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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너무 춥다. 곰이나 개구리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춥다. 출퇴근길마다 완전무장을 해야 하는 요즘, 저소득층은 어떻게 겨울을 나고 있을까? 이런 날씨에 보일러 안 틀고 전기장판만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걸까? 지난해 말 국회에서 보건복지부의 에너지보조금 903억 원은 모조리 깎였다는데….

<오마이뉴스>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 빈곤지역, 쪽방촌, 비닐하우스촌 등을 다녀왔다. 하필 올 겨울 중에서도 제일 춥다는 1월 2째주에 인턴 기자들이 발바닥에 얼음 박히도록 뛰었다. 굳이 서울광장의 남극체험 행사 안 가봐도 우리 사회는 곳곳이 남극이었다. [편집자말]
 박연순 할머니(80·신림6동)는 방 안에서도 상의만 5겹을 겹쳐입고 있었다.
 박연순 할머니(80·신림6동)는 방 안에서도 상의만 5겹을 겹쳐입고 있었다.
ⓒ 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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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를 틀었는데… 춥지? 어여 이리(전기장판 있는 데)로 와."

문을 열자 집 안에 고여있던 한기가 얼굴을 휘갈긴다. 문은 꽁꽁 얼어 서리가 껴있고 세숫대야 위에 얼음까지 동동 떠있다.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가자 발바닥이 얼얼하다. 두 겹으로 겹쳐 신은 양말 사이를 뚫고 들어온 냉기가 곧장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다.

이 집에 사는 박연순(80·신림 6동) 할머니는 내복부터 패딩점퍼까지 옷을 다섯 겹이나 입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3평 남짓한 방 바닥에는 전기장판이 깔렸고, 그 위로 겹겹이 이불이 덮여있었다.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6동에서 만난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동네 할머니들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 전기장판이 설치된 이불 밖으로 나서면 입가에 김이 서리고 뼈마디가 시큰시큰하다"고 했다. 무허가 건물이 많은
이 동네의 보편적인 겨울 풍경이다.

보일러 틀고도 3℃... 집안에는 서리가 꼈다

 박연순 할머니의 방 안은 보일러를 틀었지만 온도가 영상 3도였다.
 박연순 할머니의 방 안은 보일러를 틀었지만 온도가 영상 3도였다.
ⓒ 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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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온도가 얼마나 낮으면 물이 얼어버리는 것일까? 보일러를 틀어놓은 방을 온도계로 10분간 재보니 3℃. 그러나 실제 기자가 느낀 체감온도는 영하 12℃인 실외 온도와 큰 차이가 없다. 벽에 손을 대보니 손가락 끝이 벌겋게 변했다. 바깥에서도 볼 수 없던 서리가 문 안쪽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다.

요즘 박할머니의 최대 고민은 보일러 동파다. 오래된 건물이고 집 자체가 비좁아 보일러가 외벽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운 날 밖에서 오들오들 떨던 보일러가 얼어버리면, 벽에 손바닥이 붙어버릴 정도로 온도가 떨어진다. 당연히 온수도 사용할 수 없다.

할머니네 보일러는 아슬아슬하게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이날도 온수관이 얼어붙어 보일러 수리공이 출장을 왔다. 수리비는 5만 원. 한달에 고작 35만 원의 기초수급비를 받는 박할머니에게는 매우 큰 돈이다.

다른 집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박할머니의 집에서 나와서 동네 한 가운데 있는 사랑방에 모여있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날 할머니들의 대화 주제는 난방비. 대부분 기초생활수급비를 월 35만 원 받는데 난방비에만 20여만 원이 들어간다.

"아침에 (이불에서 나서면) 너무 추워서 뼈마디가 바글바글해. 집안에서도 입을 열면 김이 허옇게 나고 겨울만 되면 무릎이 시큰해." - 홍영필(82·신림6동) 할머니
"(너무 추워서) 방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창 쪽을 보면 창이 얼어 있어."- 김경희(81·신림6동) 할머니
"전기난로(라디에이터)·전기장판도 다 쓰고 보일러도 그렇게 매일 트는디, 너무 추워 죽겠어."- 박군자(68·신림6동) 할머니

 박연순 할머니 집 문의 안쪽에 서리가 껴있다.(왼쪽) 부엌 대야에 담겨있던 물도 꽁꽁 얼어 있다.
 박연순 할머니 집 문의 안쪽에 서리가 껴있다.(왼쪽) 부엌 대야에 담겨있던 물도 꽁꽁 얼어 있다.
ⓒ 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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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인 홍영필 할머니는 손자랑 둘이서 함께 사는데, 이번 달에는 전기세로 10만원, 등유 값으로 13만원을 썼다. 난방비를 빼고 나면 월 생활비는 12만 원. "난방비를 쓰고 나면 쓸 돈이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이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최고의 유행 아이템은 '솜'이다. 이불을 덮고 있어도 솜버선은 필수다. 홍할머니는 솜으로 덧댄 바지를 포함해서 하의를 4겹, 솜 점퍼를 포함해 상의를 5겹을 입었다. 김경희 할머니와 박군자 할머니도 상의만 5겹을 입었다.

아카시아마을의 집들은 검은 천을 둘렀다

바로 옆 관악구 미성동 아카시아 마을에 가 봤다. 이 동네는 모든 주택이 무허가인데, 그 집들을 우중충한 검은 천이 둘러싸고 있다. 천에 쌓이는 먼지 때문에 대다수 거주민이 기관지 질환과 비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 마을의 집들은 이렇게 검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일까?

 홍영필 할머니(82·신림6동)가 방 안에서도 겹겹이 껴 입은 옷을 보여주고 있다.
 홍영필 할머니(82·신림6동)가 방 안에서도 겹겹이 껴 입은 옷을 보여주고 있다.
ⓒ 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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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알아보기 위해 김이화(68·가명)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그의 입술에 흰 솜이 길게 붙어 있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잤는데도 외풍이 너무 심해 입술이 터져버렸고, 며칠째 피가 멈추지 않아 아예 흰 솜을 붙인 것이다.

할머니가 가르쳐 준 검은 천의 비밀은 지붕에 있었다. 지붕이 낡고 약해서 천장 틈을 비집고 찬 기운이 내려온다. 그래서 보일러를 틀어도 집안에 온기가 돌지 않는다. 김 할머니 역시 옆 동네 사람들처럼 집 안에서 패딩 조끼, 목도리, 옷, 내복 등을 몇 겹씩 껴입고 산다.

결국 이 동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열기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천을 둘렀다. 그렇다고 천 한 장으로 큰 보온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김 할머니는 "폭설 내린 날 (지붕이 약해 무너질까봐) 이 동네 사람들은 죽을 날만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봉화 관악구지역정책연구소장은 "무허가 지역의 집들은 워낙 낡아서 에너지효율이 극히 떨어진다"고 전했다.

애초부터 단열이 잘 되지 않았지만, 건물이 나이를 먹으면서 외풍이 더욱 심해졌다. 단열재부터 고쳐야 하기 때문에 수리비용도 만만치 않고 구청 허가절차도 까다롭다. 무허가촌인 아카시아 마을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아카시아 마을의 집들 대부분은 검은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온을 위해서라지만, 보온 효과는 거의 없고, 주민들의 건강만 해치고 있다.
 아카시아 마을의 집들 대부분은 검은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온을 위해서라지만, 보온 효과는 거의 없고, 주민들의 건강만 해치고 있다.
ⓒ 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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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문제는 도시 가스다. 관악구에는 4만3천 가구가 도시가스 설비 없이 겨울을 난다. 특히 신림6동과 아카시아 마을은 도시가스가 설치된 집이 거의 없다. 무허가 지역인 데다가 화재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구청에서도 쉽게 도시가스 설치를 허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가스보다 훨씬 비싼 등유로 보일러를 틀어야 한다. 김이화 할머니는 "도시가스만 들어오면 옷을 벗고 춤 출 거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날 만난 신림 6동의 할머니들이 이 마을에서 거주한 기간은 평균 30년인데,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그들의 집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엄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대학생 인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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