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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의 애도를 뒤로한 채 먼 이국땅으로 떠났다. 5월 28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후 생경한 환경에서 적응하기도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분향소를 찾았고, 49재까지 교민들과 함께 마쳤다.

 

이제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를 좀 고민하고 싶은 시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한 학자의 기고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진보적 학자로 분류되던 분의 글이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장집 교수가 이런 견해를 내놓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분의 학자적 식견이라면 그저 그러려니 해야 도리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MB정부가 보수정부라서 그렇지 민주정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부분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와 지난 정부의 잘잘못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것이다'는 주장이 특히 거슬린다.

 

과연 MB정부는 민주정부인가?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민주적 선택에 의하여 수립된 정권이다. 수립과정이 민주적 절차를 통한 것이니 민주정부라 한다면 독일의 나치정권은 어떤가? 분명 선거를 통하여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합법적 정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치정권을 민주정권이라 칭할 수는 없다. 그들의 행태는 세계정치사에 큰 흔적을 남긴 나치즘일 뿐이다. 가장 비민주적인 운영방식과 독선으로 끔찍한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권력기관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으며, 대중의 의사표현이 심각히 제약되고 있다. 사상의 자유도, 결사의 자유도 침해되고 있다. 심지어 사법부의 독립성에도 심각한 하자가 드러난 바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하여 정권의 편에서 부당한 일을 한 법관이 대법관에 올랐다. 비판적 언론인들은 가혹한 수사를 당하고 있다. 정부를 비판했다고 네티즌이 옥고를 치르다 나왔다.

 

희대의 정치보복성 수사로 인하여 전직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를 따르던 측근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고초를 당하며 그에게 끝없는 고통을 강요하였다. 자신이 목숨을 버리거나 비참한 굴욕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연일 증거와 확실한 사실관계의 확인도 없이 혐의를 언론에 브리핑하기도 하였다.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의구심, 대중의 의사표현에 대한 제약, 언론의 자유침해, 정치보복성 수사 등으로도 민주정부가 아니라는 증거가 부족한가?

 

또 그런 모든 것이 단지 보수정권이라는 증거일 뿐이라면 보수 세력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라면 충분히 다른 의견에 대하여 관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이나 언론의 자유, 사상과 결사의 자유, 정치보복 반대 등을 지극히 당연히 받아들여야 옳다. 만일 그러한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는 세력이 보수를 표방한다면 그것은 보수가 아니라 반민주 세력이 맞다.

 

그래서 민주정부가 아니라 할 수는 없고, 보수정부라서 그렇다는 주장은 궤변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다. 진보적 학자라는 분의 글에서 이런 궤변을 대하는 것이 입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MB정부는 단지 보수적인 정부가 아니라 반민주적인 정부가 맞다.

 

애도와 잘잘못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것이다

 

말의 뜻은 유감스럽게도 정확히 맞다. 아무리 큰 슬픔으로 애도를 하더라도 잘잘못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슬프기 때문에 갑자기 그가 했던 모든 일을 미화해선 안될 것이다. 과도하게 미화하려 한다면 그 자체로 고인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성도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공과는 이미 많이 평가가 내려진 듯하다. 최장집 교수의 주장대로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서민대중의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 가장 큰 비판점이 될 듯하다.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절차의 문제나 소통의 결여는 제법 심각하게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난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 한나라당과 지금의 집권세력으로부터는 무능하다는 덧칠이 위력을 발했고, 진보진영은 그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비판하는 데 바빴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무능하고 한 일 없는 정권처럼 평가되지 않았던가? 결국 MB정권의 탄생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피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과연 그러한 평가들이 객관적으로 옳고 당연한 것이었을까? 그렇게 형편없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면 현 정권과의 상대평가에서는 어떤가? 지금처럼 국민들이 자신의 할 말도 조심하고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전전긍긍해야 했던가?

 

애도를 한다고 해서 과도하게 미화해서는 곤란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과도하게 저평가된 측면이 있었고, 그분의 서거를 통해 되돌아보고 수정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그 일이 연로한 학자가 그렇게도 걱정하고 염려할 일인지 묻고 싶다. 잘못된 평가는 수정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분위기가 보수정부일 뿐 민주정부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하는 MB정부에게 불리한 분위기가 될까 염려하는 것일까? 처절하게 저평가되어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지난 정권에 대한 평가가 좀 다시 내려진들 뭐가 그리 염려할 일인지 모르겠다.

 

MB정권을 변호하나?

 

진보적 주장을 해오던 최장집 교수가 스스로 대단히 우스운 사람들로 정의해버린 보수세력을 도와주고 싶어서 이런 글을 썼을 리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정권이 민주성의 문제가 아닌 보수성 때문에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글의 맥락에서 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민주 대 반민주, 소통 대 불통 같은 양극화된 접근방식에 대한 의문도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그렇게 양극화된 구도를 가지고는 뭔가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논의진전이 어려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과 친노세력 간의 결집움직임에 대한 견제구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상대적으로 지금 보수 세력의 대연합도 역시 논란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민주세력의 연합에 대한 의미심장한 견제구는 아닐까? 스스로 민주정부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는 MB정부에게 무엇이 유리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의구심이 더욱 커진다. 지난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던 그가 지금의 정부를 변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문제는 탈권위적이던 지난 정권에 대하여 날리던 그 서슬 퍼렇던 비판이 지금의 정부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정권이 비판할 거리가 그렇게 없이 잘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스스로 민주정부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하는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부호는 그 분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자는 결론에서 멈추고 말았다. 시원한 대답은 어디서도 당장 듣기 어려울 듯싶다.

 

대다수의 국민도 민주 대 반민주, 보수 대연합, 민주 대연합 같은 양극화된 대결구도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히 심각한 퇴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권의 운영방식은 심각히 퇴행하고 있는 데 대응하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그렇게 하지 말고 어쩌란 말인가? 그냥 각기 갈라진 목소리를 높이며 분열하고 있으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그가 언젠가는 이러한 의구심에 답해줄 것이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최장집, #보수정부, #민주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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