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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총각이었던 70년대 이야기. 당시 군산극장(우일 시네마) 건물 왼쪽은 개복동 산 말랭이(사창가)와 연결되는 좁은 골목이었다. '개복동 술집골목', '극장골목'으로도 불렸으며 대낮에도 아가씨들과 주정꾼들이 다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 70년대 군산극장(우일 시네마), 왼쪽 광고 뒤로 들어가면 개복동 산 말랭이(사창가)와 연결되는 좁은 골목이 있다.
 ▲ 70년대 군산극장(우일 시네마), 왼쪽 광고 뒤로 들어가면 개복동 산 말랭이(사창가)와 연결되는 좁은 골목이 있다.
ⓒ 군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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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오른편은 군산극장 담이었고 왼편은 오두막이 어깨동무하듯 붙어 있었는데 아가씨를 5~10명씩 거느린 술집들이었다. 짧은 골목임에도 열 개 업소가 넘었는데, 아가씨들의 간드러진 웃음과 진한 화장 냄새는 색에 굶주린 남성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골목에서 풍기는 냄새는 생각처럼 향긋하지 못했다. 극장의 하얀 시멘트 담이 누래지도록 오줌을 갈겨대는 바람에 암모니아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뒤범벅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은 부인댁에서 살았던 외삼촌을 뵈러 갈 때는 호기심이 발동해 지나갈 때도 있었는데, 속치마만 걸치고 방에서 화투 치던 아가씨들이 맨발로 뛰어나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오우~빠, 노~올다 가~잉!" 하며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당황할 때도 있었다. 

보석상 인수 

1976년으로 기억한다. 여유자금도 없고, 나이도 어려 능력이 없다고 해도 건물 주인이었던 보석상 아주머니가 집세도 올리지 않고 편리를 봐주겠다며 떠넘기다시피 넘겨주는 바람에 지인에게 사채를 빌려 2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다섯 살 위인 세공사 외에도 종업원이 셋이나 되고 18K 공장도 상대해야 하는 큰 가게였는데 처음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해를 넘기면서 조금씩 운영의 묘를 터득하면서 똥파리처럼 달려드는 관공서 직원들과도 부담 없이 술자리를 약속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2년도 안 되어 생각지 않은 일이 터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은퇴를 하겠다고 했던 아주머니가 보석상을 다시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빚을 갚고 돈을 모으려는 참이었는데 내놓지 않으려면 점포를 비워 달라니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고 따지면, 아주머니는 갈등이 생기는지 며칠 더 생각해보자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확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저씨·아주머니가 깍듯이 대하던 어머니가 얘기해도 죄송하다는 말뿐 요지부동이었다. "네가 아들 같다!"는 말도 거짓이었다는 생각에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7공주집' 안방 풍경

말씨름 끝에 가게를 비워주기로 한 날은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까 슬펐던지 아주머니도 나도 펑펑 울었다. 그날은 누구와 대화도 하기 싫었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만 생각났다. 술을 실컷 마시고 사고라도 쳐서 경찰서 유치장으로 끌려가는 게 차라리 편할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다.

간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거리는 여전히 화려했고, 사람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쁘게 움직였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 술과 음악이 있는 카페를 택했다. 술에 취해 기물을 부수고 경찰서로 끌려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비싼 양주를 한 병 가까이 마셔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 ‘개복동 술집골목’, ‘극장골목’으로도 불리던 최근 밤풍경. 화려한 간판, 아가씨들이 싸우는 소리, “오우~빠!”소리, 주정꾼들의 고함이 사라진 골목은 스산하기만 하다.
 ▲ ‘개복동 술집골목’, ‘극장골목’으로도 불리던 최근 밤풍경. 화려한 간판, 아가씨들이 싸우는 소리, “오우~빠!”소리, 주정꾼들의 고함이 사라진 골목은 스산하기만 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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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기에 카페에서 나왔다. 그런데 찬바람을 쐬니까 그런지 정신이 더 멀쩡해졌다. 순간 군산극장 옆 '개복동 술집골목'이 떠올라,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찾아갔다. 오가며 스치기만 했지 술 마시러 가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끌려가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에는 홍콩의 밤거리와 비교될 만큼 골목이 화려했는데, 합죽선 모양의 '칠공주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가씨들이 달려들 겨를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당의 정원수가 가장 먼저 반겼다. 방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스테레오 전축 소리, 젓가락 장단 소리, 손님과 아가씨가 뒤엉킬 때 나오는 숨넘어가는 소리 등은 시대극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혼자인데다 차림새도 그런대로 봐줄 만하고, 양주 냄새가 풍기니까 그런지 안방으로 안내됐다. 살림 도구를 보니까 주인이 사용하는 방 같았는데 빨리 취하고 싶어 소주를 한 병 시켰더니 영계백숙과 삶은 돼지고기, 깨강정과 호두 등 당시로는 비싼 고급안주들이 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옷차림의 아가씨, 공주 셋이 윙크를 하면서 썩은 고기에 파리 달라붙듯 바짝 다가앉았다. 싸구려 향수 냄새가 코를 아프게 했다. 머리 스타일과 행동거지, 말투가 공주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여인들이었지만, 내가 좋아서 찾아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함께 밤새울 것도 아니고, 곧 경찰서로 끌려갈 몸이니까.     

그런데 한 시간이라도 함께 어울릴 아가씨들 차림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집 아가씨라고 하지만, 공주를 자처하려면 '미워도 다시 한번'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문희'만은 못해도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검은 생머리 스타일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나 같이 지지고 볶아놓아 뒤에서 머리만 보면 영락없는 40대 아줌마였다.

머리만이 아니었다. 시커먼 망사 드레스와 브래지어 끈은 정나미를 떨어지게 했다. 모던한 분위기에 단정한 회사 여직원 옷차림을 좋아했고, 미니스커트보다 청바지 차림에서 매력을 느껴오던 터에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천박한 옷차림은 성욕이 일기는커녕 역겹고 메스껍기만 했다. 

갑자기 집에서 마음 아파할 아주머니와 초조하게 기다릴 어머니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술 마실 마음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아가씨들은 자기들끼리 잔을 주고받으며 술이 원수인 양 마셔댔다.

윗목에 있는 전축에서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가 흘러나오니까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는데 노래보다 반짝이는 밤색 포마이카 케이스가 더 맘에 들었다. 한 아가씨가 젓가락 장단에 맞춰 이미자의 '열풍'을 청승맞을 정도로 처량하고 간드러지게 불렀는데 "우~러라 여~얼풍아~ 밤이~ 새~도록" 대목은 지금도 귀에 맴돌면서 아가씨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내가 오줌을 쌌다고요?

소주를 한 병, 두 병, 세 병을 시켜서 마셨는데, 눈을 뜨니까 아침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경찰서 유치장이 아니라 '칠공주집' 안방 아랫목이었다. 취하면 고함도 지르면서 기물을 부수고 경찰서로 끌려가려고 작정하고 들어 왔는데, 후회와 함께 허탈감이 밀려왔다. 순간 바지 아랫도리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줌을 지린 것과는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주인은 상을 세 번이나 들였고, 소주도 열다섯 병을 시켜 마시고, 오줌을 쌌다고 했다. 소주를 그렇게 많이 시키지 않았고, 오줌을 싼 것 같지 않은데 이상했다. 하긴 내가 시키지 않았어도 아가씨들이 가져오라고 했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꼼짝없이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세 병을 마셨는데 어째서 열다섯 병이냐고 차분하게 따졌다. 그러나 주인은 자신의 계산이 정확하다면서 안방에 오줌도 쌌다고 우겨댔다. 엉거주춤 서 있던 아가씨들은 주인 편을 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입이 벌어질 뿐이었다.

아무리 취해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답답했다. 오줌을 쌌으면 팬티가 축축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더니 방이 따뜻해서 빨리 마른 모양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결국, 주인이 제시하는 계산서대로 요금을 치를 수밖에 없었는데, 소주 세 병 마시면서 왕 대접받은 대가가 황금 닷 돈값이라니, 액수도 액수지이만 바가지 쓴 것 같아 분통이 터졌다. 그렇다고 사건 현장검증 하듯 새로 해보자고 할 수도 없는 일. 다시는 '개복동 술집골목'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다짐 외에는 달리할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벅벅 우기면서 고함도 지르고, 기물을 부수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는데 놓친 것 같다. 기물 파괴도 해본 사람이나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아무튼 당시에는 당면 문제가 급급해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

한편, 생각하면 억울했던 '칠공주집' 사건이 생활에 교훈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개복동 술집골목'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술을 조심하는 버릇이 생겼으며, 술을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셔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두 추억의 이야기가 되겠는데, 이미자의 '열풍'을 간드러지게 부르던 공주님도 손자·손녀 재롱을 보며 행복해하는 할머니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혹시 길에서 만난다면 반가운 마음으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묻고 싶은 게 있다.

"제가 정말 소주를 열다섯 병 시켜 마시고, 오줌 싼 게 사실입니까?"

덧붙이는 글 | <그들의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 응모글



태그:#개복동술집골목, #군산극장, #보석상, #칠공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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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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