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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은 제목에서 풍기듯, 제2의 여인천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여걸들의 입지가 대단하다. 미실궁주(고현정)을 필두로 천명공주(박예진), 덕만(이요원)을 둘러싼 남자들의 캐릭터가 여성캐릭터에 비해 강인함이 부족한, 뭐랄까, 2%로 부족한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첫 회 진흥왕(이순재)를 제외하고는 이어지는 왕위에 오르는 자들은 하나같이 미실궁주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으며, 궁궐에 대부분의 남성들과 화랑도의 젊은청년들까지 미실궁주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천명공주와 덕만의 주위 남자들도 사정은 같다.

 

이러한 남성캐릭터들이 사실상 최근 들어 더욱더 심화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현대극에서도 일일드라마나, 아침드라마를 보면 여성캐릭터가 더 강하게 그려지고 상대적으로 남성캐릭터는 우유부단하거나, 푼수끼가 철철 넘치는 캐릭터들이 많다. 그래서 사극에서의 못난 남성캐릭터들이 더욱더 눈에 띄게 되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로서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철딱서니 없는 미실 손아귀에 놀아나는 남자

 

그렇다면 우선 유형별로 따져보자. 미실의 남자들이 드라마 속에서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캐릭터로서 찌질함과 몰염치를 두루 갖춘 철딱서니 없는 유형이다. 얼마 전 종영된 <아내의 유혹>의 정교빈(변우민)이 현대극에서 대표적인 예라면 <선덕여왕>에서는 단연 미실의 동생 미생(정웅인)을 뽑을 수 있다.

 

미생은 잘난 누나 덕에 고위관료로 지내고 있지만 허세와 허풍, 여색을 밝히는 특징을 빼고는 그야말로 허수아비다.

 

별명을 굳이 짓자면 '허당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식을 100명이나 둔 미생이기에 희대의 난봉꾼기질을 타고났지만 누나처럼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한 번 본 여자의 얼굴을 잊지 못하면서도 정작 계략을 꾸미는 데 있어서 자주 말을 바꾸며 누나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 미생이다. 대신 빠른 눈치 하나로 누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이다. 그리고 특유의 경망스러운 행동으로 일관하며, 미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미생말고도 미실의 남편 세종(독고영재)과 아들 하종(김정현)도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다. 물론 세종은 미생과 하종처럼 경망스럽지는 않으나, 자신의 부인임에도 그녀의 숱한 남자들을 인내하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하종은 삼촌인 미생을 똑닮은 인물로 말은 뻔지르르하나, 패기나 명석함이 모자라다. 그래서 미실은 이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 아래 자신의 수행원처럼 활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정도다.

 

이처럼 무언가 조금 모자란 이들은 현대극 속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남자들의 유형이다. <아내의 유혹> 정교빈이 그러했고, <찬란한 유산>과 <솔약국집 아들들>의 아들들이 그렇다. 물론 미생과 하종처럼 덜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힘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실상 <찬란한 유산>의 선우환도 할머니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했으리라.

 

혼자 로맨스를 즐기는 미실의 남자 설원

 

하지만 미실의 남자 대부분이 철딱서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를 정인으로 생각하는 내연남 설원(전노민)은 철딱서니가 없기보단 로맨티스트를 자청하는 착각에 빠진 남자이다. 설원은 신라 병부를 총괄하는 엘리트 관료이지만 사랑에서만큼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미실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긴 후 자신의 아내는 잊고 미실의 말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수행원 노릇을 자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1회에서 이미 진흥왕의 교지를 받고서도 미실에게 달려가 "4년 전 모든 것을 당신에게 걸었습니다. 나의 운명, 신라의 운명까지"라며 로맨티스트를 자처하고 나섰다.

 

물론 그 로맨스는 혼자 즐기는 것으로 미실은 그에게 몸은 주었어도 마음을 준 적은 없다. 단지 그를 발판으로 신라 병부를 손아귀에 넣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설원도 미생과, 세종처럼 수단에 불과한 존재이다.

 

하지만 설원은 사뭇 진지하다. 그녀를 향한 눈빛에서도 이미 미실을 극진하게 사랑하고 있음이 표출되고 물신양면으로 미실을 도와 뜻을 도모하고자 한다. 만약 이러한 남자들이 현재에도 존재한다면 분명 나라의 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설원이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 속에 빠진 로맨티스트들은 현대극 드라마에서 넘쳐난다. 우선 <트리플>의 현태가 그러하다. 혼자 첫 눈에 반해 몸과 마음을 다 준 현태는 자신의 친구 활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들이댄다.

 

그녀의 집에 무단 침입해 잠을 자고, 멋대로 농구코트를 설치해 농구를 하면서 그녀의 생활을 염탐한다. 현실에서 이런 남자를 만났다면 당연히 스토커로 신고했을 정도로 막무가내다. 그런데 스스로는 그녀를 향한 로맨스라 착각한다. 물론 이들은 결말에 사랑으로 이루어졌지만 그러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얼마 전 종영한 <잘했군 잘했어>에서는 강주(채림)의 첫 사랑, 즉 강주의 첫 사랑 유호남(김승수)은 별이의 존재를 알자 무작정 다시금 사랑한다며 들이대는 역할로 등장했다. 강주는 자신의 사랑은 다른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히는데도 불쑥 찾아와서는 자신의 로맨스를 즐기려 했다.

 

이 외에도 이런 류의 사랑을 하는 비현실적인 주인공들은 많다. <밥줘>에서도 선우(김성민)과 화진(최수린)이 분명히 불륜임에도 자신들은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로맨스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상 이전까지 이러한 사랑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순정파 남성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우직하나 답답한, 성실하나 명석하지 않은 남자들

 

이제, 미실의 남자를 살펴보았다면 천명공주와 덕만의 남자 김유신을 보면 참 답답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뭐랄까 꽉 막힌 구석이 많은 친구이다. 물론 역사 속에서 김유신은 당대 최고의 장군으로서 삼국통일을 이끈 영웅 중의 영웅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천명공주와 덕만에게 잔소리를 듣는 소심남이다. 언뜻 초식남과도 비슷한데, 다만 여자에 관심이 없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그래서 김유신은 <결혼 못하는 남자>에 조재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조재희는 여자에게 무관심하다면 김유신은 관심을 많으나 자신의 생각밖에 못하는 남자다.

 

처음 그가 등장했던 7회에서 천명공주는 그의 어둔함에 답답함을 표시했다. 1만 번 베기 무술을 연습하던 그는 9925번을 채운 뒤 "잡념이 들어갔다"고 말하며 다시 1부터 하던 모습에 천명공주는 :낭도들을 통솔하기 위해서 뭐라도 재주를 보여야 할 판에 우둔한 머리로 짜낸 술수가 겨우 우직한 성실함인 게로구나"라고 꾸짖었다.

 

이처럼 그는 성실하긴 하나, 명석하지 못하며, 우직하나 답답하다. 덕만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덕만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출생에 대해서 안 후 혼란스러워할 때도 그는 덕만에게 "떠나지 말라. 굳이 떠난다면 잡아둘 수밖에 없다"고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는 이가 김유신이다.

 

여자들이 힘들어하는 순간에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저렇게 무작정 이야기한다면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을까. 아마 좋아했다가도 도망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유신은 덕만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보좌진으로서 썩 훌륭한 기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실에게서도 자신의 편이 되라 권유하는 그녀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자신을 죽여서 가지라"는 말 밖에는 내뱉지 못한다. 정작 미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략을 꾸미고 있었으나 김유신은 그것을 모른다. 그저 의로운 눈빛 하나로 드라마 속에 등장하곤 할 뿐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남자들은 현대극에서 찾아보면 많다. <결혼 못하는 남자>의 조재희가 그렇고, <트리플>의 신활이 그렇다. 자신의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남자, 자신의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고백하는 앞에서 화를 낼 뿐 정작 그녀를 버리지 못하는 남자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일에서는 다행히도 명석한 뇌를 지니고 있었지만 사랑 앞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모르는 남자들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여성들의 캐릭터가 드라마를 이끄는데 일조하면서 상대적으로 남성들의 캐릭터가 점점 찌질해지고 있다. 물론 남성 시청자들로서는 불편할 수 있겠으나, 여성시청자들에게는 그러한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태그:#선덕영왕 , #남성캐릭터 , #찌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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