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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지하철 역. 50대 어르신 한 분이 지하철 무인 티켓 발매기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아마도 티켓 발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곧 한 역무원이 다가가 그 분을 도와주었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역무원의 도움을 거치지 않고서는 티켓을 전혀 발권하지 못했다. 심지어 40대로 보이는 이도 주위의 도움을 청했다.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도움을 요청할 때는 역무원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한 어르신께서 교통카드 충전에 어려움을 겪자 역무원이 이를 돕고 있다.
▲ 역무원과 어르신 한 어르신께서 교통카드 충전에 어려움을 겪자 역무원이 이를 돕고 있다.
ⓒ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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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홀로 티켓 발권 사실상 불가능

서울 지하철 공사와 5678 서울 메트로가 무인 티켓 발매기 가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1일부터. 기계를 도입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기계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과 노인들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기계 도입 전 노인들은 매표소에서 쉽게 우대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인 티켓 발매기를 이용할 때는 상황이 180도로 달라진다. 일단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도입 초기 일부 노인들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불편을 겪기도 했다.

다음 순서는 1회용, 우대용, 교통카드 충천 버튼 중 '우대용'을 누르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져온 신분증을 정확히 기계에 놓아야 하는데 난감해진다. 기계에는 신분증 놓는 곳, 교통카드 놓는 곳, 지폐를 넣는 세 군데의 투입구가 있어 헷갈리기 때문이다. 또한 신분증을 사진이 보이도록 아래로 두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돈을 거부하는 기계는 다시 한번 노인들을 힘들게 만든다. 조금이라도 구겨진 지폐는 기계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넒은 신촌역, 무인 티켓 발권기는 10여대, 역무원은 단 한 명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사이 기존 매표소였던 고객서비스센터의 문은 굳게 닫혀있는 실정이다. 무인 티켓 발권기가 10여대나 놓인 넓은 신촌역이지만 단 한 명의 역무원만이 담당하고 있다. 그나마도 계속 돌아다니고 있어 출퇴근 시간에는 역무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서울지하철공사 측은 무인 지하철 티켓 발권기 도입 이유로 "기존 지하철 표를 파는 일은 기계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진짜 기계에게 맡기기 위해서"라며 "역무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 친절한 안내를 하기 위해 기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히려 역무원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숨은그림찾기'를 통해 역무원을 찾아내야 하는 실정이다.

배영진(71)씨는 미국에서 온 친구를 위해 1회용 티켓 발권을 하느라 기계와 씨름을 벌여야 했다. 배씨가 헤매고 있는 사이 주말 저녁이라 길게 늘어선 대기줄은 그를 더 당황하게 했다. "한국에 사는 내가 좀 도와주려고 했더니 오히려 내가 더 모르겠다"며 머쓱해 했다. 그러면서 "지하철 역 내에 도움을 요청할 역무원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안내소라도 하나 설치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이외에도 시니어카드 발급 대상이 아닌 50대 장년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또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지하철을 이용하는 노년층에 대한 서비스 또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지하철공사, 노인들 위한 시니어카드 보급에 힘쓰고 있어

이러한 불편에 대해 서울지하철공사 측은 "노인들의 불편함을 예상했다. 그래서 작년 말 '시니어카드'를 도입했다. 이는 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카드이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8월 말까지 서울 지역 노인 대상으로 89%가 보급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닫혀 있는 안내소 설치 문제에 대해 "올 연말까지 지금은 닫혀있는 고객안내센터를 한 개소씩 열 계획"이라며 "기존의 닫힌 창을 미닫이 창으로 바꾸어 좀 더 고객들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서울 지하철 매표소의 역무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굳게 닫혀있는 2호선 신촌역의 고객서비스센터
 굳게 닫혀있는 2호선 신촌역의 고객서비스센터
ⓒ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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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서울 지하철 역에 무인 지하철 티켓 발매기가 설치된 후 매표소의 문은 모두 닫혔고 그 곳의 역무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늘 매표소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티켓을 판매하던 역무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기계화로 인해 대량 해고라도 된 걸까?

모 지하철 역사에서 만난 A 역무원은 "대량 해고 사태는 없었고 역마다 1~2명씩 해고되었어요"라며 "하지만 기계를 들여왔으니 예전보다 필요한 노동력은 줄어들어 앞으로 더 이상 채용을 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하네요"라고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어디서 근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지하철 한 켠을 가리키며 역무원 실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기자의 눈에는 도무지 역무원 실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승객들을 훤히 볼 수 있는 넓은 고객서비스센터를 두고 왜 구석에 자리잡은 역무원 실에서 일하는 걸까?

서울 지하철 공사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객서비스센터를 개조할 계획이다. 현재 있는 유리창을 미닫이 창으로 바꿀 것이다. 그래서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현재는 임시로 닫아두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벌써 고객서비스센터는 7개월 째 그 문을 굳게 닫아두고 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불편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 무인 지하철 티켓 발매기로 인해 역무원들의 노동의 강도는 더 줄어들었을까? B역무원은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하며 이러저러한 힘든 점을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매표소에 앉아서 일했는데 지금은 자리도 없이 돌아다니며 고객 서비스를 해야 하니 더 힘들어요. 게다가 노인 분들이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해 거의 일일이 도와드려야 해요. 또 기계가 에러사항을 이야기해줘도 시민들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또 저희가 해결해드려야 하죠. 부정승차자 단속이 어려운 것도 문제예요. 기계로 청소년 용으로 발권해서 이용해도 저희가 알아낼 방법이 없어요."

고객 서비스와 역사 관리로 인한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인 지하철 티켓 발매기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그는 "기계가 한번 고장 나면 고치는데 20분씩 걸려요"라며 "또 기계가 돈 계산을 다 해주지도 않아요. 그래서 역무원들이 기계에서 돈을 걷어와 천원 권, 오천원 권, 만원 권을 각각 분리해서 다시 세어야 해요. 기계 도입 이후 일이 훨씬 더 많아졌어요"라고 말했다.

심지어 A역무원은 "2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무인 티켓 발매기가 들어오고 난 이후 고용과 노동환경이 가장 불안해진 것 같아요"라며 "이번에 있었던 변화로 인해 일어난 에피소드만 해도 책 한 권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 같네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 지하철 역 내에서 역무원은 예전만큼 볼 수 없지만 그들이 모두 해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큰 돈을 들여 도입한 무인 지하철 티켓 판매기가 오히려 역무원의 일을 더 늘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서울 지하철 공사 측은 더 친절한 서비스를 위해 기계를 도입했다고 했지만 문을 닫은 고객 서비스 센터는 오히려 이를 반증하고 있다. 또한 역무원들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기계를 돌보느라 정작 '사람'은 돌보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대학 기자상’ 응모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태그:#서울지하철, #무인티켓발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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