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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교감일 게다.

 

흙 길은 우리에게 친근감을 준다.

또한 메말랐던 정서를 풀어주며 다가온다.

다산초당 오르는 흙 길과 나무뿌리가 드러난 길은 위안을 준다.

 

대리석을 깐 길이 아니어서 좋다.

길바닥에 돈을 깐 길이 아니어서 더더욱 좋다.

행여 다산초당에 오르는 흙 길에 스민 운치를 대리석으로 망칠까봐 노파심이 인다. 

 

 

다산초당

 

강진 다산초당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되어 머문 곳으로 후진 양성과 실학을 집대성한 성지이다.

 

다산을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1801년 신유박해에 이은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온 다산은 사의재, 고성사 보은산방 등을 거쳐 1808년 외가였던 해남 윤씨들이 마련해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심서> 등 6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약천

 

약천은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물이 촉촉이 젖어 있던 것을 다산이 직접 파니 돌 틈에서 맑은 물이 솟았다고 한다. 다산은 약천의 물을 마시면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하였단다.

 

 

동암

 

동암은 송풍루라고도 불리며,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곳이다.

 

 

정석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한다. 아무런 수식 없이 자신의 성인 정(丁)자만 따서 새겨 넣은 것으로 그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보여준다.

 

 

다산 운명 3일 전 유작시

 

육십년 세월 잠깐 사이 흘러갔네

복숭아 꽃 곱게 피던 봄철의 신혼 같구나

생이별이나 사별은 모두 늙음을 재촉하는 것

슬픈 세월 짧았고 기쁜 세월 긴 것은

임금의 은혜로다

결혼하던 이날 밤 사랑얘기 다시 좋고

지난 유배시절 아내의 치마폭엔 눈물 자국 번졌노라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것은 우리들의 참 모습

바가지 두 쪽이나 자손에게 남겨 줌세

 

다산의 소박한 삶의 길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다음과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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