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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대갈리에서 모내기에 참여했다. 장화를 신은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이양기를 운전하며 모내기를 했고,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이 모내기에 참여한 것은 12년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대갈리에서 모내기에 참여했다. 장화를 신은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이양기를 운전하며 모내기를 했고,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이 모내기에 참여한 것은 12년만이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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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장마철이 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요즘 장마전선은 오줌발을 세우는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집중호우를 뿌리고 있다. 하루는 남도를, 하루는 중부를, 또 하루는 한 지역에 물폭탄을 터트리는 통에 비로 인한 피해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를 방문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었기에 대책본부를 찾은 대통령은 본부 관계자에게 "이곳(대책본부)에 한 번 더 안 와도 될 정도로 잘해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머릿속엔 '삽'과 '박정희'뿐?

그리고 15일 뉴스채널인 YTN의 <돌발영상>을 통해 비 피해 대책으로 그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를 전 국민이 알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 생각과 얼마나 동떨어진 사고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번 <돌발영상>의 제목은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이었다. 방송을 본 국민들은 실소를 넘어 이명박 대통령의 재래식 아이디어를 마음껏 조롱했다. 지난 6월 25일 친서민적 행보를 위한 이벤트였던 이문동 시장 방문과 견주어 이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현실 인식을 평가하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돌발영상>에 나온 '이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은 대체 뭐였을까. 그것은 거듭되는 재난을 영구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인데, 피해가 예상되는 산촌에 있는 집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켜 행정서비스도 잘 받게 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학교도 짓고 기숙사도 만들어 교육 걱정도 덜자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정의하면 박정희 독재 시절 했던 것과 같은 '화전민 소개(철거)'와 같다. 이 대통령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화전민 소개'의 근간은 지난 1966년에 제정된 화전정리관련법인 것 같다.

당시 그 법이 공포됨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산촌마을에 살고 있던 수만의 가구가 마을의 한 곳으로 이주하여 블럭집을 짓고 살았다. 아직도 시골 곳곳에 남아 있는 '독가촌'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비록 화전밭이었지만 붙여 먹을 밭이 없어진 화전민들의 삶은 힘들었다. 너나없이 먹고살 길 없던 시절이라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제 것이 있던 편이 나았다. 독가촌에 입주한 이들의 삶이 더 곤궁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독가촌의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식솔들을 이끌고 대처로 나갔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달동네였고 집은 판잣집이었다.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도시 생활은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았던 화전민 생활을 그리워하게 했다.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유랑자 양산은 이제 그만!

이명박 대통령은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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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는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정부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어렵게 자리잡은 판잣집마저 허물었다. 도시의 유랑인이 된 그들의 자식들 또한 대다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도시의 빈민층으로 전락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독가촌에 눌러앉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하루 품삯이 쌀 한 되 혹은 강냉이 한 되도 되지 않던 시절, 자식들 교육은커녕 먹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서 누구는 부잣집 가정부로, 누구는 주물공장이나 가방공장으로 떠났다.

나이 들어 내 집이라고 주장해 볼 수도 없는 독가촌의 사람들은 지금도 땅에 대한 권리가 없어 토지세로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를 이 대통령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질곡의 역사를 알지 못하니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오직 박정희식 이주대책일 뿐이다.

박정희 군사독재의 화전민 이주대책은 언뜻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소탕 작전과 아주 흡사했다. 당시만 해도 '무장공비'의 출현이 잦았던 시기라 정부로서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산촌의 집을 그들의 은신처 또는 부역자들의 집으로 여기는 면도 있었다.

하여 박정희는 산촌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달아 마을에 터를 마련하여 집단 생활을 하게 했다. 과거 빨치산 토벌대들이 산자락 아래에 있는 마을을 방화하여 은신처나 식량보급을 차단한 것과 비슷한 '작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굳이 법으로 화전민들을 이주시키지 않아도 지금의 산촌마을은 텅 비었다. 그들이 삶터를 버리고 떠난 것은 1980년대를 전후한 시점이다. 산촌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한 목적은 아이들 교육이었다.

그나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의 다수는 고령의 노인들이다. 땅이 삶의 근본이라고 여기며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농사 짓는 일밖에 할 수 없고, 땅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번 정류장은 김씨네 논입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중반부터 전원주택 붐이 일었다. 먹고살만해진 도시 사람들은 다시 시골을 꿈꾸기 시작했다. 버려진 채 쓰러져가던 빈집이 날개를 달았다. 공짜로 준다 해도 필요없다던 이들이 집을 사들였다. 몇 사람을 거치면서 값도 많이 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투자만 했지 실제 시골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산촌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용한 사이에도 계곡을 끼고 있는 땅은 계속해서 올랐다. 원주민이 평당 3천원에 판 땅이 몇 년 사이 몇 십만원으로 올랐다. 원주민들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었다. 땅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은 탓이었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즈음해서 시골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시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시골로 내려왔다. 빈집은 다시 호황기를 맞았다. 그렇게 시골살이를 시작한 그들조차도 이 대통령의 생각과는 다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학교 기숙사나 행정편의가 아니라 '자연을 자연답게 두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을 두고 인터넷에서도 말들이 많다. 대체적으로 그 구상이라는 것이 '초딩 수준도 되지 않는다' 또는 '경악스럽다'는 반응들이다. 그중에서 비교적 고운 말로 된 것을 소개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최대한 자신의 농지와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비오거나 무슨 일 생기면..
자다가도 논이나 밭에 나가 고랑을 트고 비닐로 덮고 하는데...
농민들이 뭐 자신들의 경작지로 아침마다 출근하는 줄 아나보네여...

모여살면.. 출근버스 운행해주나?
"이번 정류장은 김씨네 논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박씨네 밭입니다"

그냥 "수해복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될 껄...<다음 라야님>

재미있는 글이다. 농민들을 출퇴근 시켜주는 버스를 상상하다 보니 북한 사람들의 집단 농장이 떠오른다. 그것이 아니라도 "다음 정류장은 박씨네 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대통령의 구상에 출퇴근 버스를 운영하는 구상도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현재 오지 마을에 살고 있다.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곳(실제로는 마을 사람들이 포장하는 것을 반대한다)이니 불편한 것도 많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더 즐긴다. 차량이 없는 집은 읍내까지 가기 위해 몇 시간을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골짜기에도 원주민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이들 대다수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농사를 지어도 먹을 만큼 짓고 농약이나 비료도 안 주며 살아간다. 욕심을 버린 이들에게 이주를 강권한다면 욕심을 가지라는 말과 같으니 정책을 따를 리가 없다.

문명의 세계와 동떨어질 것 같지만 인터넷이 있어 문화적 소외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산꼭대기에 있어도 인터넷만 되면 살아가는 세상에 이 대통령의 뜬금없는 '원대한 구상'에 실소가 절로 나올 뿐이다.

귀농인들에게 인기 좋은 강원도, 건들지 말라

이명박 대통령이 7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7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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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와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정선은 귀농을 하려고 하는 이들에겐 가장 인기 있는 고장이다. 자연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봉화는 귀농하는 사람들로 인해 줄기만 하던 인구가 늘고 있고 정선도 귀농인이 늘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은 돌아오는 인구 순환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발언 중에 강원도를 예로 들었다.

"강원도 같은 데, 뜸뜸 떨어져 있는 집들을 한곳에 모아 아파트도 짓고..."

내가 살고 있는 정선은 땅 크기만 해도 서울의 두 배 반이 넘는다. 인구는 4만이 될까 할 정도로 적다. 이 중에서 아이들 교육을 걱정하는 가정은 대부분 읍내에 산다. 읍내 학교엔 기숙사도 있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그래도 도시로 나간다. 교육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표현처럼 '뜸뜸(뜨문뜨문)' 떨어져 살고 있는 이들은 대체로 땅을 버릴 수 없는 노인들이나 시골이 좋아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농사지은 것들이 제 값을 받는 것이고 어쩌다 대학에 진학한 아이가 돈 걱정하지 않고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다.

그러하니 시골에 기숙사를 짓는 것도 좋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진학한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는 게 더 현실적이다. 집단 이주를 정책으로 할 게 아니라 등록금에다 주거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돌발영상>을 보면 이 대통령은 두 달 전 모내기를 하러 갔을 때에도 산촌마을의 이주를 언급했다. 두 달이 흐른 지금까지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슨 정책이 곧 나올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그의 말처럼 "돈도 별로 들지 않는" 일이라 추진이 빠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이 대통령께서는 성장하면서 리어카를 끌며 장사만 하신 것 같은데, 농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부 좀 하시죠?"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농부의 땀이 얼마나 필요했으며, 풋고추 하나를 생산해 내기 위해 이른 봄부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대통령은 공부 좀 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그들이 땅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까지 공부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 대통령. 16일 부산 지역에 집중 호우가 내려 도시가 마비되었던데, 이런 말 할까 또 겁난다.

"비 피해가 그렇게 심각하면 도시의 단층 주택은 다 철거해 버리고 안전한 지역에 아파트를 지으세요. 그러면 침수될 염려도 없고 좋잖아요~."


태그:#화전민, #귀농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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