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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제167호인 무안 나상열 가옥. 전남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698에 소재한다. 천석지기 집이라고 마을에서 소문이 나 있는 나상열 가옥은, 농사를 짓는 대농의 집이라고 보기에는 그저 놀라움으로 다가선다. 약 90년 전에 지은 안채와 일제 때 지은 창고, 그리고 문간채와 중문채가 자리를 하고 있다. 나상열 가옥을 찾아갔으나, 이 집 역시 이번 답사 길에서 만난 중요민속자료들 같이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여기저기 정리를 하고 있는 흔적으로 보아 보수를 하는 듯하다.

중요민속자료 제167호인 무안 나상열 가옥. 전남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698에 소재한다. 안채에서 마당으로 내려오는 길이 계단과 비탈로 되어있다. 비탈은 수레가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 나상열가옥 중요민속자료 제167호인 무안 나상열 가옥. 전남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698에 소재한다. 안채에서 마당으로 내려오는 길이 계단과 비탈로 되어있다. 비탈은 수레가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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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은 전체적으로 3단의 구조로 구축되었다. 맨 위에는 안채가 있고, 계단을 내려 맞은편에 창고와 중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맨 아래편 3단에는 대문과 행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부호답게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집의 전체적인 구조로 보아 예전의 건물에서 사라진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대문도 창고로 사용한 부호의 집

나상열가옥의 대문은 일반적인 집과는 다르다. 커다란 대문을 갖고 있을 경우, 그 양편은 행랑채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높다랗고 큰 나상열 가옥의 대문은 다르다. 문 앞과 안 편이 모두 판자문을 만들어 놓았다. 들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창고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집에는 곳곳에 곡식창고를 만들어 놓았다는 소리다. 그만큼 천석지기의 집에는 다양한 창고가 필요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각건대 이 대문에 붙은 창고는 원 곡식창고에서 곡물을 밖으로 운반하기 전에 사용한. 중간 창고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상열 가옥의 대문은 행랑채가 아닌 창고로 이용이 되었다
▲ 대문 나상열 가옥의 대문은 행랑채가 아닌 창고로 이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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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앙편을 창고로 싸용하기 위해 행랑채는 별채로 구성하였댜
▲ 대문과 행랑채 대문 앙편을 창고로 싸용하기 위해 행랑채는 별채로 구성하였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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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는 대문 안을 들어서면서 좌측으로 나 있다. 이곳도 너른 광을 만들고 그 한편 구석에 방을 들여 놓았다. 너른 공간을 최대한으로 확보를 한 형태다. 나상열 가옥이 오밀조밀한 멋을 벗어나 시원하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대부가의 굴뚝보다 높은 굴뚝

조선조 말부터 지방의 토호들이 생겨나면서 기와집을 선호하게 되었다. 자신의 부를 상징하는 기와집은, 대개는 ㅁ자형의 가옥형태나 ㄷ자형의 가옥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나상열  가옥은 맨 위쪽에 ㅡ자형의 구조로 집을 지었다. 안채는 사면에 툇마루를 달아냈다. 그런데 이 집의 구조 중, 눈에 띠는 것은 바로 굴뚝이다. 3개의 높다란 굴뚝이 서 있다.

사대부가의 집을 본 떠 높인 굴뚝. 자신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높다란 굴뚝 사대부가의 집을 본 떠 높인 굴뚝. 자신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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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가의 굴뚝보다도 더 높은 굴뚝. 처마를 지나 솟아있는 굴뚝은 이 집의 위용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렇게 높은 굴뚝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집이 지어질 당시에는 양반가들이 몰락을 가져올 시기와 맞물린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굴뚝을 높이 세움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ㅡ자형의 안채에 굴뚝이 세 개가 섰다는 것도, 이 가옥에 사는 집주인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숨은 뜻이었을 것이다.

부엌과 연결된 마루의 용도는?

나상열 가옥에서 눈에 띠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안채에 딸린 부엌이다. 이 부엌은 안쪽과 문쪽에 작은 방을 두었다. 아마 안채에서 일을 하는 식솔들이 이용한 듯 하다. 그런데 그 방 사이에 마루가 있다. 앞을 문을 단 것으로 보아 대청은 아니다. 마루방의 한편에는 벽에 붙여 계단식으로 짠 것이 보인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용기를 보관하는 곳인가 보다.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테니, 그만큼 집안에서 사용하는 용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보관하기 위해 마루방을 만들 정도로 세심한 배려를 하고 지은 셈이다.

벽장을 만들어 많은 양의 용기를 정리할 수 있는 찬방을 만들었다
▲ 부엌에 딸린 찬방 벽장을 만들어 많은 양의 용기를 정리할 수 있는 찬방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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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뒤편에 있는 석빙고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기거를 하면 그만큼 음식을 만들 때도 많은 양의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그 많은 양의 음식재료를 날마다 사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한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해 안채의 뒤편에 굴을 파고 석빙고를 만들었다. 이 석빙고는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의 적당한 숙성까지도 도왔을 것이다. 결국 이 집안의 음식은 항상 신선한 것을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많은 음식물을 저장하기 위해 굴을 팠다. 그리고 석재로 앞을 처리해 석빙고를 만들었다
▲ 음식창고인 석빙고 많은 음식물을 저장하기 위해 굴을 팠다. 그리고 석재로 앞을 처리해 석빙고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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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에서 자라나는 나무의 정체는?

우물에 도르래를 달아서 사용을 한 흔적이 보인다. 사람들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많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물의 사용양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음식을 조리하는 집안 아낙네들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데 사용하는 힘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우물의 양편에 기둥을 세워 도르래를 달았다.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기 위해 우물에 도르래를 달았다
▲ 우물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기 위해 우물에 도르래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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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속에는 등나무와 같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생육이 활발한 것으로 보아 밑에는 물이 있다는 증거다
▲ 우물 속 우물 속에는 등나무와 같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생육이 활발한 것으로 보아 밑에는 물이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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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갔다. 안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물 안에 등나무와 같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왜 이 안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저 나무는 어떻게 저곳에서 자라게 된 것이고, 언제부터 저렇게 자라고 있는 것일까? 무성한 잎이 싱싱해 보인다. 그 밑에는 물이 있다는 소리다. 나상열 가옥을 돌아보면 여기저기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거대한 정원과 안채보다 더 큰 곡간
        
천석지기의 집답다. 무안 나상열 가옥을 둘러보면서 느낀 것이다. 3단으로 된 집의 구조 중에서 안채가 1단이라면, 2단에는 곡식창고와 중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안채에서 계단을 내려 곡식창고가 자리하는데, 그 앞뜰이 상당히 넓다. 왜 이렇게 안마당이 넓은 것일까? 그것은 이곳에서 추수를 하고, 탈곡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천석지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과 절약을 했을 것이다. 그러한 집 주인이 곡식을 걷을 때, 밖에서 하게 놓아 둘리가 없다. 창고를 안채 맞은편에 지은 것을 보아도, 주인이 곡식의 관리를 늘 눈여겨보았다는 점이다.

일제 때 지어진 이 창고는 안채보다도 더 크다. 많은 양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 마당이 넓은 것인 이곳에서 곡식을 타작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곡간 일제 때 지어진 이 창고는 안채보다도 더 크다. 많은 양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 마당이 넓은 것인 이곳에서 곡식을 타작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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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너른 안마당은 바로 추수를 하고, 그것을 털기 위한 장소로 활용이 되었던 곳으로 보인다. 곡간 창고는 안채보다도 더 크다. 천석지기가 이 안에 가득 곡식을 쌓아 놓았고, 그 쌓인 곡식이 좁은 창고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안채보다도 큰 곡식창고. 바로 천석지기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일제 때 지어졌다는 이 창고의 크기로 보아 집 주인이 당시 지방의 토호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반전의 미학, 아름다운 돌담장

집안의 전체를 돌담장으로 쌓은 나상열 가옥. 그래서 전체적으로 무거운 집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또한 그 무거움을 덜어내는 하나는 담장의 한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안채를 보고 좌측의 담장 앞으로는 계단이 아닌 비탈로 조성을 하였다. 곡식을 나르기 위한 수레가 다니던 길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너른 대지위에 시원하게 조성된 나상열 가옥에서, 정감이 가는 유일한 축조물이 바로 돌담장이다. 이 담장은 담장에 붙은 대문과 행랑채까지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에는 수레를 끌 수 있는 비탈로 여유를 부렸다. 천석지기 집이라는 나상열 가옥에서 보이는 전체적인 여유. 그것은 생활의 여유이기도 하다.

반전의 미학이다. 전체적으로 크고 무거운 집의 구조를 아름다운 돌담장으로 희석시켰다
▲ 아름다운 돌담장 반전의 미학이다. 전체적으로 크고 무거운 집의 구조를 아름다운 돌담장으로 희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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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상열가옥, #무안, #중요민속자료, #천석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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