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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의 문이 열렸다. 처음으로 문이 열리는 것이 떨림이다. 가슴 설레는 일이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넘친다. 새해에 대한 희망은 크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꼭꼭 숨어 있던 행운의 여신이 찾아올 것만 같다. 흐트러져 있던 마음을 감싸주고 안온하게 안아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마음에는 2 %가 부족하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떨림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올해에 다가올 수 있는 행운이 무엇일까를 따져본다.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해본다. 그러나 아무리 분석하고 유리한 쪽으로 상상을 해보아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두근거리던 마음은 시나브로 달라진다. 희망보다는 답답해짐을 느끼게 된다. 가슴을 뻥 뚫고 싶어진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 겨울 들어서 제일 춥다는 보도가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든다. 한기가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이 답답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꽉 막혀 있는 가슴을 얼음처럼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뚫어버리고 싶었다. 밖에 나서니, 매서운 겨울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겨울산사 종남산 송광사.

  전라남도에 위치하고 있는 조계산 송광사와 이름이 같은 절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천년 고찰이다. 보조국사 창건 설화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오래된 산사이다. 조계산 송광사처럼 가람이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사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하고 있는 정감이 가는 아름다운 산사이다.

 

  종남산 송광사는 커다란 소조 부처님과 십자각으로 조형된 종각을 들 수 있다. 소조 부처님은 흙으로 만들어진 부처님이란 뜻이다. 법고와 목어 그리고 운판과 동종을 모신 건물이 종각이다. 그런데 그 종각이 십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국내 유일한 모양이라고 하니, 송광사의 자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십자형의 모양을 한 탑(경천사지탑)은 있으나 종각은 유일하다.

 

 

  그 외에도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비천상도 아름답고 오백의 나한을 모신 나한전도 있다. 유물들이 전해주고 있는 세월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할 수가 있다. 서두른다고 하여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천년을 그 자리에서 지켜온 산사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해맑은 웃음.

  대웅전을 돌아서니, 눈에 들어오는 정자가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천진동자상의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찌나 해맑게 웃고 있는지,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다. 세상에 빛나는 보석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해맑은 웃음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웃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해맑게 웃을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을 한단 말인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웃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자신감이 있다면 해쳐나가야 할 길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洗心亭.

  해맑은 웃음으로 찾는 이의 마음에 여유를 주고 있는 동자 상 뒤에는 아담한 암자가 하나 있었다. 암자의 이름은 세심정이다.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정자라는 뜻이다. 살아가면서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씻어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기가 어렵고 설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을 씻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부사시사의 윤선도가 보낸 보길도에도 세심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도 참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글귀를 겨울산사에서 보게 되니, 반갑다.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 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마음을 맑게 씻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 현재의 마음이 어떠한지도 알지도 않은 채로 마음을 씻어낸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하면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려면 마음을 맑게 씻어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을 맑게 씻어낸 다음에 새롭게 출발하면 산뜻하지 않겠는가?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노라니, 법정 스님의 글귀가 떠오르게 된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 중에서 스님께서 강조하신 소욕의 미학이 새로워진다. 마음을 맑게 씻어내는 것의 시작은 욕심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더러워지는 것은 탐진치 삼독에 의해서 탁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의 말씀을 재음미 해본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할 수 있으면 얻는 것보다 덜 써야 한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고,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 덜 갖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덜 갖고도 얼마든지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은 우리들 일상에 두루 깔려 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 어느 쪽 삶이 우리가 기대어 살아갈 만한 삶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인가 뚜렷이 드러난다. 똑같은 조건을 두고 한쪽에서는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근심 걱정의 원인으로 본다. 소욕지족(小欲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배어 있다.]

 

 

  소욕지족

  욕심을 줄임으로서 만족할 수 있다면 마음을 맑게 씻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심을 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다가온다. 답답하였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대신 편안함과 안정감이 앞서게 된다. 아! 좋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이대로 족한 것이 아닌가? 마음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환하고 맑은 웃음을 웃을 수 있다면 된 것이 아닌가?

 

  새해에는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마음에 욕심이 쌓이지 않도록 늘 조심하면서 살아야겠다. 송광사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대하게 되는 글자가 입차순래 막조지혜다. 이문에 들어서게 되면 지식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맑은 웃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면 날마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닫힌 마음을 활짝 열리게 해준 산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새해에는 고마워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주어진 삶 전부가 축복이 아닌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게 된다면 부족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다. 그 것으로 충분히 즐거운 인생이 아닌가?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할 시간도 부족하다. 고마워하면서 살아가야 할 시간도 부족하다. 불평하거나 불만을 터뜨릴 겨를은 없다. 감사하면서 또 감사하면서 새해를 출발해야겠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송광사, #소욕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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