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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생전에는 눈물을 흘린 일이 없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었을 때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을 때도, 또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났을 때도 기슴 속에서는 벅찬 흥분이 소용돌이쳤지만 역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짱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많이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내게 현재진행형임을 늘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맞은 국면에서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비탄 가운데서 마음이 황량해지는 것 같은 느낌뿐이었습니다. 뭔가 텅 빈 것 같은, 버팀목이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 같은 허황한 느낌 속에서 '이제부터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결기 같은 것이 가다듬어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는 아직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과거에는 김대중이라는 이름 때문에 참 많이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김대중이라는 이름 때문에 눈물을 흘린 일들은 당시의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 기록들 중 하나를 오늘 여기에 소개합니다. 1998년 1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 썼던 글입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김대중 전 대통령님에 대한 옛날 글들을 소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분에 대한 애정과 존경과 그리움의 표시입니다.          

 

대선 후에 흘린 눈물

 

지난 1987년 제13대 대선 때는 '서산공정선거감시단'의 태안 대표로 활동했다. 솔직히 말해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의 속내는 야당 후보를 돕고자 하는 뜻이었다. 불법 부정 선거의 실체를 관권 선거와 금권 선거라고 볼 때 유리한 쪽은 두 말 할 것 없이 여당일 터이므로 자연히 공정선거담시단의 활동 표적은 여당 쪽으로 많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당이나 공권력의 견제를 많이 받았고, 어느 시대나 힘있는 쪽에 기생하고 봉사하기 마련인 동네 '어깨'들의 방해도 자심했다. 그때 태안 공정선거감시단의 사무실은 태안천주교회 사무실이었는데, 그때의 갖가지 일들과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던 당시 박연호 신부님께 대한 고마움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참담한 패배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그때는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에 대한 '절반의 책임' 때문에 극심한 좌절의 아픔 속에서도 울지는 않았다. 이 말 속에는 나는 이미 그때부터 김대중씨를 지지했노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5년 전인 1992년의 제14대 대선 때도 '태안공정선거감시단'의 상임 의장으로 활동했다. 신부·목사·스님·교사대표·농민대표·문인대표로 이루어진 공동 의장단의 상임 의장으로 역부족을 절절히 체감하면서도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선거는 이미 인물 대결이나 정책 대결이 아니었다. 극심한 지역 감정의 가공할 괴력 앞에 몸을 떨어야 했다. 보수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지역 패권주의의 무서운 실상을 뼈아프게 확인하고 말았다. 그 거대한 혼돈과 미망의 확인이 내 가슴을 절절히 아프게 했다.

 

선거 직후의 주일 미사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동진 신부님의 강론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 명패에 새겨진 '유다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글자들의 의미를 아십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지만 원 고향이며 자란 곳인 나자렛은 로마의 지배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곳이지요. 대다수 유다인들이 멸시하고 천대했던 지방이지요. 그래서 예수의 출신지를 구리판에 새겨 십자가에 달았던 거지요. 멸시와 조롱과 처형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감내했던 그곳 그 시절의 지역 감정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상상이 가능합니다. 기득권 세력과 지역 감정이 결탁했던 예수님 시대의 그 상황은 바로 우리의 오늘의 실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김대중씨가 반대자들에게 철저히 탄압 당하고 거부당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어지간히 닮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 선언을 하고 영국으로 떠나가 살 때 나는 못내 가슴이 아팠다. 그의 지식과 경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고자 했던 열망, 오랜 세월의 민주화 투쟁과 고난이 너무도 아까웠다. 그가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런 내 마음은 지역 잡지 <갯마을> 94년 5·6월호에 쓴 이희호 여사와의 '대담 기사'속에 잘 나타나 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도 그가 '거짓말쟁이'로 몰리는 사태를 가장 뼈아파했다.

 

나는 그를 많이 아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런 연유로 이번에는 아예 '새정치 국민회의'에 입당해서 당원 배지를 달고 뛰었다. 매일같이 '행동하는 양심'을 생각했다. 수평적 정권 교체의 포기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했다.

 

충청인으로서 저 호남인들의 '한'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었다. 결코 지역 감정의 최초 발생지가 아니면서도 지역 갈등의 한 축으로 비난받고 멸시받는 그들을 뜨겁게 감싸안고 싶었다. 같은 민족에 대한 대승적 '사랑'이 작동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국민이 선거에 의한 여야 간 수평적 정권 교체의 경험을 갖지 않고서는 숱한 가치관의 왜곡과 혼돈 현상을 극복할 수 없고,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들의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눈물겨운 싸움이었다. 명쾌하고 즐거운 선거 운동이 그리웠다. 오해와 의심과 온갖 음해와 편견…한없이 응고된 관성적 거부감과의 충돌로 전전긍긍하며 절망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불안 속의 '소망'이 너무 절절하다보니 지레 슬퍼져서 술에 취한 채 개표 초반에는 초저녁의 태안 거리를 울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끝내는 기쁨의 눈물,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습다. 내가 대통령 선거 때문에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이라니….

 

나는 감히 말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그가 옥중에서 쓴 수많은 글을 통해 그를 미루어 안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이다. 그는 눈물과 용서와 사랑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음해하고 탄압하고 거부했던 사람들을 모두 함께 끌어안는 사랑의 정치만이 모두 함께 승리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역 감정을 없애고 민족의 대화합을 이루는 '사랑의 정치'로 진정한 승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그를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할 뿐이다.

 

(<태안신문> 1998년 1월 2일)




태그:#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제15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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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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