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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사람만이 휴가를 떠난다.
새들의 비상은
생존의 다른 방식일 뿐,
휴가를 떠난다.
나는 사람이기에.

작년 여름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휴가를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휴가만큼은 두 배로 기억 할 수 있는 여행으로 만들고 싶었다. 따라서 나는 여름휴가 계획을 일찌감치 세웠었다. 그것도 국내가 아닌 최초로 해외여행을 꿈꿨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온 이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강렬했다. 칠흑 같은 밤바다의 선상에서의 삼천 발이 넘는 불꽃놀이의 향연, 밤이 되면 카페로 변하는 크루즈호의 식당에서 흐느적거리며 노래를 부르던 라이브 가수의 열정적인 모습들,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그런 장면들이 나는 그리웠다. 그래서 이번엔 인천에서 배를 타고 칭다오(중국)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래전에 세워둔 계획은 '즐거운 밴드' 녀석들의 설득으로 무너져 버렸다.

"휴가 때 뭐하실 거예요?"
"중국으로 갈 거야."
"거기가 어딘데요?"
"칭다오, 인천에서 배 타면 열다섯 시간 정도 걸려."
"그러지 말고 저희랑 같이 가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휴가 계획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 그럼 조건이 있어."
"뭔데요?"
"아리따운 이모를 데려온다면 함 생각해 볼게."

내 말이 끝난 직후 연습실은 삼초간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녀석들이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파지직~ 따가운 가시광선을 내 온몸을 향해 발사했다. 그것은 도저히 불가한 조건이라는 대답과 함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들과의 여행이라면 굳이 예쁜 이모가 없어도 좋을 것 같았다. 오히려 이들과의 여행을 바랐던 것은 나였다. 더구나 이런 식의 여행은 칭다오를 꿈꾸기 전부터 꿈꾸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 녀석들을 만나기 전이었고 또 이들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노래만큼 좋은 세상'과 더불어 '즐거운 밴드'를 결성하다.

나는 삼년 전부터 '노래만큼 좋은 세상이'라는 직장인 밴드에서 드럼을 맡고 있었다. 지난해 봄이 시작될 무렵 청소년 단체를 맡고 있던 지인의 부탁으로 밴드 지도를 맡았다. 시작 하면서 부담도 없지 않지만 지금껏 이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을 상쇄시킬만한 어떤 동력이 우리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멤버가 몇 차례 바뀌면서 해체 위기도 있었다. 아직은 카피 밴드, 공연을 할 때면 음정도 박자도 어설프다. 그렇지만 공연을 하고 나면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을 매순간 느낀다.

제3회 노래만큼 좋은 세상 공연에서 '즐거운 밴드'가 공연 하는 장면이다
▲ 노래만큼 좋은세상 남한산성 공연 제3회 노래만큼 좋은 세상 공연에서 '즐거운 밴드'가 공연 하는 장면이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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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출발을 해야 차가 막히지 않을 거예요."

보컬이자 리더인 세창이의 말이었다. 나와, 세창이, 그리고 드럼을 맡고 있는 명철이와 한울이는 공부방에서 자고 기타를 맡고 있는 수진이와 베이시스트 선애는 새벽 일찍 각자의 준비물을 가지고 공부방에 오기로 했다. 나는 새벽부터 운전을 해야 해서 일찍 잠을 청했지만 세창이와 다른 녀석들은 날을 샐 작정이었다. 함께 공부방 교사를 하다가 올초 부산으로 내려가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는 성언이도 삼척 터미널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새벽 네 시 반이었다. 수진이와 선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선애는 이번 여행을 끝으로 당분간 밴드는 쉴 예정이었다. 힘겨운 청춘의 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그녀에게 이번 여행은 좀 더 특별 할 것 같았다. 새벽 다섯 시,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고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다. 더구나 오랜만에 잡아 보는 운전대였다. 검은 차창으로 새어드는 불빛들은 새벽을 타고 잠을 쫓듯 꿈을 쫓는 누군가의 희망이리라.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렌트카에 짐을 싣고 드디어 삼척행 시동을 걸었다.

-틀에 박히거나 새롭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거나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이 세 범주 안에 들어있다. 굳이 택하자면,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새로운 것을 원했다. 여행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복잡하면서도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 확장된 동공 속으로 파고드는 주변의 새로운 상황들이 먹먹하던 숨통을 탁 트이게 하는 순간 특별해진 나는 말할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휴가 직전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매일 밤 세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간신히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새로운 일터에 적응하는 것도 순탄치 않았다. 이 모든 상황들이 나를 점점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수능을 앞두고 있는 선애와, 수진, 세창,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칭다오를 포기했더니 삼척이 달려왔다.

세차게 불던 도로 위의 바람은 어느새 비가 되어 유리를 덮었다. 내리 다섯 시간을 달려서 삼척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는 매순간 막혔다. 답답했다. 그러다가 또 시원스럽게 뚫리는 도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문제는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 모든 난관들이 다시 돌아올지라도 내일 이맘때쯤이면 나는 그에 대응할만한 체력을 얻었을 것이다.

38번 국도에서 맞이한 무수한 여름의 잔해는 지칠 대로 지쳐서 도로나 가로수 주변에 무수히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여름을 밟고 서 있었다. 지친 여름을 밟고 섰으되 그것은 여름이 아니라 무수한 불안을 만들어내는 어떤 상황들이었다. 그것은 지난밤에 혹은 우리를 앞서 갔던 어떤 차량에 의해서 '로드킬'을 당한 채 갓길에 버려 져 있는 오소리 한 마리의 시체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영동 고속도로를 벗어나 삼척행 국도를 달리던 중 찍은 사진.
▲ 삼척가는 길 영동 고속도로를 벗어나 삼척행 국도를 달리던 중 찍은 사진.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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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뜨거운 열기는 차창으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우리를 비켜가지 않았다. 여름이여! 여름이여! 이 우라질 놈의 여름이여! 열정을 가슴에 품은 우리 앞에서 너의 그 뜨거운 열기는 한낮 빙하기의 작은 장작불이었으니 아! 어쩌란 말인가? 이글거리는 태양을 삼키듯 차창을 열고서 욕망을 넘어선 열망을 부르짖는다. 여름아! 너는 한 시대의 고통과 절망에서 탄생했으니 그는 내가 아니었음을 또한 너희도 아니었으므로 부디 그대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 지지부진한 삶과 고통스러운 운명 앞에서 우리는 너나없이 울음을 우나니 그 울음을 통과하는 저점에는 또 어떤 목지기가 있어 작열하는 태양과 훅훅 올라오는 대지의 열기를 차갑게 식혀 줄 것인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는 당황스러움

세창이가 예약한 마을 회관은 바닷가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자동차로 이십 여분 정도가 걸렸다. 제법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는데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새마을 지도자라고 하셨다. 숙소에는 식기며 가스, 냉장고 등이 있어서 좋았다. 운동기구를 본 명철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충 짐을 방바닥에 부려놓고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당황스런 소리들이 들려왔다.

"휴대용 가스렌지가 없어요?"
"어라! 상추도 쌈장도 없어요."
"무슨 소리야, 잘 찾아봐!"
"수박도 없어요."
"뭐라고?"

출발 전날 애써서 장을 본 식재료들이 하나도 없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짐을 챙기다 보니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이며 상추 같은 식재료들을 죄다 놓고 와버린 모양이다.

"고기는?"
"여기 있어요."

검은 봉지에 쌓인 채 아이스박스에 고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한동안 허탈했다. 여행의 묘미는 또한 이런 것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는 것, 그 난관을 어떤 식으로든 헤쳐 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가스와 식기와, 냉장고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운인가! 부족한 식재료들은 곧 합류할 성언이에게 부탁했다.

-해수욕장이 후져서 '후진 작은 해수욕장?'

마을 회관을 벗어나 좁은 이차선 도로를 따라서 바다로 향했다. 지도를 보며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 해수욕장을 찾았다. 후진 해수욕장, 독특한 이름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후진 해수욕장은 그 이름처럼 후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어디라도 마찬가지였다. 바닷물을 찼고 푸르렀다. 푸르다 못해 쪽빛이었다. 이모를 데려오지 않았으니 여기서 이모를 현지 조달해야 되지 않겠니! 라는 나의 말에 수진이가 모래로 즉석 이모(?)를 만들어주었다.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하고 있는 사진
▲ 후진 해수욕장1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하고 있는 사진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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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서  물놀이중.
▲ 후진 해수욕장2 해수욕장에서 물놀이중.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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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벙 첨벙 뛰어든 우리들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렸다. 한 번씩 들어갔다 나오면 입술은 바다처럼 파랬고 온 몸은 소금기로 짠 내가 났다. 머리를 털면 소금 알갱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래 알갱이들은 귀속을 파고들었다. 이내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아뿔싸! 성언이를 깜빡 잊고 있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십여 통 넘게 와 있었다.

"형님 저 방금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사둔2리 마을 회관에서 먹은 삼겹살과 김치 찌게

저녁 늦게 준비된 만찬은 그런대로 풍성했다. 삼겹살과 김치찌개, 맥주와 소주.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알코올의 쎄한 느낌을 향유했다. 힘겹게 지나왔던 지난 시간들을 소주 한 잔으로 위로 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 순간은 마냥 행복했다. 식탁에 둘러 앉아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꼰대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꼰대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십 오 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우리는 얼마 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예인과 정치인의 죽음을 함께 목도하지 않았던가. 지난 세기를 함께 지나쳐 왔으며 다음 세기를 함께 맞이하지 못할 거라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동갑임을 나는 거듭 주장했다. 너희들은 웃었을지라도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말았으니 아! 이 또한 어쩌란 말인가? 유쾌함과 발람함과 생기 가득한 웃음은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시절 내게 물어준 이가 없었으니 나는 이제라도 너희들이 힘들게 통과하고 있는 청춘을 묻고 싶었다. 그 시절 말해준 이가 없었으니 또한 내 청춘의 한 조각을 너희들에게서 엿보고 싶었다. 

성남으로 출발하기전 마을 회관 앞에서, 회관을 빌려주신 어르신께 사진 한컷을 부탁했다.
▲ 사둔2리 마을 회관 성남으로 출발하기전 마을 회관 앞에서, 회관을 빌려주신 어르신께 사진 한컷을 부탁했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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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잔에 사이다를 채우듯 빈 가슴에 열망을 채우고 왔다.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에는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음날 오전, 성언이를 터미널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서울로 향했다. 틈만 나면 끼어드는 얌체 차량을 향해 소심한 욕지기를 해대며 이번 여행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너희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했다. 혼자만의 여행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발랄함 혹은 그에 상응하는 생기가 너희들에게서 넘쳐났다. 일분은 삶이 되고 하루는 경험이 되고 한 달이 넘어서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리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제와 오늘이 소중했다. 너희들의 시간이 부러웠기에 나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간직 할 것이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지워지되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우리의 어제와 오늘이여. 빈 잔에 사이다를 채우듯 비어 있던 가슴에 한가득 열망을 가득 채우고 돌아간다. 돌아간다. 우리가 다시 있던 그 곳으로!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기사입니다. '즐거운 밴드'는 방과후 공부방인 '푸른학교' 학생과 성남 지역의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청소년 밴드입니다.



태그:#여름휴가, #삼척, #칭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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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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