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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좀비예요. 사람 같아서 못 쏘겠어요!"
"내가 너희들에게 당할 것 같아? 에잇!"
"제가 사람을 쐈어요! 새참을 먹으려는 농민을 쐈다고요!"

MBC 일산 드림센터 2층 6번 공개홀 복도. MBC 새 개그프로그램 <하땅사>에서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는 '좀비'란 코너에서 어설픈 좀비 사냥꾼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개그맨 나상규가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복도를 거닐며 대사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선 '두드림'의 이국주가 "아따 성님, 그만하쇼!",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더라고!"를 반복해서 연습하고 있다.

<하땅사>의 한 코너인 '좀비'.
 <하땅사>의 한 코너인 '좀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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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오후 1시 30분, <하땅사> 녹화를 앞둔 MBC 일산 드림센터는 그야말로 '개판', 아니 '개그맨 판'이었다. 연습 삼매경에 빠진 개그맨들은 흡사 시험공부를 하듯 대사 연습을 했다. 이외에도 파트너와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춰보는 이, 의상을 점검하고 소품을 챙기는 이 등으로 본 녹화를 6시간이나 앞둔 이른 시간이었지만 공개홀 앞 복도와 대기실은 왁자지껄,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녹화 6시간 전, 개그맨으로 붐비는 복도

이런 개그맨들의 노력 때문일까. '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는다'는 MBC 코미디 프로그램 <하땅사>(일요일 오후 4시 20분 방영)가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겨우 3회가 방송되었고 시청률도 6~7% 안팎으로, 대박 조짐이라고 하기엔 아직 섣부르지만, 반응이 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3~4%의 시청률에 시청자들이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전작 <개그야>와 비교할 때 더 그렇다.

인터넷엔 '오지헌의 굴욕'이란 제목으로 <하땅사>의 한 코너인 '나 이런 사람이야'의 일부분이 플래시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올라오고, 2회부터 MC로 합류한 조혜련의 몸을 사리지 않는 활약과 3회에 깜짝 등장했던 특별 게스트 밥샙의 존재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웃찾사> 출신 개그맨들이 합류해 기존 <개그야> 개그맨들과 개그 대결을 벌인다는 방송 형식 자체가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하땅사>는 <개그야> 출신 개그맨들로 이뤄진 M팀과 <웃찾사> 출신 개그맨들로 만든 C팀으로 나뉜 출연진들이 각자 준비한 코너를 선보이면 방청객의 냉정한 심사를 통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서바이벌 개그 프로다. 더 많은 코너에서 승리한 팀이 그날의 승리 팀이 되고, 가장 성적이 우수한 코너는 MVP와 아이디어 개발비 100만원을 받는 영예를 누리지만, 반대로 가장 반응이 저조했던 코너는 곧바로 폐지되고 만다. 그야말로 무한경쟁의 장인 셈이다.

서바이벌 무한 개그 경쟁, 웃겨라 그리하면...

드라이 리허설에서 개그맨들은 김구산 PD에게 조언을 듣는다.
 드라이 리허설에서 개그맨들은 김구산 PD에게 조언을 듣는다.
ⓒ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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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녹화는 저녁 7시경에 진행되지만, 개그맨들은 6시간 전에 나와 드라이 리허설과 카메라 리허설 등을 준비했다. 그야말로 하루를 꼬박 녹화에 투자하는 셈. 드라이 리허설은 출연 개그맨들이 담당 PD에게 각자 코너를 선보이고 마지막 점검을 받는 시간이다.

헌데, 김구산 PD 앞에 선 개그맨들, 왠지 긴장한 것 같다. 무대 뒤에선 밝은 표정으로 웃고 떠들며 입담을 과시하던 개그맨들이었건만, 김구산 PD 앞에 서자 낯빛이 살짝 바뀐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김 PD의 한마디.

"동작이랑 효과음이 안 맞잖아. 효과음을 다시 편집해야겠는데."

'좀비'에 등장하는 한 개그맨이 자신의 등장에 맞춰 튼 효과음과 동작이 맞지 않자 김구산 PD의 지적이 바로 들어온다. 김 PD가 드라이 리허설 때 지적한 부분들은 작가들의 손에 의해 꼼꼼히 기록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개그맨들은 방청객과 시청자에게 완성도가 더 높은 무대를 선보이게 된다.

드라이 리허설과 카메라 리허설, 두 차례의 리허설이 끝나자 어느새 바깥은 깜깜해졌다. 녹화 시간이 다가오고 개그맨들은 준비한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을 받는다. 조명, 음향 및 카메라 스태프들은 마지막으로 장비들을 점검하고, 작가들은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승자와 패자의 결정권을 쥔 방청객들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음으로써 녹화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하땅사>가 집단 MC체제를 구축한 까닭

<하땅사>의 첫 코너 '두드림'.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땅사>의 첫 코너 '두드림'.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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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은 저녁 7시 40분, 드디어 녹화가 시작됐다. 이경실, 박준형, 정찬우 등 기존 MC 5명과 이날의 특별 MC인 이윤석까지 모두 6명의 MC들의 오프닝 멘트로 막을 연 <하땅사> 제4회 녹화.

방청객들의 첫 판정 코너는 M팀의 인기 코너 '두드림'과 C팀의 새 코너 '에리카'였다. 김미려, 조정린 등의 여성 개그맨들이 아줌마 콘셉트로 열연한 '두드림'은 회를 거듭할수록 재미를 더하는 느낌이었다.

<하땅사>가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개그 대결이라는 형식만이 아니다. 5~6명에 이르는 집단 MC체제 역시 다른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이 대세로 자리 잡고 <무한도전>을 비롯하여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집단 MC체제를 택하고 있는 세태 속에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까지 다수의 MC들을 기용한 것에서 공개 코미디에 버라이어티를 접목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뿐만 아니라 <하땅사> MC들은 코너와 코너 사이 뒷이야기, 소위 '후토크'를 진행한다. 자신들끼리의 단순한 말장난이나 코너 품평에 그치지 않고 그들 본연의 개그에 대한 끼, 전문 MC들에 뒤지지 않는 걸출한 입담 등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인다.

이에 대해 <하땅사> 김성원 작가는 "코너 밖에서도 개그맨들의 끼를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개그맨들의 입담과 실력은 정말 훌륭하다"며 "사석에서는 누구보다 웃긴 그들이다, 하지만 요즘 대세인 리얼 버라이어티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만 나가면 대부분 자기 끼를 다 펼쳐 보이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환경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고, 그래서 공개 코미디에 버라이어티를 접목하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그맨들의 캐릭터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거듭 강조했다. 김 작가는 "<무한도전>을 봐도 모두 다 제각각 뚜렷한 캐릭터가 있다"며 "이 점을 공개 코미디라는 틀 안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개그맨의 캐릭터는 단순한 코너 안에서 맡은 역할에만 집중되었지만, 버라이어티적인 요소를 더하여 그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웃음과 캐릭터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고 말했다.

제3의 개그 길 연 <하땅사> 건투를 빈다

<하땅사>의 한 코너인 '설이별이'
 <하땅사>의 한 코너인 '설이별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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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켰지만, 녹화는 이제 절반을 조금 넘겼을 뿐이었다. 아침부터 두 차례의 리허설을 거쳐 저녁 늦게까지 장시간 녹화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개그맨들의 표정에선 피곤한 기색을 읽을 수 없었다. 무대 바깥에서 집중하고 있는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앉지도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여러 가지 일을 뚝딱 해내는 작가들의 노고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야!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아 뭐야 진짜! 아저씨들 도대체 뭐예요?"
"난 설이!"
"난 별이!"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매우 긴 시간이었는데, 즐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코너가 한창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의 거지인 설이와 별이가 중학생 방용을 상대로 먹을 것을 빼앗아 먹고 시치미를 뚝 떼며 엉뚱한 소리를 해대 웃음을 주는 '설이별이' 촬영이 진행됐다. 설이 역의 문규박, 별이 역의 서태훈의 익살스러운 억지 개그 연기로 방청객들은 녹화 마지막까지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밤 11시, 드디어 녹화가 끝났다. 무대를 내려가는 개그맨들의 표정에는 만족스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스태프들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밝았다. 녹화가 잘된 것 같아 보였다. 공개 코미디와 버라이어티의 만남, 그리고 개그 대결. <하땅사>는 아직까지 아무도 시도해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려 한다.

이 도전이 성공해 앞으로의 개그 트렌드를 주도하게 될지, 실패하여 단순한 실험과 도전에 그치게 될지,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는 제작진과 개그맨들의 열정, 이것 하나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점이다. <하땅사>의 건투를 빈다.

"<웃찾사> 멤버 설득, 쉽지 않았다"
[인터뷰] <하땅사> 김구산 PD


- <하땅사>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공개 코미디가 대세인 지금, 이렇게 형식에 큰 변화를 준 이유는?
"공개 코미디도 결국 코미디의 한 종류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겉에 입는 옷이 다를 뿐, 결국 그 속의 알맹이, 본질은 코미디란 뜻이다. 그래서 '코미디에 버라이어티를 접목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존의 공개 코미디에선 볼 수 없었던, 코너 밖의 개그맨에게도 '캐릭터'를 입혀보고 싶었다. 캐릭터가 잡히면 시청자들이 더 방송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등 여러 장점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 기존 MBC 공채개그맨들과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 등의 <개그콘서트> 멤버, 그리고 정찬우를 위시한 <웃찾사> 출신의 멤버들까지, 방송 3사 개그맨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의 섭외 과정은 어땠나.
"섭외가 쉽지는 않았다. 특히 정찬우와 컬투 패밀리 등의 <웃찾사> 멤버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길었다. 그들도 지금까지 쭉 몸담아왔던 SBS를 떠나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적잖이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코미디의 새로운, 제 3의 길을 찾자는 제작진의 설득에 동감했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 일요일 오후 4시 20분이라는 시간대가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불리한 면이 있는데, 편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시간대가 문제이긴 하다.(웃음) 우리 방송이 코너와 코너 밖의 뒷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형식인데, 그렇기 때문에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웃음이 잘 터지지 않는다. 그런데 일요일 오후 4시는 사실 시청자들이 TV를 집중해서 보는 시간대가 아니다. 막연하게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안 보거나 하는 시간대라서, 그게 걱정이다."

- MC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2회 조원석, 3회 조혜련 정도만이 뚜렷하게 자기 색깔로 웃음을 줬는데, 이들 MC들을 좀 더 활용할 방안은 없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작진도 고민 중이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고,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기 때문에 제작진이나 MC진도 이렇다 할 확신은 없다. 차차 나아질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방송 시간이 짧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코너는 정해진 만큼 나가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레 MC들의 버라이어티한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이 좀 아쉽다."

- KBS에선 <코미디쇼 희희낙락>에 이어 <개그스타>까지, 80~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콩트 코미디를 꾸준하게 선보이고 있는데, 콩트로의 회귀와 버라이어티의 접목,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앞으로의 개그 트렌드가 될 것이라 보는가?
"버라이어티 코미디가 앞으로의 개그 트렌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비공개 콩트 코미디는 분명 재미있고 과거에 큰 인기를 누렸던 장르이지만, 지금은 콩트 코미디를 선보일 타이밍은 아닌 듯하다.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하땅사>다."


태그:#하땅사, #웃찾사, #개그야, #버라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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