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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과 영천을 잇는 옛길을 자전거로 가봤다. 포항시 기계면을 거쳐 영천 임고면과 경계인 이리재를 넘어 영천시로 가는 길을 택했다. 구불구불한 옛 도로는 낙동정맥의 한줄기를 이루는 해발 806.2m 운주산 자락을 넘어야만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포항 기계면(지도 오른쪽)에서 영천 임고면을 갈려면 경계고개인 운주산 이리재를 넘어가야 한다
▲ 포항 기계면과 영천 임고면 경계 지도 포항 기계면(지도 오른쪽)에서 영천 임고면을 갈려면 경계고개인 운주산 이리재를 넘어가야 한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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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며 당일 행선지를 기억한다. 기계면 지가리 4거리에서 왼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다리를 건너고 인비리를 거쳐, 왼쪽 길을 가다가 봉계리에 못미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 오른편으로 저수지가 보였고 구불구불 언덕길을 계속 올라가니, 마침내 이리재가 나왔다.

운주산(雲柱山)은 멀리서 보면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보여 그렇게 부른다. 운주산 동쪽은 포항시 기계면이고 서쪽은 영천시 임고면이다. 그 사이를 잇는 고개가 '이리재'다. 운주산은 산세가 험하여 예로부터 포항-영천사람들 왕래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 특성은 방어와 피난에 적합한  군사요충지 역할도 톡톡히 한 모양이다. 아래와 같은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임진왜란 때 백암 김륵의 부대가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하여 왜적과 항전을 벌였으며, 1910년대 산 아래에 있던 안국사가 포항 지역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陳)의 근거지로 알려져 일제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산 중턱에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어 전쟁 때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된 동굴이 있다.'

이리재를 넘는 이 길이 영천 가는 빠른 길인가? 물론 아니다. 지금은 운주산 기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생겼다. 포항-대구 고속도로를 타면 그 중간에 영천을 거치기에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인 셈이다. 물론, 또다른 길도 있다. 포항에서 경주 안강읍을 거쳐 한티재를 넘으면 영천시 고경면이 나오고 그 길로 쭈~욱 가면 영천시로 갈 수 있다.

낙동정맥의 한줄기를 이루는 해발 806.2m 운주산 자락을 경계로 영천 임고면과 포항 기계면이 나뉜다.  산등성이 중간에 움푹 들어간 곳이 경계고개인 '이리재'다.
▲ 기계면에서 본 운주산 자락 낙동정맥의 한줄기를 이루는 해발 806.2m 운주산 자락을 경계로 영천 임고면과 포항 기계면이 나뉜다. 산등성이 중간에 움푹 들어간 곳이 경계고개인 '이리재'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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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리재를 넘는 길은 어느덧 옛길로 불린다. 영천에서 태어났고 포항에서 20년 살았지만 이 길이 있음을 안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만큼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일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9월25일, 포항 시내를 출발해 기계면을 향해 자전거는 출발했다. 신나게 달렸다. 오랜만에 탄 자전거라 그런지, 페달을 밟는 허벅지에 뻑뻑한 느낌이 전해온다. 그래도 힘차게 밟고 또 밟았다. 마치,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오르막 길에도 멈추질 않고 최대한 자건거를 탔다.

3시간쯤 탔을까? 기계숲을 지나 과수원 앞에서 운주산 자락을 올려봤다. 산등성이 오른쪽에 운주산 정상이 보이고 왼쪽으론 봉좌산이 보인다. 그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이 이리재. '저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땀이 자꾸 난다. 다리에도 신호가 왔다. 그리고 물을 찾는 모습이 반복된다. 쉬어야 될 때가 된 모양이다. 쉬는 김에 출출함도 달랬다.

4거리에서 왼쪽방향으로 가면 인비리가 나온다. 또다시 왼쪽으로 가야 영천방향
▲ 기계면에서 영천가는 길 4거리에서 왼쪽방향으로 가면 인비리가 나온다. 또다시 왼쪽으로 가야 영천방향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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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를 나오자마자 4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영천과 인비리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인비(仁庇)'란 마을이름에 담긴 설명이 의미심장하다. '마을이 커지고 장터가 생기며 역촌이 되어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어진 사람들은 숨어 버리게 되어 인비(仁庇)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

길가에 핀 살사리꽃이 가을들녘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용계리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길을 잘못 접어든 모양이다. 길가는 어르신게 여쭈니, "그 쪽이 아니라 저수지 있는 곳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리재 오르는 길
▲ 이리재 오르는 길 이리재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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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움푹 들어간 곳, 그 곳이 이리재인 모양이다. 오르막 길이지만 페달을 밟았다. 힘차게..  그러나 오르막길은 힘들다. 오르다가 낚시터를 보며 쉬며 사진 한 컷하고 그 덕에 또 쉰다. 점차 힘이 든다. 아예 자전거를 끌고 가야할 상황이다.

경운기 소리에 눈길이 쏠린다.
▲ 들녘길의 경운기 경운기 소리에 눈길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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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들녘에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문득 고개를 돌려봤다. 시골길에 경운기 달리는 풍광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어르신께 마을 이름을 물어봤다. "'하이동'"이고 했다. 이 마을은 파평 윤씨(尹氏) 집성촌이어서 윤동(尹洞)이라 불렀으나 차츰 타성이 이주해와 인자(人字)를 더하여 이동(伊洞)이라 고쳤다 한다.

이리재 넘기 전의 포항 기계면 끝마을
▲ 상이마을 이리재 넘기 전의 포항 기계면 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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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윗마을은 상이(上伊), 아랫마을은 하이(下伊)마을이라 불린다. 이리재 넘기 전의 포항시 기계면 끄트머리 마을은 상이마을이 되는 셈이다. 마을을 저만치 뒤로 하고 또다시 길을 걷는다.

이리재 오른 옛 도로 위로 고속도로가 났다.
▲ 옛 도로 위로 고속도로. 이리재 오른 옛 도로 위로 고속도로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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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이용하는 차량은 매우 드물었다. 1톤 트럭이 두서너 대 지나갈 따름이다. 하지만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많다. 뭐 그리 바쁜지, 쌩쌩 달리는 모습이 옛길과 너무 비교된다. 여유를 잃은 '빨리빨리' 세태를 여기서도 보게 되니, 무거운 마음이 든다.    

빠르지는 않지만 진득하게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그냥 그렇게 올라갔다.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도 이렇게 이 길을 넘어갔으리라! 길은 마침내 그 끝을 보여줬다. 이리재에서 제법 길게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리재 턱밑에서 본 포항방향 모습(사진 왼쪽)과 영천 임고면 방향
▲ 이리재 정상 이리재 턱밑에서 본 포항방향 모습(사진 왼쪽)과 영천 임고면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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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재를 넘은 자전거는 영천 임고땅 내리막 길을 시원하게 내달렸다. 영천 첫 마을이 보였다. 기념촬영 채비를 하는 가운데 1톤트럭을 내 앞에 멈췄다. 내리시는 어르신께 무작정 인사를 드렸다.

"이 마을 이름이 무엇입니까?"
"원기리입니다. 행정구역은 수성2리 인데, 우리는 그렇게 부릅니다"

'원기'에 담긴 뜻을 물었으나 정확히는 모른다고 어르신은 대답했다. 원기..원기 무슨뜻일까? '수성'이란 지명은 아마 임진왜란 때 운주산에 성을 쌓고 왜적과 항전한 기록으로 봐서 그렇게 불리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리재를 넘어 영천쪽 첫마을
▲ 수성리 이리재를 넘어 영천쪽 첫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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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저 앞 산이름은 무엇입니까?"
"천장산이요. 운주산과 더불어 저 산이 3사관학교와 연결되지요."

천장산이라! 하늘처럼 높고 길다는 뜻일까? 하여튼, 이리재를 경계로 영천쪽 첫마을인 원기리에 도착했다. 마을 뒷편에는 운주산이 흘러내리고 앞에는 천장산이 우뚝 솟은 이리재  첫 마을. 큰 산 사이 평평한 구릉지에 마을은 옹기종기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개인블로그 '별빛촌이야기(http://blog.daum.net/stary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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