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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은 금방 비를 뿌릴 것 같았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지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가기 싫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는 도중 전화가 왔는데 먼저 약속한 사람이 자기는 못가겠다고 한다. 참 난감했다. 발걸음을 돌리고 싶었지만 이왕 나선 걸음 가기로 했다.

걸음을 멈춘 곳은 경남 진주YWCA가 결혼이민여성들을 위해 마련한 '결혼이민여성박람회'였다. 취업박람회 주제는 "꿈을 '잡'(JAB)아라"였다. 박람회 장소인 진주산업대학교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진주에서 결혼이민자여성을 대상으로 한 취업 박람회는 처음 열렸다.

결혼이민자 여성 취업박람회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컷팅을 하고 있다.
 결혼이민자 여성 취업박람회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컷팅을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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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를 주최한 진주 YWCA는 결혼이민여성들이 "가정,육아뿐 아니라 한국사회 일원, 직업인으로 당당히 서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고, "가정 경제에 보탬만 아니라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취업을 하고 싶은 열망이 강해 박람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베트남에서 온 황티옌씨(22세)를 만났다. 황티옌씨는 우리나라에 온지 3년밖에 안 되었지만 우리말을 정말 잘했다. 단어와 발음 모두가 정확했다. 발음이 조금 어눌한 나보다 우리 말을 더 잘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황티옌씨가 취직하고 싶은 직장은 박람회에 참여한 10개 업체 중 '○○여성병원'이었다. 황티옌씨가 여성 병원에 취직하고 싶은 이유는 이민산모들이 출산을 앞두고 간호사·의사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게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황티옌씨 말은 ○○여성병원 관계자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여성병원은 결혼이민자 여성 출산 비율이 약 5% 정도 된다. 출산 과정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느낌으로 산모를 진료했는데 이민여성을 통역으로 세운 후부터 진료와 출산과정에서 긴밀한 대화, 산후 조리까지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어 박람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다 겪는 문제인 육아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참여업체인 한 중국어 교육 기관은 취업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중국에서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했고, 비자도 취업비자 대신 결혼비자여야 서류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2차는 전화 면접심사인데 베이징 표준어 발음을, 3차는 연수원 과정에서 인성과 소명까지 본다고 했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한 이민자 여성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한 이민자 여성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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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간절히 바라는 글을 적어 놓은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나는 미싱을 잘 해요. 미싱사 되고 싶어요", "나는 아이를 잘 돌 볼 수 있어요. 베이비시티 하고 싶어요", "나는 요리를 잘 해요", "나는 중국어를 잘 해요!"라며 취업을 바라는 글귀가 대부분이었지만 문득 눈길을 사로잡은 글은 "대학교 가고 싶다"였다.

공부를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취업 박람회까지 와서 대학교에 가고 싶다 했을까? 이들 여성들이 본국에서는 어느 정도 학력을 가졌지만 한국 남성들과 결혼하며 자기 꿈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이 여성의 대학교 가는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람회는 취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결혼이민여성들이 자기만의 취미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비누 만들기, 손톱 가꾸기, 사진기술, 옷수선 따위를 통해 자기만의 취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냥 직장을 찾아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혼이민여성들만 아니라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취업박람회에 함께 다양 취업체험 행사가 열렸다.
 취업박람회에 함께 다양 취업체험 행사가 열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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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명함 만들기를 하고 있다.
 자기만의 명함 만들기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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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박람회에 참여한 업체들은 어학과 미용업이었는데 이는 진주 YWCA가 설문조사를 통해 결혼이민여성들이 가장 바라는 직종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이민여성들이 바라는 대로 작은 박람회가 열렸다. 과연 이들은 꿈을 '잡(JAB)'을 수 있을까.


태그:#결혼이민자, #취업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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