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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2년인 827년 세워진 중초사(中初寺)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있는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의 1 일대 옛 유유산업 부지에서 고려말, 조선초 무렵의 대형 사찰 건물터가 확인돼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미궁속 흔적이 실체를 드러냈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재단법인 한울문화재연구원(원장 김홍식)과 안양시에 따르면 안양시가 매입한 옛 유유 안양공장 부지를 지난 6월부터 발굴한 결과, 사찰 강당임이 분명한 남북 폭 14m, 동서 길이 41.4m에 이르는 대형 건물터 흔적을 찾아냈다.

 

(재)한올문화재연구원이 작성한 '안양시 (구)유유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제1차 자료'를 확인한 결과, 평면 장방형인 이 건물터는 일부 흔적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정면 9칸(주칸 거리 420㎝)에 측면 3칸(주칸 거리 260-520㎝)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또 부지내 입구에 자리한 현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제4호) 와 중초사지 삼층석탑(지바운문화재 164호) 인접 지점으로 잔디밭을 발굴한 현장에서는 사찰의 문이라 생각되는 건물터의 바닥 흔적이 드러났다.

 

 

당간지주에 담긴 유일한 기록 중초사 흔적 발굴하다

 

한올문화재연구원 측은 "사찰 강당터로 추정되는 이곳에 대한 조사를 통해 현재 노출된 여말선초 건물터 하부에서 통일신라말-고려초기 때 흔적이라고 생각되는 또 다른 건물터가 발견되고 있다"면서 "따라서 이번에 확인한 강당터 및 문터는 당간지주에 남은 명문(銘文)에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초사의 흔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보통 한국 고대 가람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중문-탑-금당-강당 순서로 건물을 배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사찰의 문 터와 강당 터를 동시에 확인함으로써 중초사의 정확한 사역(寺域. 절 구역)을 확인할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중초사지(中初寺址) 당간 지주에 새겨진 6행 123자의 명문(銘文)에는 보력(寶曆) 2년(826) 8월 6일에 중초사(中初寺) 동쪽 승악(僧岳)이라는 산에서 돌 하나가 갈라져 둘이 되자 이를 당간지주로 제작하기 시작해 이듬해 2월 30일에 공사를 완료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명문은 신라 흥덕왕 원년(元年)이 지주가 세워진 기록을 남기고 있어 (주)유유 공장 부지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통일신라시대 흥덕왕때 건립됐던 중초사(中初寺) 터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어 수많은 당간지주 중 으뜸격인 국가문화재 보물 4호로 지정됐다.

 

 

재미있는 것은, 당간지주를 만들 때 황룡사에서 항창이라는 스님이 파견되어 일체의 공사를 감독하였다는 대목이다. 멀리 경주에서부터 감독관을 초빙한 것은 상당히 이채로운 일인데, 이를 두고 신라판 '공사실명제'였다고 주장하는 사학자도 있다.

 

또 이 구절을 들어서 이곳이 중초사가 아니라 황룡사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간지주에 '중초사지'를 기록한 명문이 있음에도 이에 등장하는 중초사는 여타 기록에 전혀 흔적이 남지 않아 그 실체가 미궁에 빠져 있었으나 이번 발굴을 통해 절터의 흔적이 실체를 드러냄에 따라 그동안 수수께끼 였던 역사 찾기가 활기를 띨 전망이다.

 

특히 (주)유유 안양공장 부지가 예전부터 향토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고려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안양사(寺) 터일 것이라는 설과, 안양공장 건설 당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청동용두와 사자향로발 등 유물들이 발굴된 바 절터 발굴은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천년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의미있는 사건

 

한올문화재연구원 임정현 연구원은 전화통화에서 "전돌과 기와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나 유물의 발굴은 아직 없는 상태"라고 말하고 "안양사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명문과 안양사 칠층석탑의 흔적이 나오지 않아 입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 연구원은 "발굴조사가 10월 6일부로 종료됨에 따라 부분적으로 추가 조사가 있겠지만 안양시가 문화복합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기 때문에 2차 발굴을 더 할지 향후 구체적 계획에 대해서는 자문회의 등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양시 문화예술과 김지석 문화재담당은 "절터의 흔적이 발굴됐다는 것은 천년전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고 말하고 "사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금당이 김중업건축물인 공장동과 연접해 있으나 발굴을 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당의 길이가 41.4m에 달하는 대형 사찰임이 분명하고 북에서 남쪽으로 절의 문까지 발굴돼 금당도 대략 추정할 수 있다"며 "절의 명문이나 구체적인 유물들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2차 발굴을 통해 금당과 절의 회랑까지도 확인했으면 싶다"고 말했다. 

 

 

(구)유유 부지 복합문화공간 활용방안 논란 불가피

 

한편 안양시가 중초사지 터에 자리하고 있던 유유 안양공장이 지방으로 이전을 추진하자 아파트 재개발을 바라는 일부 주민들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6년 7월 유유 공장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장부지와 건물을 매입키로 결정했다.

 

안양시는 2007년 6월 (주)유유와 240억원 3년 분할로 해당부지의 매입계약을 체결한 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에 앞서 발굴 조사를 벌여왔으며 절터가 발굴됨에 따라 향후 유유부지 활용문제는 앞으로 무엇이 더 발굴됨에 따라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절터 위에는 6.25전쟁 이후인 지난 1959년 5월 제약회사인 유유 안양공장이 세워져 현재 대부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이는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이 설계한 초기작품이자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물로 현대 건축 문화유산이다.

 

안양민예총 김영부 사무국장은 "중초사지 흔적이 발굴된 것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안양의 역사와 문화를 일깨우는 일대사건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돌에 새겨진 석수동 마애종도 중초사와 연관된 유적으로 보물로 격상하기 위한 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그:#안양, #중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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