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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인주면 걸매리 해안은 아산시에 남아있는 마지막 바다며 해안습지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아산만방조제와 삽교호방조제 사이에서 끈질기게 바다생명을 이어온 기적 같은 땅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크다는 이곳에는 어민들은 자연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에 동화 돼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만조를 기다렸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배를 띄워 인근 어장(갯벌)으로 이동한다. 어장에는 건강망이라는 그물이 곳곳에 걸쳐져 있다. 만조에 갯벌까지 올라온 물고기를 잡는 전통방식의 독특한 어획방법이다.  

 

건강망에 갇힌 물고기를 잡고 나면 갯벌 위의 바닷물이 거의 빠져 나간다. 배는 자연스럽게 갯벌위에 정박하게 된다. 어부들은 그때부터 배에서 내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 속에 숨어 있는 각종 어패류를 찾는다.

 

간조가 되면 갈매기, 백로, 도요새 등 각종 새들도 갯벌에 내려 앉아 먹이사냥을 시작한다. 특히 갯벌위에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는 칠게와 망둥어는 이들의 가장 훌륭한 사냥감이다.

 

걸매리 갯벌의 이 같은 풍경은 마치 새와 사람이 뒤엉켜 생존경쟁을 벌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어부들은 건강망에 갇힌 물고기를 새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후한 인심도 쓴다.

 

아산시에 존재하는 이런 별난 세상이 놀랍기만 하다. 자연과 영원한 동거를 꿈꾸는 이들과 하루를 동행했다.

 

소형 선박을 타고 걸매리 해안으로 나가다

 

2009년 7월23일 새벽 6시, 바닷물이 차오르며 걸매리 해안 갯벌 곳곳에 정박됐던 배가 멀리서부터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배는 100마력을 넘지 않는 1톤 미만의 소형 선박으로 시속 30㎞까지 달릴 수 있다. 걸매리 해안탐사는 인주어촌계 박용규 계장, 어민 박재룡씨, 어민 이재두씨, 아산시의회 임광웅 시의원이 안내했다.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차수철 사무국장, 태안시민생태조사단 환경전문가 여길욱씨 등이 환경과 자연생태에 대한 조언을 했으며, 31명의 인주어촌계 어민들이 생활모습을 공개하며 취재와 탐사에 협조했다.

 

이들 어민들은 아산시가 갯벌을 매립해 대규모 공단을 조성한다는 계획에 대해 '생태를 파괴하는 미친 짓'이라며 크게 동요하고 있다. 심지어 아산시가 사업을 강행한다면 먼저 자신들의 몸을 갯벌에 던지겠다고 말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생태탐사에 앞서 환경전문가 여길욱씨는 "서해안은 지방자치단체간에 경쟁적이고 무분별한 갯벌매립으로 이미 환경재앙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삽교호와 아산만을 끼고 있는 아산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인주면 걸매리 해변 매립은 단순한 어장파괴를 넘어 환경재앙이 우려된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 바람을 넣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올라가 육지로 범람하는 피해상황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목포시민들이 이미 경험한 바 있는 끔찍한 재앙이다. 아산호와 삽교호를 양 옆에 끼고 있는 아산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팀을 태운 배는 오전 8시 무렵에 출발했다.

 

갯벌매립의 명분을 쌓기 위해 아산시는 그동안 인주해안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그 기능과 역할을 왜곡, 축소, 은폐하려 했다. 이에 탐사팀은 인주해안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나섰다. 

 

서해안의 특징인 뿌옇고 탁한 바다를 소형 선박은 미끄러지듯 달렸다. 탐사팀은 곳곳에서 만나는 어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첫 행선지는 거대한 바다의 물길을 인위적으로 틀어막은 아산항이었다. 아산항에 축조된 긴 제방둑은 거대한 암석으로 촘촘하게 쌓여 바다를 향해 끝없이 뻗쳐 있다.

 

여길욱씨는 "저 제방을 쌓기 위해서는 거대한 석산 몇 개가 파헤쳐졌을 것이다. 또 인위적으로 막은 물길은 바다 생명체들의 이동통로를 차단하고, 물의 흐름을 방해해 생태를 교란시켰을 것이다. 요즘처럼 장마철 일기가 불투명하고, 게릴라성 폭우가 집중될 때면, 인근 저지대는 바로 바닷물과 아산만 담수호의 공격을 동시에 받게 된다. 그만큼 환경재앙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고 질척한 갯벌이 바로 생명의 땅

  

 

오전 10시, 어민들은 매립 예정지인 인주면 걸매리 해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건강망 속에 갇힌 칠게, 농어, 망둥어, 붕장어, 숭어 등을 잡아 올렸다.

 

어촌계장과 인사를 나누던 한 인심 많은 어부가 건강망에서 갓 건져 올린 팔뚝만한 숭어와 붕장어 몇 마리를 횟감 하라며 배 안으로 던져주고 지나갔다. 탐사팀과 동승한 어민 이재두(53)씨가 선상에서 파닥거리는 숭어와 붕장어를 익숙한 솜씨로 손질해 초장과 함께 내놓았다. 바다에 떠있는 흔들리는 소형선박 선상에서 먹는 숭어와 붕장어는 도심권 일식집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오전 11시, 탐사팀을 태운 배가 갯벌 한 가운데 서 있는 건강망 앞에 멈춰서자 경이로운 자연현상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물이 빠지며, 검고 질척한 갯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이 빠지자 탐사팀을 태운 배도 갯벌 진흙 위에 내려앉았다. 배의 무게만큼 갯벌이 움푹 들어갔다.

 

이제 물이 다시 들어올 4시간 가량은 꼼짝없이 갯벌에 갇힌 신세다. 물이 빠지고 갯벌 곳곳에 배가 정박하자 어부들은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질척한 갯벌을 이동하며 각종 어패류를 잡기 시작했다. 제각각 허리춤에 고무다라를 하나씩 묶고 뻘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능숙하게 이동하는 모습도 이 곳 어부들의 어획방법이며, 신기에 가까운 묘기였다. 

 

보통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다. 그러나 이 곳 걸매리 해안에서는 남자들이 갯벌에 들어간다. 그 이유는 몇 시간동안 갯벌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여성들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갯벌에서 이동 할 때는 논바닥을 걷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힘좋은 남성들이 주로 조개채취를 한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날 이들이 채취한 것은 삐쭉이와 참맛, 개불 등이다. 이들은 뻘 속에서 갓 꺼낸 삐쭉이와 참맛을 대충 씻어낸 후 바로 끓는 물에 넣고 삶았다. 조금도 우적거리는 느낌이 없이 쫄깃 담백했다. 이것이 모래섞인 갯벌에서 채취한 조개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

 

삐쭉이는 가무락이라고도 불리는 조개의 일종으로 검은 빛깔의 독특한 모양을 띄고 있으며, 수시로 색깔이 변화를 일으킨다. 요즘 살이 통통하게 오른 참맛은 인주해안에서만 잡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드러운 육질에 비린내 없는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이날 어부들은 조개를 먼저 삶아 건져 먹고, 다시 그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장기를 달랬다. 

 

갓난아기 속살보다 더 부드러운 천연머드

 

이날은 한여름 땡볕이 몹시 따가웠다.

 

그러나 모래알 하나 섞이지 않은 갯벌의 감촉은 부드럽고, 시원하며, 기분 좋은 느낌을 안겨준다. 이 곳 어부들은 갯벌의 감촉이 갓난아기 속살보다 더 부드럽다고 표현했다. 

 

일행을 안내한 어촌계 박용규(60) 계장은 "이게 진짜 피부에 좋다는 자연 머드팩이지. 어릴 때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놀았어. 잠시만 손을 움직여도 자루 한가득 해산물을 잡을 수 있었지"라며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어민 박재룡(59·인주면금성리)씨는 "아산방조제와 삽교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바다는 황폐화 됐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그 자리에서 멀쩡하게 살던 생물체들이 생태교란을 일으킨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산-당진-평택을 잇는 아산만방조제가 세워진 때는 1973년이고, 아산-당진에 걸친 삽교호방조제가 완공된 시기는 1979년이다. 그동안 30여 년의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 조금씩 당시 파괴됐던 생태가 새살이 돋아나듯 걸매리 해안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한 순간에 무너졌던 바다와 연결된 생태의 끈이 강산이 세 차례나 바뀔 30여 년 긴 시간동안 조금씩 치유되며 어민들이 바다 생활을 이어가게 만든 것이다.

 

아산에는 분명히 바다가 남아 있는데...

 

아산시는 언제부턴가 역동성을 강조하며, 신흥개발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현대와 삼성이라는 세계 일류기업을 유치했다는 자부심과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며 기업유치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첨단산업도시 이미지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조금 어색했던지 '녹색'이라는 상충된 단어를 갖다 붙이며 '녹색첨단산업도시'라는 양립하기 힘든 더 어색한 구호까지 만들어 냈다.

 

녹색도시를 만들겠다는 아산시가 기업의 자본을 끌어들여 아산의 마지막 바다인 인주면 걸매리 갯벌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산지역의 갯벌에 대한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있으며, 그 기능과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탐사팀은 아산시에 마지막 남은 바다는 갯벌이며, 그 갯벌에는 생명체들이 살아 숨쉬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갯벌위에 건강망이라는 전통방식의 그물을 치고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포획해 생활하는 순박한 어부들도 있다. 또 이곳은 아직 풀리지 않는 자연의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여겨지는 바다와 민물을 이동하는 어린민물장어(실뱀장어)의 통행로이기도 하다. 인주면 마지막 바다를 지키는 31명의 어부들이 5~6월 두 달 동안 실뱀장어를 포획해 올리는 수입이 20억원이 넘는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이곳은 계절변화에 따라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요즘은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는 칡사리(칠게)가 눈에 띈다. 또 강 하구와 연결된 진흙바닥에 구멍을 파고 사는 청게(방게)도 관찰됐다.

 

 

특히 이 곳에서 사라진지 20년이 넘었다는 황바리(농게)는 최근 급격히 개체수가 늘고 있다. 황바리 수컷은 자기 몸짓만한 집게를 단 한 개만 가지고 있으며 매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관상용으로도 길러진다. 거기다 민물에 사는 덩치가 큰 참게도 종종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안테나처럼 몸 밖으로 돌출된 눈을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는 게들은 소리는 둔감하지만 진동에는 매우 민감해 작은 움직임에도 자취를 감춰 버린다. 숨죽여 관찰하면 자신이 파놓은 구멍 밖에서 열심히 두 집게를 번갈아가며, 무언가 퍼먹는 모습이 관찰된다. 흙 속의 유기물을 먹는 것이다.

 

이밖에도 갯벌 속에는 개불과 갯지렁이를 비롯한 이름 모를 다양한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며 먹고 먹히는 생태계를 형성하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한 뼘 남은 바다마저 산업단지로

 

아산시와 충남도는 사업파트너로 선정한 대림산업㈜과 함께 해양습지의 생명체를 송두리째 매립해 콘크리트로 덧씌우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 위에 석유화학, 비금속, 1차금속, 금속가공, 전자, 기계, 자동차 등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아산시, 충남도, 국토관리청, 평택해양항만청, 금강유역환경청 등의 관련부서는 대림산업㈜이 제출한 인주지구 해면부에 대한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민관합동개발로 이뤄지는 430만8000㎡(130만평) 갯벌매립 사업에 총 5080억 원이 투입되고, 올해부터 사업을 시작해 2018년 완료할 예정이다.

 

아산시는 공장부지가 없어서 갯벌을 매립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신창면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서부산업단지 조성사업은 당초 100만평을 설계했다가 307만평으로 늘리더니 경기가 나쁘다며 다시 195만평으로 줄였다.

 

이에 대해 아산시의회 조기행 의원은 "하루아침에 100만 여 평의 부지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아산시의 근시안적이고 일관성 없는 행정에 문제가 있다"며 질타했다. 

 

김귀영 의원은 "도고산업단지도 6년째 지연되고 있다"며 아산시에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착공은 했는데 언제 마무리될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 임광웅 의원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황해경제자유구역도 상당부분 산업단지로 편입될 텐데 바로 그 옆에 왜 산업단지가 더 필요하냐"고 따져 물었다.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차수철 국장은 "아산시와 충남도 그리고 대림산업이 반드시 갯벌을 매립해 토목공사를 하겠다면, 사업내용부터 전면 공개하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충남시사><교차로>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갯벌, #해안습지,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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