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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더위도 한발 물러설 정도로 뜨거웠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다만 이번엔 누군가 물러서야 하는 싸움의 함성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서고자 하고, 서로를 보듬고자 하는 즐거움의 함성이었다.

 

국립국악원(원장 박일훈)은 9월 1일 오후 12시 40분부터 50분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본관 뒷마당에서 게릴라콘서트를 개최했다. 국립국악원 산하 창작악단과 민속단이 함께 만든 이번 무대는 국립국악원 연중기획인 '국악을 국민 속으로'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다.

 

특별히 이날부터 시작된 '2009 가을 국악의 숲 릴레이공연'은 산업현장을 찾아 노사가 함께 우리 음악의 지닌 흥과 신명의 기운을 북돋는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오랜 분규로 아직 상처를 씻지 못한 쌍용자동차를 그 첫 방문지로 삼은 것은 국악의 확산이라는 의미 말고도 국악의 사회참여라는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국악은 그동안 격변의 현대사 그 현장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의 관심 밖에 선 쌍용자동차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겠다는 시도와 의지는 예술가들만이 가능한 것이다. 조금은 소극적이지만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선일 그런 의지가 잘 통했는지 쌍용자동차 또한 국립국악원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드려 이번 공연이 성사되었다.

 

 

국악토리의 음악을 발표해온 가수 이안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공연에는 점심식사를 전후로 무대 앞에 모여든 6백여 명과 함께 짧지만 시종 뜨거운 열기로 진행되었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지휘 권성택) 30명이 빚어내는 신명나는 음악에 쌍용자동자 노사 양측은 뜨거운 햇살도 아랑곳 않고 열렬한 박수로 호응해주었다.

 

이제는 세계적 작곡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재일교포 양방언의 '프론티어'로 연 이번 공연은 민속단의 명창 이주은이 '제비노정기'와 제주민요 '너영나영'으로 객석의 조금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노래 한 곡이 끝나고는 곧바로 추임새를 알려주고, 힘찬 합창을 이끌어내자 무대 앞에 모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비로소 콘서트 분위기로 마음을 바꾸어 편한 자세가 되었다.

 

창작악단의 연주곡 '아름다운 나라' 한 곡이 더 연주되고, 이 날 사회도 함께 했던 가수 이안이 응원가 '아리요'와 영화 미인도의 주제가를 부르자 그야말로 쌍용자동차에는 뜨거움으로 그득해졌다. 점심시간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열화와 같은 앵콜에는 응하지 못하고 정해진 연주만으로 50분 공연을 마쳤지만, 국립국악원의 쌍용자동차 공연은 예상보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공연이 열린 쌍용자동차 본관에는 그날들의 상처가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물론 하나의 음악회로 아주 큰 상처를 모두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그 잠깐의 신명으로 쌍용노사 양측을 다시금 서로의 손을 맞잡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공연이 감상보다는 대동굿의 의밀로 준비된 만큼 부활과 상생의 작은 불씨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첫발을 성공적으로 뗀 국립국악원의 '2009 국악의 숲' 릴레이공연은 전국 각처의 국립국악원 분원인 남원의 민속국악원. 진도의 남도국악원, 부산국악원의 예술단체들도 적극 참여해서 해남 이맑은 김치공장, LG화학 여수공장, 한국제지 울산공장 등의 산업현장을 찾아 노사화합을 기원하는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국악원은 적어도 물량에 있어서는 전에 없는 풍성함을 누리고 있다. 지방 3곳에 분원을 두고 있으며 서초동 본원까지 합산하면 예술단원의 수가 다른 예술기관이 따라오지 못할 거대규모를 갖추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아무래도 좀 나태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올해 국립국악원 예술단원들은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7월 서울역을 시작으로 해서 전국 25개 지역에서 40일간 40회의 공연으로 전국을 종횡무진 누볐다. 남원, 진도, 부산 3곳의 지역 국악원들까지 모두 합세한 이 공연들은 '국악을 국민 속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그야말로 국민들 속으로 찾아들었다.

 

그늘에 있어도 피할 도리 없는 7,8월 더위에도 사모관대 갖춘 국립국악원 예술단원이 열심히 뿌린 땀은 큰 호응으로 돌아와 국립국악원의 '국악을 국민 속으로'는 전에 없는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올 4월 취임과 동시에  '국민을 국악 속으로' 캐치프레이즈를 내놓은 국립국악원 박일훈 원장은 "국악의 대중화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호만으로는 국악은 옹알이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공명을 3번 찾아간 유비의 절실함으로 우린 국민들이 모이는 어디라도 낮은 자세로 찾아갈 것이다"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뜨거운 땡볕에도 아랑곳 않고 연주에 임하는 국립국악원 예술단원들을 보면 전과는 분명 달라졌다는 느낌을 준다. 전에는 여유로운 양반의 걸음이었다면, 요즈음의 그것은 잰 걸음의 머슴과 같다는. 기초예술 음악분야에서 아마도 가장 낮은 지배력을 지닌 국악이 올해로 시작한 '국악을 국민 속으로' 힘으로 말 그대로 국민이 항상 가까이 하는 우리음악의 자리를 되찾는 그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태그:#국립국악원, #국악을 국민 속으로 , #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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