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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에 / 씨나락 똥구멍 간질이던 / 봄바람이 씨눈으로 잠들어 있다 // 쌀 한 톨에 / 아지메들 여윈 장단지 빨다 / 똥배 터져 죽은 왕거머리 우글거린다 // 쌀 한 톨에 / 메마른 하늘 두 동강 내던 / 날벼락이 내려치고 있다 // 쌀 한 톨에 / 훠어이 훠어이 참새 쫓다 / 에라이 모르겠다 주저앉은 허새비가 보인다 // 쌀 한 톨에 / 동지섣달 배불리 채우는 / 봄 여름 가을이 하얗게 잠들어 있다" - 이소리, '쌀 한 톨' 모두

 

21세기 들어 농민과 소비자를 하나로 이어주는 '로컬푸드'와 '식량주권'이 으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웰빙 바람이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게 불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도,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채소나 사료로 키운 닭, 돼지 쇠고기가 아니라 자연이 빚어낸 먹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글쓴이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자연이 빚어낸 먹을거리가 아닌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솔직히 말해 찜찜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골에서 나는 제철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먹을거리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긴 있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사람 생명을 이어주는 먹을거리에 대해서도 돈이 된다면 거리낌 없이 상표를 바꿔 붙이거나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먹을거리를 날짜를 고쳐 버젓이 파는 일이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위에 쓴 '쌀 한 톨'이라는 시도 그래서 쓴 것이다. '쌀 한 톨'에도 농약이 아니라 자연이 빚어내는 봄바람과 날벼락과 허새비가 숨 쉬고 있어야 사람을 살리는 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트 '밥상혁명'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책의 제목을 고민하다 '밥/상/혁/명' 네 음절을 떠올렸다.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본 것이야말로 나부터 시작해 결국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들판에서 총 대신 보습(삽 모양 연장)을 들고, 장터에서 칼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세상을 바꾸는 중이었다."

- 9쪽, '들어가며-밥상혁명이 시작됐다' 몇 토막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현장 취재를 하고 있는 강양구와 강이현 두 기자가 지구촌 먹을거리를 발가벗긴 음식 이야기 <밥상혁명>(살림터)을 펴냈다. 이 책은 넘쳐나는 식량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굶주리는 까닭은 먹을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분배가 엉터리로 이뤄지기 때문이며, '식량주권'이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다고 꼬집는다.

 

'먹을거리가 사람을 공격한다', '소농이 죽으면 끝입니다, 끝!', '10평 땅으로 일본을 지키는 사람들…… 우리는?', '이윤에 굶주린 자들을 굶겨 죽여라', '모두를 살리는 직거래의 지혜', '만드는 손과 먹는 손이 맞잡으니 세상이 바뀐다!', '빈 땅을 찾아라! 텃밭을 일궈라! 도시가 바뀐다' 등 11장에 실린 40여 편 남짓한 글들이 그것.

 

강양구, 강이현 기자는 "2008년 여름에는 먹을거리를 놓고 전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를 나선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도 벌어졌다"고 되짚는다. 이들은 "밥상에 올릴 먹을거리 때문에 한순간도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시민들, 도무지 희망이 안 보이는 막막한 미래에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인 농민들을 우선 독자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식량안보'가 아니라 '식량주권'이 더 중요

 

"지금 미국에서 1달러로 빵 한 조각을 사면 밀 재배 농민에게는 고작 6~7%가 돌아간다. 그 나머지는 고스란히 비료, 유통, 가공, 판매를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기업의 몫으로 돌아간다. 프리터 교수는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최종가격 기준으로 미국 3%, 영국 7%, 프랑스 18%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 23쪽, '먹을거리가 사람을 공격한다' 몇 토막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트'란 부제를 붙인 <밥상혁명>. 이 책은 먹을거리를 둘러싼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는 이들을 따라나선 <프레시안> 기자 두 명이 손땀 발땀을 흘려가며 꼼꼼하게 쓴 발가벗긴 먹을거리다. 이들은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영국, 인도, 일본 등에서 만난 농업과 먹을거리에 사랑을 쏟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먹을거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해법으로 내놓은 두 가지 공통 열쇳말은 '로컬푸드'와 '식량주권'. 이들 두 기자는 농민이 지역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소비자에게 이어주는 로컬 푸드와 로컬 푸드에 뿌리를 둔 식량주권을 몸과 마음에 깊숙이 새기며, 지구촌 곳곳에 있는 먹을거리에 대해 꼼꼼하게 따진다.

 

이들은 먼저 '로컬푸드'를 화두처럼 지닌 채 지구촌 여러 나라에서 농민장터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돋보기처럼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정부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거듭 되뇌는 식량 확보에 초점을 맞춘 '식량안보'가 아니라 지역 먹을거리에 뿌리를 둔 '식량주권'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왜? '식량주권'은 곧 '식량안보'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건강은 물론 지역, 문화, 환경 등을 아우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도시 밥상혁명은 '공동체 지원 농업 프로그램'으로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경기도에도 공동체 지원 농업 프로그램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광명, 안양 등의 '등대생활협동조합'과 팔당지역에서 유기농업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중심이 돼 조직한 팔당생명살림이 함께 진행하는 '제철 채소 꾸러미'는 미국처럼 자발적으로 공동체 지원 농업 프로그램을 꾸린 대표적인 예다."

- 131쪽, '모두를 살리는 직거래의 지혜' 몇 토막

 

지구촌 곳곳에 있는 먹을거리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들추어 본 이들 두 기자는 우리나라 농민과 소비자 움직임에 대해서도 망원경을 들이댄다. 이들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일어난 뒤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농민과 소비자 직거래 현장을 찾는다.

 

이들은 광명에서 박재훈(광명 YMCA 등대생활협동조합) 간사가 내뱉는 먹을거리에 대한 서글픈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키운 제철 채소가 거의 없다는 것. 까닭에 농민이 직접 기른 제철 채소를 소비자에게 직접 이어주는 등대생활협동조합과 같은 공동체 지원 농업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팔당생명살림은 1년 동안 30~40가지 제철 채소를 키우는데, 이들은 이 채소를 매주 1만5천 원 정도 값어치를 하는 꾸러미로 묶는다. 한 꾸러미 분량은 두 가구가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량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배달되는 이 꾸러미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만나 밥상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식량 자급률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외국 사정에 비해 2007년 기준 식량 자급률 26%, 쌀을 제외하면 식량 자급률 5%에도 못 미치는 한국 정부는 아직도 '태평세월'이다. 비슷한 식량 구조를 지닌 일본 정부의 절박한 움직임과 비교해보면,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247쪽, '한국정부는 국민을 굶겨 죽일 셈인가' 몇 토막

 

이들은 '식량주권'은 곧 식량자급률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는다. 왜? 지구촌 곳곳에 있는 선진국들 대부분이 식량자급률을 100% 이룬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먹을거리 상당수를 수입했던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식량 부족 사태로 혼땜을 한 뒤 공동농업정책을 통해 식량 자급률을 100% 이뤘다.

 

가까운 이웃나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08년 11월 13일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식량자급률을 95%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정했다. 이는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는 자국 식량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막고자 정부가 옥수수와 밀가루에 대한 수출 승인 등록 절차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까지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는 2007년 현재 26%인 식량 자급률을 2015년까지 25%로 오히려 낮춰 잡았다. 그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농업 진흥 지역에서 농지를 전용할 때 '대체 농지'를 확보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농지법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가결시켰다. 이는 위급한 때가 되면 국민은 굶어죽으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강양구, 강이현이 발로 쓴 <밥상혁명>은 농업을 살리는 길은 '로컬푸드'와 '식량주권'이며, 이 두 가지 화두야말로 사람을 공격하는 먹을거리가 사람을 살리는 먹을거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따라서 이 책은 농민과 소비자만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식량주권'을 잘 모르는 이명박 정부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임에 틀림없다.                  

 

강양구, 강이현 기자는

강양구는 1977년 목포에서 태어나 2003년부터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을 담당하는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부안사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대한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 굵직굵직한 기사를 썼다. 지은 책으로는 <침묵과 열광>,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받음.

 

강이현은 1983년 수원에서 태어나 2006년부터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사회팀에서 교육·문화·인권·환경 등 여러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그는 2006~2008년까지 지역 먹을거리와 식량 주권을 주제로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밥상 혁명' 현장을 둘러보았다. 지은 책으로는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밥상 혁명 -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트

강양구.강이현 지음, 살림터(2009)


태그:#밥상혁명, #강양구, 강이현,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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