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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아깨비의 긴 다리가 마음을 잡는다. 초록의 보호색이 완벽하다. 보호색으로 인해 처음에는 방아깨비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긴 다리를 사용하여 풀쩍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알아볼 수 있었다. 풀 이파리에 감추어져 있어서 알아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고 있는 방아깨비에 마음을 빼앗겼다.

추억
▲ 방아깨비 추억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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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깨비를 여유를 즐기고 있는 곳은 한적한 바닷가다. 금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철새가 몰려들 때에는 새들의 군무를 보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름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어 찾는 이가 없었다. 민들레 꽃씨가 바람을 기다리고 있을 뿐 방아깨비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없다.

방아깨비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그 때에는 왜 그렇게 배가 고팠는지 모르겠다. 음식의 질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군것질이라고는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을 때였다. 하루 세 끼를 먹는 날은 재수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용돈이 어디에 있으면 주전부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처럼 산에 나무가 무성하지도 않았다. 헐벗은 산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열매를 얻을 수도 없었다. 무엇이든지 부족하던 때였다. 철별로 구할 수 있는 것들인 제한적이었다. 겨울에는 칡뿌리를 캘 수 있었고 여름이면 띠 꽃을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라도 사투로 '삐비'라고 불리었다. 꽃을 피기도 전에 채취하였기에 꽃이 필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완벽한
▲ 보호색 완벽한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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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마을 앞 내가에서 훌훌 벗어버리고 목욕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그 순간에는 부러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물장구치다 지치면 냇가에서 손으로 물고기를 잡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금방 지나가버렸다.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렸다.

냇가에서 놀다가 지치면 풀숲에 앉아 쉬었다. 자연스럽게 시선 안에 방아깨비가 들어왔다. 그 때에는 방아깨비가 엄청 컸었다. 어른 손가락 마디보다도 더 큰 방아깨비가 긴 뒷다리를 이용하여 도약하게 되면  잡기가 쉽지 않았다. 놓치게 되면 오기가 발동하였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생포하게 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방아깨비와 놀다보면 시나브로 친구가 된다. 방아를 찧으라고 노래를 부르면 방아깨비는 대답으로도 하듯이, 긴 뒷다리로 이용하여 응답을 한다. 상하로 움직이면서 흥을 돋운다. 마치 물레방아로 돌아가는 것처럼 반복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방아를 찧게 되면 하얀 쌀이 쏟아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 생각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 된다.

행복했던
▲ 유년시절 행복했던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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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생각만 하여도 배가 불렀다. 점심을 굶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욱 더 간절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방아깨비의 방아를 통해서 배가 부를 수 있는 시절이 그리워진다. 점심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도 그 때는 정말 행복하였었다.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한 지금보다 훨씬 더 즐거웠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넘치고 있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족하였지만 그 것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 밥이 아닌 물로 배를 채우면 되는 일이었다. 배가 고파도 마음은 편안할 수 있었기에 즐거울 수가 있었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방아깨비를 바라보면서 유년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방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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