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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못난 면역력이여!
 

어젯밤도 아이와 다른 방에서 마스크를 쓴 채 잠이 들었다.

통상 '신종플루'라고 불리우는 신종인플루엔자A(H1N1) 바이러스 때문이다. 8월 24일 기준, 전세계 26만 6595명의 환자가 발생해 269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최근 강북구 내 어린이집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말하자면 강북구 안에도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누군가의 몸을 통해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마스크를 쓰고 다른 방에서 잠을 잔 것일까?

 

환절기가 되면 내 몸은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알레르기성 비염 증세가 심해진다. 비염으로 인해 매년 홍역을 치르듯 고생을 하는데 올해는 비염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내 신체가 면역력이 떨어진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신종플루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신종플루에 노출되었을 때 내 신체는 쉽게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숙주(바이러스가 기생하며 살 수 있는 신체)가 되어 내 아이와 가족, 이웃들에게 신종플루를 전파하는 몹쓸 녀석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걸리면 죽는다며 공포에 떨게 했던 사스 바이러스는 조카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홍콩에 체류 중이던 리오 교수 한 사람에게 발병되었다. 당시 리오 교수와 함께 승강기에 탔던 이들은 인간을 무차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전세계에 퍼트렸다. 리오 교수로부터 감염된 공항직원 한 명은 무려 150명에게 사스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살아남았다. 면역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뿔사. 나의 비염이여. 나의 못난 면역력이여!

 

이 때문에 가정 내에서 내려진 임시처방은 아이와 다른 방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아이와 접촉도 최소화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생기게 될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하면 이 방도가 훨씬 낫다. 그러나 실제적인 모습은 이렇다. 4살 난 딸아이가 사랑스런 얼굴로 마스크 쓴 아빠에게 다가올 때 "너도 감기 걸릴 수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마라"고 말을 건네며 자리를 피하는 무심한 아빠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어찌 그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갈라지랴만은,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옛 유행가의 말을 신종플루를 접하며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이러스, 너는 누구냐?

 

우리가 아는 무서운 사스(SARS) 바이러스는 본래 숙주는 박쥐다. 조류독감(AI)의 본래 숙주는 철새이며 돼지독감(SI)의 본래 숙주는 돼지, 에이즈 바이러스(HIV)의 숙주는 원숭이다. 이 바이러스들은 각기 그 동물의 몸 속에 있을 때는 해를 끼치지 않고 숙주에 기생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다만 이 녀석들이 변종을 일으키며 본래의 숙주가 아닌 다른 숙주로 옮기게 되면서 일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번 신종플루의 경우 돼지가 중요한 숙주 역할을 하면서 인간, 조류, 돼지의 독감이 혼합되며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되어 인간에게 전염되었다고 한다. 이번 신종플루의 경우는 치사율이 사스만큼 높은 편은 아니지만 또 다른 변종이 나타날 경우 가까운 시기에 엄청난 재앙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 실례로 1918년 1차 스페인 독감 역시 치사율이 높지 않았으나 변종을 일으켜 2차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면서 당시 인류의 30%를 전염시키고 50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신종의 신종의 신종 플루, 계속 나타난다

 

바이러스는 인류의 출연 이전부터 존재했다. 아마 인류가 사라지고 아주 오랜 후에도 바이러스는 존재할 것이다. 신종플루의 유행이 끝나면 또 다른 바이러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 때마다 면역력이 약한 나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다니며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속에 긴장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게 되고 딸아이와 접촉도 자제하게 될 것이다. 함께 살지만 서로 다가갈 수 없는 세상. 특별히 지옥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태계 파괴, 인간의 자충수

 

내가 앓고 있는 알레르기성 비염은 현재 40대 이하의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40대 이하 사람들의 면역력이 현격히 떨어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바로 1970년대 산업화시대 아닌가? 산업화란 이름으로 산을 깎고 바다를 개간하고 댐을 만들고 가축들을 식품으로 이용하기 위해 대량축산을 실시하고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에 절은 고기를 먹고 각종 신체 유해성을 알 수 없는 식품첨가물과 색소들이 넘쳐나기 시작할 즈음. 우리의 몸도 항생제와 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져가면서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이다.

 

경제와 개발 논리로 산과 강은 파헤쳐지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들이 사라져간다. 이제 좁아진 서식지에 모여 살게 된 야생동물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조류 간에 바이러스를 교환하는 빈도가 늘면서 맹독성 바이러스로 변신하기 최적의 상태가 된다. 게다가 인간의 거주지와 집단축산단지가 야생동물 서식지에 들어오게 되면서 면역력을 잃은 인간, 축산동물, 야생동물이 한데 모여 바이러스의 혼합과 변종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형성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바이러스의 출연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마스크를 구입하고 백신을 확보하고 손을 깨끗이 씻는 자구책도 필요하겠으나 근본적으로 생태계 전체가 앓고 있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인류는 지구의 역사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종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제는 바이러스와 친구로 지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바이러스는 이런 녀석이다

바이러스가 어떤 놈인가 찾아보았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다른 녀석이다. 인간을 지구 크기로 확대시켜 본다면 세균은 코끼리 크기이며 바이러스는 코끼리 등에 올려 있는 개미만하다고 한다. 세균은 항생제로 제압이 가능하지만 바이러스는 불가능하다. 바이러스는 이미 죽은 놈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떠나서는 물질대사를 할 수 없고 스스로 증식할 수도 없는 먼지와 같다. 그러나 그들이 생명체 안으로 침투하는 순간 생명력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가지 목적인 자기복제를 무한반복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바이러스들은 기생하는 특정한 숙주가 정해져 있으며 그 숙주에게 특별히 해를 입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마을 신문(welife.org)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신종플루, #신종플루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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