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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정감사는 쌀직불금 국감이었다. 국감 기간에 인화성 강한 쌀직불금 문제가 터지면서 모든 이슈가 거기에 묻혀버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의 국감 현장은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이명박 대통령후보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를 사장으로 앉힌 것에서 촉발된 YTN 사태로 문방위는 여야 대립의 최전선에서 대치했다.

YTN 사태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멘토'인 최시중씨를 민간 독립기구에서 정부 부처로 바뀐 방송통신위원회의 수장에 앉혔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용산 참사가 서민들의 생존을 위한 전쟁터로 만든 재개발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듯이 말이다.

최시중의 두 얼굴, 대통령의 '멘토'이자 '괴벨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일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를 듣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일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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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위원장도 이런 우려를 의식해 취임초부터 "방통위원회의 독립성과 공정성 저해를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되겠다"(2008. 3. 2 내정 기자간담회)거나 "정부가 부당하게 탄압한다면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해서라도 방송 독립을 지키겠다"(2008. 3. 17 국회 인사청문회)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후의 언행을 보면, 말 따로 행동 따로였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 태생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는 인물을, 이 대통령이 정책결정기관장으로 선임한 것 자체가 문제의 발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통위원회의 신분이 민간인에서 공무원으로 바뀌면서 방통위에 대한 청와대나 국무조정실의 간섭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의 입김이 세졌을 뿐만 아니라 최 위원장이 직접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크다. 이몽룡 스카이라이프 사장, 정국록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구본홍 YTN 사장 등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언론-방송특보 출신들을 줄줄이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관련기관의 사장에 앉혀 'MB정부의 괴벨스'라는 악명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YTN 사태는 촛불정국으로 잠시 숨죽였다가 본격화한 정권의 미디어 장악과 여론 통제를 위한 전초전이었다. 방통위는 그뒤로 정연주 KBS 사장 해임의 걸림돌인 신태섭 KBS 이사를 해임해 KBS이사회를 과반이 넘는 친한나라당 성향 인사로 구성한 뒤에 정 사장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신태섭 이사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에 비추어보면, 이사회 구성 자체가 원인무효에 해당하니 정 사장 해임도 무효인 셈이다.

그리고 올해 7월 한나라당은 강승규 의원이 대표발의한 방송법과 신문법 등 언론 관련 법안을 일방적으로 날치기했다. 날치기는 MB-한나라당표 언론 장악의 완결편이다. 신문과 대기업이 지상파방송을 포함한 방송에 진출해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을 신규 설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법은 오는 1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할 예정이다.

'언론 장악할 생각 없다'는 이 대통령 발언에 62%가 '신뢰 안 한다'

이와 같은 미디어 장악과 통제 시도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집단이 두 번의 정권창출 실패를 공영방송의 '반한나라당 정서' 탓으로 여기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도 MBC와 KBS 2TV의 민영화를 공약으로 주장해왔다. 물론 이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또한 언론산업 선진화의 일환일 뿐 장악의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민주화된 시대에 어느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느냐. 정권이 언론의 눈치를 보는 시대인데 어떻게 장악하나"라고 반문한다. 또 "방송 장악 의도도 없고 장악할 수도 없다"고 억울해 한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문방위원인 장세환 의원(전주 완산을, 민주)과 공공미디어연구소가 공동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현 정부의 언론정책이 이전(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잘못하고 있다(57.6%)는 쪽이 잘했다(36.3%)는 쪽보다 훨씬 더 높았다.

또 언론을 장악할 생각도 없고, 장악할 수도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묻는 설문에서도 '신뢰를 안한다'(61.8%)는 응답이 '신뢰한다'(34.5%)는 응답보다 곱절 가까이 더 많았다.

미디어법 처리과정에 대해서도 대리투표-재투표 의혹 등 법적(절차상)으로 문제가 많았다(66.0%)는 의견이 강행 처리되긴 했지만 법적(절차상)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18.8%)는 의견보다 3.5배나 더 많았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P).

29일 헌재의 미디어법 날치기 권한쟁의 심판 결정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서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항의하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민주당 최문순, 천정배 의원의 자리가 비어 있다.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서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항의하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민주당 최문순, 천정배 의원의 자리가 비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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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언론 관련법 날치기를 시도한지 두 달여가 지났음에도 국민 여론이 바뀌지 않은 것은 정부여당이 국민의 압도적 반대의견을 설득하지 못한 채 다수의 힘으로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국감에서도 문방위는 다시 여야 대치의 최전선이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실제로 청와대 행정관이 나서서 통신3사에 이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김인규씨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출연금으로 250억 원을 요구한 사실을 전병헌 의원(서울 동작갑, 민주)이 폭로하는 등 정부여당과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는 싱겁다. 뭔가 허전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사회를 본 김제동씨가 석연찮은 이유로 KBS 프로그램에서 중도 하차하고, MBC의 간판 진행자인 손석희씨가 MBC <100분토론>에서 사퇴할 예정이고, 4대강 비판 광고도 방송협회가 '사전검열'해 심의를 보류하는 등 국민을 대신해 따질 현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방송을 잘 아는 누군가가 안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문순C'라는 친근감 넘치는 별명으로 통하는 MBC 사장 출신의 최문순 의원이다.

그는 지난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 시도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천정배 의원과 함께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 이후 그는 천정배-추미애 의원과 함께 오늘(15일)로 64일째 명동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언론악법 반대 서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회 환노위원장인 추 의원은 국감기간이라서 명동 현장을 비우고 있다.

민주당은 당시 한나라당이 날치기한 미디어 법안의 효력정지가처분을 대법원에 신청했고, 헌법재판소에는 언론관계법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했다. 이 법이 1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할 때, 헌재는 이에 대한 결정을 10월 중에는 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 결정이 어느 쪽이건 문순C는 국회로 돌아와야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디어 관련법 직권상정 강행 처리를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느낀다며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디어 관련법 직권상정 강행 처리를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느낀다며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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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헌재가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을 결정 선고일로 정하고 있는 만큼 권한쟁의 심판청구에 대한 결정은 10.28 재선거 직후인 29일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순C는 일단 헌재 결정 선고까지는 명동 서명 캠페인을 계속한다는 입장이고, 국회의장도 그때까지는 의원직 사퇴서에 대한 처리를 미룰 것으로 보인다.

권한쟁의 청구심판이 받아들여질 경우, 그것은 민심의 승리이고 다수의 힘에 굴하지 않은 문순C의 승리다. 그럴 경우 의원직 사퇴는 접는 것이 순리이겠다. 문제는 권한쟁의 청구심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인데, 그렇더라도 나는 문순C가 사퇴서를 철회하기 바란다. 한나라당은 헌재 결정을 계기로 보란 듯이 밀어붙일 것이 뻔한 상황에서 막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통과에 따른 사업자 선정을 필두로 공영방송법 제정과 민영미디어랩의 도입, 한국언론재단과 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등을 통폐합한 새로운 기구 설립 등 미디어 관련 전반에 변화를 예고하거나 대대적인 정책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상황이 뻔히 예견되는 데도 국회 안에서 막지 않는 것은 호미로 막을 일을 나중에 가래로 막기도 어려운 지경을 자초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항상 말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노숙자 국회의원 문순C

그의 이런 결벽과 책임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사실 미디어법 투쟁의 현장에는 항상 문순C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서 있었다. 그는 촛불집회 때마다 시민들과 함께 밤을 새우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에는 덕수궁 대한문 시민분향소에서 상주하다시피해 '노숙자 국회의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후원회장이기도 한 한명숙 전 총리는 그가 의원직을 사퇴했을 때 자신의 블로그에 그의 사퇴를 아쉬워하며 이렇게 썼다.

"항상 말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겸손과 진실이 몸에 배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 최문순. 이런 선량이 정치의 최일선에서 스스로 사직을 선택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인을 내쫓고, 4대강 비판 광고마저 허용치 않을 만큼 옹졸하면서도   "정부가 부당하게 탄압한다면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해서라도 방송 독립을 지키겠다"(최시중)거나 "방송 장악 의도도 없고 장악할 수도 없다"(MB)고 잡아떼는 이들이다. 그의 빈자리가 커 보이는 요즘, 이들과 맞장 뜨는 문순C를 국회에서 보고 싶다.


태그:#문순C, #최문순, #최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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