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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처럼 잔잔하고도 짙푸른 남녘 바다 한가운데 수평선을 물고 고래등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섬이 있다. 전남 여수에서 27㎞쯤 떨어진 바다 위에 고래처럼 떠다니는 모래섬 사도가 그 섬이다. 한때 수많은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이 서로 파도처럼 으르렁거리며 살다가 발자국만 남긴 채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자그마한 섬 사도.  

 

사도에 살았던 그 수많은 공룡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큰 몸짓을 뒤뚱거리며 파도를 저벅저벅 밟다가 저 수평선 속으로 들어가 버렸을까. 아니면 그대로 수평선이 되어버렸거나 8개의 섬이 되어 버렸을까. 해마다 음력 2월 15일에 'ㄷ'자로 이어진다는 본도, 추도, 간도, 시루섬, 장사도, 나끝, 연목, 진대성이란 그 섬 말이다.

 

임진왜란 때 성주 배씨가 살기 시작하면서 무인도에서 유인도가 되었다는 모래섬 사도. 그때 배씨는 이 섬에서 무얼 먹고 살았을까. 청각, 톳 등 해초류와 물고기만 잡아먹으며 살았을까. 어릴 때 고향집을 떠올리게 하는 돌담길이 바다로 쭈욱 이어지고 있는 모래섬 사도. 모래섬이라 하지만 고운 모래는 많이 보이지 않고 자갈이 더 많아 보이는 사도.

 

보리와 땅콩, 고구마가 쌀보다 더 흔한 작은 섬 사도에는 재미난 전설이 하나 있다. 바위 중턱에서 맑은 물이 젖처럼 솟아나온다는 젖샘바위가 그것이다. 예로부터 사도에 사는 여인들은 아이를 낳은 뒤 젖이 부족하면 이 젖샘바위 앞에 앉아 두 손을 싹싹 빌었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젖이 잘 나왔다고 한다.  

 

 

공룡 발자국에 발자국 맞춰 공룡처럼 걷는다

  

8월 22일(토) 오후 4시. '2012 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개최를 위한 파워블로거 초청 팸투어'에 참가한 누리꾼 24명과 함께 여수 백야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쯤 바닷길을 달려 닿은 사도. 사도로 들어가는 길목 들머리에는 인조 공룡 두 마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금세라도 달려들 것만 같다.

 

'이 섬은 우리들 섬이니 너희 사람이 들어올 곳이 못 된다'며 혼쭐을 내 쫓아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사람 키 세 배쯤 되어 보이는 덩치 큰 공룡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사도 안으로 들어서자 바닷가 길목 한 귀퉁이에 '신비의 섬 沙島(사도)-모래섬'이란 검은 글씨가 누워 있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잔주름을 또르르 또르르 말고 있는 잔잔한 바다 위에 고래등처럼 떠 있는 섬들... 그 섬을 마치 빨래처럼 걸고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민박집으로 먼저 향한다. 민박집 가는 길목은 예쁜 돌담이 줄지어 서 있다. 돌담을 자유스럽게 기어다니는 담쟁이 넝쿨과 박 넝쿨. 그 넝쿨 속에 어른 머리통보다 더 큰 허연 박 하나가 매달려 있다. 

 

돌담이 꼬리를 감추는 그 자리, 오늘 하루 묵을 민박집이 있다. 민박집에 짐을 풀어놓고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시루섬(증도) 쪽 바닷가로 향한다. 물이 빠진 납작납작한 바위 곳곳에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바닷물을 담고 있다. 동그란 발자국이 있는가 하면 갈고리 모양을 띤 발자국도 있다.    

  

동그란 발자국은 초식공룡 발자국이며, 갈고리 발자국은 육식공룡 발자국이다. 공룡발자국에 나그네 발자국을 맞추며 발자국 화석을 따라 걸어 보다가 시루섬으로 향한다. 수평선을 물고 있는 시루섬에는 공룡과 함께 살았던 나무화석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섬에는 화산이 폭발할 때 퇴적된 퇴적물인 응화암층과 암맥, 거북바위, 얼굴바위 등이 있다.

 

 

돌담 정겨운 모래섬에서 개도막걸리에 폭 빠지다 

 

시루섬을 둘러보고 난 뒤 민박집으로 오는 길목 저만치 할머니 한 분이 청각을 손수레에 가득 싣고 가고 있다. 노르스럼한 노을빛을 받아서 그렇게 보였을까.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 뒷모습이 이리저리 휘어지며 흔들리는 실루엣으로 가물거린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목 곳곳에 차곡차곡 쌓인 돌담... 그 돌담과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 옥수수도 정겹다. 

 

"우선 막걸리로 목부터 축일랑가."

"그거 좋죠?"

"주최 측에서 개도 막걸리를 꼭 준비하라고 해서 한 박스 사놓았는데, 안 모자라랑가 모르것네. 개도 막걸리는 묵은지나 갓김치랑 먹어야 제 맛이 나제이~"

 

돌담 곳곳에 탐스럽게 매달린 누우런 호박을 뒤로 하고 민박집으로 들어서자 주인 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이 집에서 담근 갓김치와 묵은지, 시골된장과 금방 가까운 텃밭에서 딴 풋고추를 안주 삼아 개도막걸리 한잔 쭈욱 들이킨다. 사이다처럼 톡 쏘면서도 새콤달콤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 예전에 선소에서 먹었던 그 개도 막걸리 맛 그대로다.

 

개도막걸리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두 병째 마시고 있을 때 맛객 김용철이 "이게 그 유명한 개도막걸리입니까. 벌써 한병을 다 비웠네요"라며 곁에 앉는다. 맛객에게 개도막걸리 한 잔 부어주며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맛객이 "글쎄요." 한다. 나그네가 "나도 첨엔 그랬지. 몇 잔 더 마셔보라구"라며, 다시 맛객이 들고 있는 빈 잔에 한 잔 쭈욱 따른다.

 

 

쏟아지는 별과 파도소리 그리고 전어회, 우럭회, 전복죽...

 

"이거 장난이 아닌데요. 술술 잘도 넘어가는 게 은근히 댕기네요."

"내가 괜히 개도막걸리를 우리나라 최고 막걸리라고 하는 게 아니라니깐. 이 막걸리 이건 아무리 많이 마셔도 아침에 숙취란 게 없다니까."

"이 지역에서 만드는 개도막걸리를 이 지역에서 나는 갓김치하고 먹으니 썩 잘 어울리네요."

 

처음엔 개도막걸리를 마시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맛객이 3~4잔 마셨을까.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냉장고에 든 개도막걸리를 몇 병씩 자꾸만 꺼내온다.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함께 자리에 앉아 개도막걸리 맛을 보고 있는 파워 블로거들도 맥주나 소주는 아예 찾지 않고 개도막걸리만 자꾸 찾는다.

 

'이크! 이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개도막걸리 다 떨어질라'라는 생각에 은근히 걱정부터 앞선다. 얼른 일어서서 냉장고에서 개도막걸리 너댓병 꺼내 나그네가 묵을 숙소 냉장고에 넣고 오자 맛객이 "잘 하셨어요"하며, 빙그시 웃는다. 틈틈이 주인이 장작불에 구워주는 짭쪼름한 소라 맛도 한몫한다.   

      

사도에서 쏟아지는 별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개도막걸리... 전어회와 우럭회, 전복죽... 사도에서 처음 맞이하는 밤은 점점 더 깊어간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래섬이라고 부르는 사도는 그렇게 파워블로거 24명을 바닷가로 내몰아 삼겹살을 구워주기도 하고, 모래밭에 장작불을 피워 올려 뜬눈으로 지새게 했다.

 

 

세상이 몹시 어지럽고, 무언가 뜻한 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가슴만 답답할 때에는 남녘 바다 한 귀퉁이에 엎드려 수평선을 물고 있는 모래섬 사도로 가자. 가서 공룡 발자국 화석을 밟으며 지구촌 역사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별이 찬란한 희망처럼 쏟아지는 바닷가에 앉아 개도막걸리 한 잔 먹으며 세상 시름 훌훌 날려보자.

 

그래. 기왕 사도에 간다면 이순신 장군이 나랏일을 걱정하며 앉아 있었다는 장군바위, 거북 닮은 거북바위, 젖샘바위, 2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멍석바위, 제주도 용두암 꼬리라는 용미암, 높이 20m인 동굴바위 등도 잊지 말고 꼭 둘러보자. 양면이 툭 트여 있는 양면바다해수욕장과 사도해수욕장, 돌꽃이 눈길을 끄는 본도해수욕장, 벚나무공원 등은 보너스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논산천안고속도로-순천-여수-백야도-백야도 선착장-사도
*여수여객터미널에서 사도로 가는 배를 타도 된다.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모래섬, #사도, #개도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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