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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이 동지다. 한 해 중에서 해가 가장 짧다는 날이다. 요즈음은 무엇 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다. 이런 날 생각이 나는 소리가 하나 있다. 그저 속 시원히 누구 하나를 빗대고 할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살면서 한 번쯤은 욕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 잡놈 참 속깨나 끓게 하네 그려

 

정월이라 대보름날에 액맥이 연을 띄우는 시절인데

만리장서를 보냈건만 우리 잡놈은 어딜 갔나 만리장서를 못 보내나

 

이월이라 한식날은 북망산천 찾아가서 무덤을 안고 통곡을 하니

왔느냐 소리도 아니하네

 

삼월이라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라도 일 년에 한 번씩 오건마는

우리 잡놈은 어딜 갔나 삼년이 되어도 아니 오네

 

사월이라 초파일은 집집마다 등을 달고 자손발원을 하건마는

우리 낭군은 어디를 가서 자손발원을 왜 못하나

 

오월이라 단오날은높드란 가지에 당사실로다

그네를 매고임이 뛰면 내가 밀고 내가 뛰면 임이 미는데

임아 임아 줄 밀지마라 줄 끊어지면 정 떨어진다

 

유월이라 유두날은백분천유에 진진전병 쫄깃쫄깃 맛도 좋네

빈 방안에서 혼자 먹기가 금창이 막혀서 못 먹겠네

 

속 시원하게 한번 불러봐

 

요즈음처럼 시원한 일 없는 세월에는 그저 푸념어린 소리가 제일이다. 12달을 들어 가슴 속에 응어리진 설움을 달래며 부르는 부녀자들의 소리인 자탄가(自歎歌)는, 우리 소리 중에도 백미다. 낭군이 먼 길을 떠났는데 오마하는 소식 한 장 없다. 그래서 긴 사연을 적어 밤을 홀로 지새우는 편지를 띄었는데, 그 낭군은 답이 없다. 그래서 욕을 해댄다. 그러다보면 조금은 속이 시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을 요즈음 세태로 바꾸어 불러보면 속이 좀 시원해 질라나 모르겠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살기는 힘들어진다. 공과금까지 마구 올리는데, 돈은 모두 재벌이라는 사람들 손으로 들어간다. 우리 마을은 강 옆에 있다. 아직은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지하수로 식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보인가 둑인가를 막는다고 물이 흙탕물이 되었다. 그 물을 먹고 살란다. 저희더러 그런 물을 마시라고 하면 마실까 모르겠다.

 

어디 그뿐인가. 세상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다. 이럴 때는 그저 이 소리의 사설처럼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소리라도 하면 좋겠다. 좀 심한 소리를 하면 요즈음은 먼 법에 걸려도 걸리니, 소리로 하면 괜찮을 것 같다. 단지 소리였으니 말이다.

 

 

칠월이라 칠석날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

은하작교 먼 먼 길에도일 년에 한 번 씩은 오건마는

우리 잡놈은 어디를 가서날 찾아 올 줄을 모르는가

 

팔월이라 한가위 날은 오리 송편을 빚는 절기

북망산천을 찾아가서 애걸 통곡을 다하여도

우리 잡놈은 어디 가서 날 찾아 올 줄을 왜 모르나

 

구월이라 구일 날은 미물짐승 기러기도 일 년에 한 번씩 다녀가요

우리 잡놈은 어디를 갔나 날 찾아 올 줄 왜 모르나

 

시월이라 상달인데 집집마다 고사치성

불사님 전에도 백설기요 터주님 전에도 모듬 시루라

우리 잡놈은 어디를 가서 치성 떡도 못 얻어먹나

 

동짓날 접어드니 절기는 벌써 내년인데

동지 팥죽을 먹고 나니 원수에 나이를 더 먹었네

우리 낭군은 어디를 가서 날 찾아 올 줄을 왜 모르나

 

섣달이라 그믐이 되면 빗진 사람 졸리는데

정월 보름날 돌아오면 복조리 사오 복조리를 사라고 하는데

임 건지는 조리는 왜 안파나

 

동지 날 한풀이나 해볼까?

 

 

오늘이 동지다. 세상이 하도 힘들다보니 그 흔한 동지팥죽 한 그릇 주는 곳이 없다. 그래서 시장에 나가 팥죽이라도 한 그릇 사 먹으려고 하니. 장날이 아니라고 문을 닫았다. 그저 힘든 사람들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그것이 요즈음의 우리네 살림살이다.

 

이 노래의 끝은 그야말로 전개의 극치다. 복조리를 사라고 소리를 치는 섣달인데, 임 건지는 조리를 안 판단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집 나간 낭군. 이 소리를 들으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생각이 난다. 한 번 나간 그 돈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다시 돌아 올 줄을 모르니 말이다. 이래저래 힘든 세상살이에 꼭 한 번 시원스레 불러보고 싶은 소리다.

 

그래도 시월까지는 '잡놈'이라고 부르던 호칭을 동지부터는 '님'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소리의 반전을 보면 '기가 막히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한 순간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소리에다가 사설을 한 번 바꾸어 불러보자. 조금은 속이 시원해지지 않을까? 팥죽을 쑤어 여기저기 뿌리며 액막이를 하는 날이다. 오늘은 이 소리의 사설을 바꾸어 부르며, 동지 속풀이는 한번 해보자.


태그:#동지, #자탄가, #우리 소리, #팥죽, #속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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