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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주택가로 뛰어드는 멧돼지 때문에 난리다. 특히 서울 중심가인 종로 인근에도 심심치 않게 멧돼지 출현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올해 들어 종로 인근에 멧돼지가 나타난 것만도 3차례. 지난 3월 20일 오전 10시 30분 경 삼청동 삼청공원 내에 멧돼지가 출현해 소방대원과 경찰, 유관기관 관계자 24명이 출동해 2시간 30분간 추격하다 마취총 2발을 발사해 잡았다. 이후 4월 15일 밤 11시 경에도 부암동 북악스카이웨이 입구에 멧돼지가 출현해 소방대원과 군인, 경찰 등 31명이 출동해 1시간 30분 만에 포획하기도 했다. 그리고 9월 19일에는 9시간의 사투 끝에 멧돼지를 잡을 수 있었다. 매일매일 멧돼지와 사투에 대비해 근무 중인 119 대원들의 모습을 전한다.)

"평창동에 멧돼지가 나타났어요!!"

식인멧돼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차우> 포스터.
 식인멧돼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차우> 포스터.
ⓒ 영화사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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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새벽 1시 30분, 서울 종로소방서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119구조대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두진(27) 대원은 동료들과 함께 곧 출동 준비를 갖추고 차에 올랐다. 새벽 1시에 멧돼지가 나타나다니, 그놈은 잠도 없나?

구조대 근무를 시작한 지 이제 1년, 그동안 벽 사이에 끼인 고양이, 행인들을 위협하는 주인 없는 개 등을 상대한 적은 있지만 멧돼지는 처음이다. 얼마나 큰 놈인지 모르지만 그냥 커다란 개 한 마리와 맞선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대원들의 안전을 우선 생각하고, 멧돼지를 발견하면 즉시 무전으로 연락하라. 섣불리 다가가지 말아라."

어느새 도착한 현장. 구조대 부대장은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출동한 대원 9명은 곧 2~3명씩 조를 이루어서 주택가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추석을 앞두고 둥근 달이 뜬 새벽,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멧돼지는커녕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어딘가에 숨어있던 멧돼지가 사람을 보고 놀라서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온몸이 긴장되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멧돼지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구조대원이 겁을 먹거나 해서는 안 된다. 골목을 구석구석 훑어보지만 멧돼지는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혀서 잠을 자는지, 아니면 다시 산으로 올라갔는지도 모르겠다.

새벽 1시 30분, 119구조대를 뒤흔든 전화벨


"멧돼지는 보이지 않는다. 산으로 돌아간 것 같다. 대원들 전원 귀소한다."


다급히 출동했지만 멧돼지 얼굴도 못 보고 그냥 철수했다. 멧돼지가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면 그것은 다행일까, 아닐까. 소방서 구조대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2시 30분. 출동하고 한 시간만에 다시 대기상태로 들어갔다.

조두진 대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소방관을 꿈꾸어 왔다.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가. 화재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대원들이 멋지게 보인 것이다. 그는 경원대학교 소방학과에 입학했고, 공군 소방대에서 군복무를 하며 소방대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종로소방서 구조대에서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위험한 일이지만 여자친구도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멧돼지가 나타났어요!"

다시 신고전화가 걸려온 시간은 새벽 6시 30분. 계속 대기상태에 있던 조두진 대원과 동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출동했다. 마취총과 그물, 올가미를 챙겨서 차에 올랐다. 북한산에 있던 멧돼지가 지금처럼 도심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 먹이를 찾아서 내려오거나, 아니면 수컷들 사이의 영역 싸움에서 패한 멧돼지들이 내려오는 것이다.

차라리 아까 발견해서 잡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이제 조금씩 시민들의 출근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만큼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른 아침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달리는 차도 조금씩 늘어갔다. 현장에 도착해서 다시 부대장의 지시대로 조를 나누어서 수색에 들어갔다.

119구조대 사무실 내부
▲ 종로소방서 119구조대 사무실 내부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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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골목에서 멧돼지 발견, 반대쪽으로 몰아가겠다."

수색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멧돼지를 찾았다. 폭이 1m 정도 되는 좁은 골목에서 한 대원이 멧돼지와 마주친 것이다. 보통 멧돼지는 사람을 보면 피하기 마련이다. 대원이 멧돼지를 맞은 편으로 몰아갔다. 멧돼지가 뒤로 돌아서 반대편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그쪽에서 여러 명의 경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퇴양난에 빠진 멧돼지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결정을 내렸는지 다시 뒤로 돌아서 소방대원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흥분한 멧돼지와 사람이 일 대 일로 맞서면 위험하다. 멧돼지가 돌진해오는 순간, 골목에 있던 소방대원은 몸을 옆으로 돌려 피했고 멧돼지는 골목을 빠져나와 거리로 들어섰다. 멧돼지가 스쳐지나가는 순간, 소방대원은 야생동물 특유의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았다.

골목 누비던 멧돼지, 승합차와 부딪치고도 멀쩡

소방서의 장비들
▲ 종로소방서 소방서의 장비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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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총 준비!"

다른 대원이 마취총을 꺼내서 멧돼지를 겨냥했다. 갑자기 넓은 거리로 들어선 멧돼지는 혼란스러운지 머뭇거렸다. 마취총이 빗나가거나 엉뚱한 곳을 맞히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멧돼지를 더욱 흥분시킬 가능성이 있다. 정확히 쏴야 멧돼지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멧돼지의 모습이 이제 조두진 대원의 눈에도 들어왔다. 길이가 1m는 훨씬 넘을 것처럼 보였다.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녀석은 단단한 네 다리로 버티고 서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자신의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둘러봤다. 저 놈을 잡으려면 고생 좀 하게 생겼다.

그 순간 마취총이 발사되었다. 명중! 멧돼지는 몸에서 어떤 통증을 느꼈는지 달리기 시작했고, 그 앞에 갑자기 승합차가 나타났다.

꽝!

거리를 달리던 승합차는 멧돼지와 정면 충돌했다. 차는 한 번 기우뚱하며 흔들렸고 앞 범퍼 한쪽이 잔뜩 찌그러졌다. 승합차와 충돌했으니 멧돼지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때 달려들어서 그물을 던지면 수월하게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승합차와 부딛힌 멧돼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소방대원 두 명이 멧돼지의 진로를 막고 서서 그물을 들었다. 달려가던 멧돼지는 본능적으로 그물의 정체를 파악하고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물을 들고 있던 대원에게 그대로 돌진했다.

"아앗!"

어느새 멧돼지는 그 대원의 팔뚝에 날카로운 이빨을 한 번 박아 넣었다. 포위망을 벗어난 멧돼지는 힘차게 달려갔다. 대원은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흥분한 멧돼지에게 물렸으니 그 상처는 얼마나 심할까.

탕!

한 쪽에 있던 경찰이 멧돼지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조용한 주택가에 권총 소음이 울려퍼졌고 총을 맞은 멧돼지는 한 번 비틀하더니 피를 흘리면서 방향을 바꿔 산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마취총과 권총을 한 발씩 맞고도 저렇게 달려갈 수 있다니, 저놈이야말로 북한산의 최고 포식자일 것이다. 천적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개체수도 많이 늘어났다.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인근 주민들의 피해도 그만큼 커진다는 이야기다.

9시간 동안 계속된 멧돼지와의 싸움... 결과는

멧돼지 잡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두진 대원
▲ 종로소방서 멧돼지 잡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두진 대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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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은 다시 조를 나누어서 산을 오르며 수색하기 시작했다. 산의 다른 쪽으로는 경찰들이 오르고 있다. 처음에는 핏자국을 따라갔지만 핏자국은 점점 흐려지더니 얼마 후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상처입은 야생동물은 위험하다. 주위를 샅샅히 훑으면서 나아가지만 멧돼지의 흔적은 없다. 어디로 갔을까?

"구조대가 올라간 쪽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모두 하산하라."

구조대원들은 전원 산을 내려와서 한쪽에 모였다.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또 다시 총성이 산쪽에서 울렸다. 경찰이 멧돼지를 발견해서 총을 쏜 모양이다.

"멧돼지다!"

산 한쪽에서 멧돼지가 내려오고 있다. 몇 발의 실탄을 더 맞았는지 피를 흘리고 있다.

"모두 둘러싸라!"

산을 내려온 멧돼지 주위를 소방대원들이 둘렀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자, 멧돼지는 당황했는지, 지쳤는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때때로 고개를 들어 힘없이 주위를 살폈다. 승합차에 들이받히고도 맹렬히 달려가던 아까의 기세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탁해진 눈빛에는 절망과 고통이 가득하다.

그 멧돼지 위로 그물이 던져졌다. 멧돼지는 그물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모두 헛된 몸짓일 뿐이다. 그런 몸부림도 잠시, 멧돼지는 결국 커다란 몸을 옆으로 눕히며 쓰러졌다. 그 밑으로 상처에서 나온 피가 조금씩 바닥에 번져가는 것이 보였다. 오전 10시. 새벽 1시 30분부터 계속된 멧돼지와의 싸움이 끝난 시간이다.


태그:#종로소방서, #119구조대,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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