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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수호(민주노동당 최고위원)가 첫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를 펴낸 지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사람이 사랑이다>(도서출판 알다)를 펴냈다
▲ 시인 이수호 시인 이수호(민주노동당 최고위원)가 첫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를 펴낸 지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사람이 사랑이다>(도서출판 알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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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망이 좁혀지고 있었다
편지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아팠다
손전화는 더욱 위험해서
문자만이라도 살려놓고 싶었지만
어쩔 수없이 놓아버렸다-21쪽, '찔레꽃 곱다' 몇 토막

두 차례 구속... 감옥살이 2년... 오랜 수배생활... 10만 전교조 우두머리... 60만 민주노총 위원장... 그리고 지금은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는 '외로운 짐승' 이수호. 우리 시대 진실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이 세상과 씨름하고 있는 시인 이수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낱말들이다.
 
그런 그를 보면 이 땅에 민주주의는 아직도 오지 않은 것만 같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 혹은 긴 수배생활을 하거나 혹은 죽어가면서 부르짖었던 민주주의. 그렇게 목놓아 울부짖었던 민주주의는 어디에 숨어 가는 숨을 헐떡이고 있는가. 민주주의, "너를 만나볼 수 있다면...어느 철창으로 끌려간들 / 무슨 여한이 있으리"(젖은 나뭇잎 한 장)라고 말하는 이수호. 

그가 지난해 11월 중순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을 받았을 때 이 세상은 초상 중이라는 느낌이 언뜻 들었다. 시집 표지와 속표지 모두 새까만 색에다 시 또한 새까만 색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는 이 세상이 캄캄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너는 무사하니? / 묻기가 아프"고, "너는 괜찮다는데 / 나는 왜 이리도 더 아리"(너는 무사하니)기 때문이다.  

시는 고발이나 폭로이며 꽃이고 햇살이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이명박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이 내지르는 아픈 소리를 낱낱이 담는다
▲ 이수호 두 번째 시집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이명박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이 내지르는 아픈 소리를 낱낱이 담는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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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치장에서 이 글을 씁니다. 용산과 쌍용은 아직 짓밟힌 채 겨울은 오고 있습니다. 다시 시를 생각해 봅니다. 고발이나 폭로라고도 여겼습니다. 내일 닥칠 일을 오늘 알려주는 일이거나 저항의 몸부림이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위로나 눈물이라고도 생각했고 그래서 꽃이고 햇살이고, 작은 풀잎, 부는 바람이기도 했습니다."-'책을 내며' 몇 토막

시인 이수호(민주노동당 최고위원)가 첫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를 펴낸 지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사람이 사랑이다>(도서출판 알다)를 펴냈다. '그의 시는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에 강하게 머리를 맞은 듯 아프다'라는 정호승 시인 말처럼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이명박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이 내지르는 아픈 소리를 낱낱이 담는다.

제1부 '손의 비밀', 제2부 '여기 사랑이 있다', 제3부 '다시 평택에서', 제4부 '바보 이야기', 제5부 '대학로의 가을'에 담겨 있는 '너의 시간은 무사한가' '동충하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용산 하느님' '나는 외로운 짐승' '자벌레는 온몸 던져' '따뜻한 별' '아찔한 희망' '명동촌 가는 길' '오소산 억새밭' 등 65편이 그것.

시인 이수호는 시를 고발이나 폭로라고 여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깊은 계곡 물소리, 아니 계곡 그 자체"로 여기며 "결국은 이 또한 사람이고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번 시집을 "용산, 쌍용 동지들과 지금도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모든 분들에게 이 보잘 것 없는 시를 바친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쓴 투쟁과 희망을 담은 시

지난 겨울 나는 벌레였다
비굴했다
작은 굴이나 틈 혹은
고치 속에 숨어서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았다
비바람을 탓하고 눈을 원망했다
추위가 두려웠다
봄이 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참고 견디기 싫었다-45쪽, '동충하초' 몇 토막

이수호 시인은 이번 두 번째 시집을 엮고 있던 도중 경찰에 끌려가 유치장에 갇힌다. 화재사고로 한 순간에 가족을 잃어버린 용산 4가 철거민들과 함께 있다가 생긴 일이었다. 까닭에 그에게 있어서 시는 고통과 시련을 겪어낸 씨앗이 아니라 "고발이나 폭로"이다. 그 고발이나 폭로가 곧 꽃이고, 햇살이고, 사람이고, 사랑이다.

그는 빛 바랜 다섯 분 영정사진이 걸려 있는 용산 4구역 농성장에서 시를 쓴다. 30원 때문에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맨 고 박종태 열사 추모제가 열리는 길에서 시를 쓴다. 공장문을 걸어 잠그고 77일을 버틸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있던 평택 공장 앞에서 시를 쓴다. 그에게 있어 시 쓰기는 민중들이 받는 상처 아물기이자 희망이다.

그는 겨울에는 벌레가 되었다가 여름에는 풀이 되는 동충하초가 그 자신이라고 믿는다. 동충하초가 되어 "허리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다문다. 동충하초를 바라보며 "푸른 각성이 포자"가 되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가 죽고 썩어야 버섯 하나 자란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가짜 하느님이다

내 어릴 적 엄마는 나에게 하느님을 들려주셨다
무릎에 앉아
흰 수염 휘날리며
착한 사람 도와주고 못된 놈 벌주는
하느님 꿈꾸며 잠들곤 했다
이 나이에
다시 하느님을 만났다-61쪽, '용산 하느님' 몇 토막  

시인은 "용역들에게 얻어맞고 경찰에게 짓밟히면서도 / 억울하게 죽은 철거민 놓지 않는" 사람들을 용산 하느님이라 쓴다. 용산 하느님은 "5개월이 되도록 차마 떠나지 못하고 / 길바닥에서 주무시는 초라하고 가난한 하느님"이다. 용산 하느님은 "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못하시는 일 / 한평생 도맡아서"하는 분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가짜 하느님이며, 가난한 곳이나 억울한 곳, 불의한 곳을 찾아다니며 같이 울고 같이 화내고 같이 먹고 같이 뒹구는 용산 하느님이 진짜 하느님이다. 참사 6개월이 지났지만 "동네 죽은 개 보듯 하는 / 이명박" 대통령이 믿고 따르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탄 채 꽁꽁 얼어 있는 / 난도질 당한 주검 둘러메고 / 청와대로 쳐들어 가겠다는 유족들 손 붙들고 / 어쩌면 좋지요"하는 용산 하느님. "그놈 눈도 꿈적 안 할 텐데 / 그 다음은 어쩌지요" 하며 걱정하고 고민하는 용산 하느님이 참 하느님이다. 용산 하느님은 "혼자 주무시는 작은 차에서 / 울며 기도하시며 / 잠 못 드시는 하느님"이다.   

'몸살'을 '엄살'로 여기는 아름다운 시인

이수호 시인은 이번 두 번째 시집을 엮고 있던 도중 경찰에 끌려가 유치장에 갇힌다
▲ 시인 이수호 이수호 시인은 이번 두 번째 시집을 엮고 있던 도중 경찰에 끌려가 유치장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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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몸살을 앓았다.
내 죄를 내가 알았으므로 깨갱깨갱 하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솔직히 쪽팔렸다
내가 용산에 가 있었으면 며칠이나 있었고
쌍차 앞에서 싸움을 했으면 또 얼마를 했다고
스트레스는 뭔 잠꼬대며
피로가 쌓인들 얼마이겠는가-131쪽, '몸살' 몇 토막

시인은 "때로 몸은 참 솔직하다"고 여긴다. 왜? 내 허위와 위선을 잘 드러내 깊이 반성할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몸살을 앓으며 자신을 차분하게 되돌아본다. 몸살을 앓는 것 자체가 "7개월이 낼 모레인 용산 유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제는 감옥을 점거하고 싸우고 있는 쌍용전사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시인은 솔직하다. 몸만 참 솔직한 게 아니라 시인 마음도 참 솔직하다. 나이 육십을 훌쩍 넘긴 시인이 용산과 쌍용차 현장에서 계속되는 농성에 하루도 빠짐없이 참가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몸살'도 그래서 온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몸살'을 '엄살'쯤으로 여기며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워 한다.

시어 하나 하나에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맨 얼굴 그대로인 이수호 시가 보석처럼 빛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기우뚱거리는 이 세상과 마빡을 들이밀고 싸우는 시인이다. 까닭에 그가 보듬는 세상은 아름답고도 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그런 밝고 편안한 곳이 아니라 늘 어둡고 불편한 곳이다.

"사람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수호 시인. "잔바람에도 하늘거리는 / 그 가늘고 긴 코스모스 목을 / 어찌 볼까"(환절기) 들길로 나서기가 두렵다고 말하는 마음이 너무 착한 시인 하느님 이수호. 이 자리를 빌어 이수호 시인에게 나직하게 속삭인다. 오랜만에 참 아름다운 시인을 만나는 기쁨이 너무 크다고.       

시인 이수호 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시인 정호승은 "이수호의 시는 아프다. 그의 시를 읽으면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에 강하게 머리를 맞은 듯하고 연약하나 날카로운 풀잎에 깊숙이 살을 베인 듯하다"며 "그의 시는 그만이 쓸 수 있는 체험적 구체의 소산이다. 이 시대의 고통의 골목골목을 맨발로 묵묵히 쓰러지듯 걸어간 자만이 쓸수 있는 시"라고 평했다.

시인 송경동은 '이수호를 읽으며 체 게바라를 떠올리는 기쁨'이란 글에서 "전선운동의 주요한 위치에 서 있는 그가 시를 써왔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라며 "자신과 사회를 반추하려는 고단한 그의 삶의 여정이 스러져버린 광화문 촛불과, 용산4가의 을씨년스런 골목 풍경과, 휑한 평택 쌍용차 공장 전경과 맞물려 눈물겹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시인 이수호는 1949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해직될 때까지 서울 신일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99년에는 10년 만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복직해 퇴직할 때까지 33년을 교사로 일했다.

시집으로 <나의 배후는 너다>가 있으며, 동화집 <까치 가족>, 칼럼집 <일어서는 교실> <사랑의 교육 희망의 교육> 등이 있다. 전교조 위원장, 민주노동위원장, 서울특별시 교육위원을 맡았으며, 지금은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사람이 사랑이다

이수호 지음, 알다(2009)


태그:#시인 이수호, #사람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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