이라고 통탄하고 있다. 내치도 못하면서 외치도 못하는 조선. 그것을 본 연암의 고통은 뼈져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교적 언사에 익숙하지 못해, 혹 어려운 것을 묻는데 급급하거나 당대의 일을 섣불리 이야기하기도 하고, 혹 우리의 의복과 갓을 과시하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의복과 관을 부끄러워하는지 살피기도 하며, 혹은 바로 대놓고 한족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다그쳐 물어봄으로써 그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이따위 행동은 비단 그들이 꺼려하고 싫어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어설픈 실수이고 역시 셈세하지 못한 것이다.(2권 282쪽)

외교를 어설프게 하는 것에 대해 연암은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해야 마음 놓고 이야기를 터놓도록 유도하고, 겉으로는 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눈썹 한 번 움직이는 데서도 참과 거짓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웃고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실정을 능히 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상대 마음을 읽고, 국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이 시대 외교 상식인데 230년 전 연암은 벌써 알고 있었다.

<열하일기>는 이처럼 변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우물 안에 갇혀 있으면서 망한 명나라가 숭상하는 조선 사대부를 향한 일갈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는 230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찬가지다. 배우고, 배워야 한다. 변하는 세상을 읽고 나의 고집에만 갇혀 있으면 우리에게 진보는 없다. 만약이지만 조선말 사대부들이 <열하일기>를 읽고 탐독했다면 100년 후 조선은 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연암의 후학인 유득공은 <열하일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중국의 노래나 가요에 관한 것, 풍습에 관한 기록도 사실은 나라의 치란(治亂)에 관련된 것들이고, 성곽과 궁실에 대한 묘사라든지, 농사짓고 목축하며 도자기 굽고 쇠를 다루는 것들에 대한 내용은 그 일체가 기구를 과학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여 민생을 두텁게 하자는 이용후생(利用厚生) 의 길이 되는 내용이  모두 <열하일기>에 들어있다."(1권 23쪽)

덧붙이는 글 |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ㅣ 김혈조 옮김 ㅣ 돌베개 펴냄 ㅣ 84,000원



열하일기 1~3권 세트 - 전3권 - 개정신판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돌베개(2017)


태그:#열하일기,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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