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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 좋은 이유는 공기도 좋지만 우리 기억 속에서 천천히 잊혀져 가는 모습들 아직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가 우물입니다. 요즘은 상수도가 면지역까지 보급되어 우물을 먹는 물로 쓰는 사람들은 얼마 없지만 아직도 빨래와 설거지 물로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머니집 뒷집에는 아직도 옛 우물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여든 다섯 된 할머니 한 분이 골다공증으로 허리가 다 굽었는데도 이 우물에서 빨래하고, 설거지를 합니다. 어릴 때 이 물에서 물도 마시고, 등목도 많이 했는데 옛 주인은 다 어디라고 가고 할머니만 혼자 사시면서 우물과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겨울이라 손이 시릴 것인데도 전기요금이 아깝다는 이유로, 아직도 이 정도 빨래는 할 수 있다는 의지로 우물에서 빨래를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육신을 놓으시면 이제 더 이상 이 우물을 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지 외로이 있는 두레박이 오늘 따라 쓸쓸해보입니다. 저 두레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는 목마름을 해결했을까요. 두레박이 새 주인을 만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물과 두레박을 바고 집을 나오려고 했는데 옛날 피곤한 몸을 뉘었던 평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억으로는 30년은 넘었습니다. 이 집은 셋째 큰 아버지이었습니다. 평상 위에서 뛰놀다가 큰 아버지께 혼 난 일이 생각납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 지, 동네가 쩌렁쩌렁했습니다. 하지만 큰 아버지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가고 없지만 평상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옆에 있는 화덕과 하얀 솥이 주인 잃은 평상과 동무를 하고 있으니 평상도 외롭지는 않겠지요.

 

설날과 한가위만 되면 큰 아버지 집 절구는 쉴틈이 없었습니다. '퍽''퍽'' 떡방아를 찧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절구는 있는데 절굿공이가 없습니다. 동무잃은 절구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요? 절굿공이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들어니 얼마 전에 몹쓸 사람들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옛날 물건을 훔쳐갔다고 합니다. 절구는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절굿공이만 들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절구에 절굿공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절굿공이 역시 절구가 있어야 자기 역할을 하는데.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 절구를 통하여 설날과 한가위 때 떡만 해 먹은 것이 아니라 나락과 밀을 찧은 기억도 납니다. 옛 추억을 빼앗간 그 사람들이 미워집니다.

 

흙과 돌, 볏짚으로 만든 담은 생각보다 튼튼합니다. 금방 무너질 것 같지만 모진 비바람을 이기고 주인이 떠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서 있습니다. 무너질듯 무너질듯, 행여나 올 여름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마음 졸이지만 콘크리트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연과 함께 어울릴 때 그것이 얼마나 끈끈하고, 강한 것인지 흙벽 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또 다른 집이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손짓하고, 간절히 바라지만 콘크리트 문화에 익숙한 2009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흙집을 팽개쳐버렸습니다. 그러니 외롭습니다. 외롭기 그지 없는 이 집에 과연 누가 동무가 되어 줄 수 있을까요?

 

3년 전까지만 해도 찾아오는 이는 없었지만 사는 이는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80평생을 살았던 집입니다. 80평생을 혼자 사시면서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분이었습니다. 몸을 놓은지 이제 3년, 가시나무 울타리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가시나무는 살아있는데 사람은 없어니 저 가시나무도 참 외로울 것입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집에 가면 베개와 허리춤에 꼬깃꼬깃 모아두었던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아이들 과자 사주라, 기름값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허리춤에서 꼬깃꼬깃 꺼낸 만 원 짜리 한 장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오늘 따라 보고싶습니다.

 

시골에 갈 때마다 우물과 두레박, 절구를 보지만 이제 옛 주인은 다 떠나간 자리는 사람냄새 마져 없어지고 있습니다. 두레박도 외롭과 절굿공이 잃은 절구도 외롭습니다. 절굿공이 가져간 사람, 절구가 더 외롭지 않게 빨리 갖다 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시골은 우물도 있고, 두레박도 있고, 절구도 있으니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사람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태그:#우물, #두레박, #절구, #절굿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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