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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한나라당이 사전 예고 없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 비정규직법 개정안 '기습상정'을 시도해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이 의사봉을 쥐고 비정규직법 개정안 등 147건의 미상정법안을 일괄 상정했다. 조 간사는 추미애 환노위원장이 사회권을 거부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민주당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하며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정당한 국회법 절차에 따라 여당 간사가 사회권을 행사했다고 강변하는 중이다.

 

그러나 여야 3당 간사 협의가 진행 중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조 의원은 이날 오후 3시 30분 김재윤(민주당), 권선택(자유선진당) 의원과 여야 3당 간사회의를 열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기습상정 시도는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불과 2분 만에 147건 상정... 한나라당 의원들 "조원진 짱, 속 시원하다" 자화자찬

 

한나라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과 강성천·김성회·박대해·박준선·성윤환·이두아·이화수 8명의 의원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개의를 요구하며 환노위 회의실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추 위원장이 정부 산하기관 비정규직 해고자와의 면담 등으로 개의가 지연되자 불만을 터뜨리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20여분간 자리를 지키던 조 의원은 갑자기 위원장석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10분 동안 기다려보고 추미애 위원장이 회의를 열지 않으면 여당 간사인 제가 사회권을 대행해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 모습을 환노위원장실에서 지켜보던 추 위원장은 이병길 수석전문위원을 회의실로 보내 "회의를 준비 중이니 기다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오후 3시 34분 위원장석에서 의사봉을 잡은 조 의원은 단독 상임위 개회를 선포한 뒤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 147건을 일괄 상정했다. 이어 그는 오후 3시 36분 "오늘 상정된 법안을 소위에 회부해야 하나 소위 구성이 안돼 법안을 상정하는 것만 하겠다"며 "다음 회의는 차후에 알리기로 하고 산회를 선포한다"고 방망이를 세 번 두드렸다. 147건의 법안 상정에 불과 2분 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조 의원이 산회를 선포하자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선 탄성이 쏟아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잘했어", "조원진 짱", "속 시원하다"고 한마디씩 던진 뒤 곧바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한나라당은 국회법 50조5항에 따라 조 의원의 위원장 직무 대행과 법안 일괄상정이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보고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원장이 개회 또는 의사진행을 거부.회피하는 경우 위원장이 소속되지 않은 다수당 간사가 위원장 직무를 대행하도록 돼 있다.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어제와 오늘 환노위 개의를 요구했으나 추 위원장은 사실상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거부했다"며 "통보 여부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볼 때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판단해 우리당 간사가 사회권을 대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또 "추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고의적으로 기피하는 등 국회법 정한 상임위원장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위원장직 사퇴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환노위원들은 기습상정 시도 뒤 성명서를 발표해 "민주당에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와 공당으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기대하며 마지막까지 타협점을 찾고자 했으나 비정규직 개정안의 상정 자체를 거부한 추 위원장의 독단과 아집에 의해 이마저도 이루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이들은 "집권여당으로서, 비정규직법 개정의 주관 상임위원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고용불안을 최소화하고 정규직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더 찾겠다"고 덧붙였다.

 

추미애 "국회를 놀이터로 알아... 안상수 대표, 간사 잘 가르쳐라"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기습상정 시도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기습 상정 직후 환노위원장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추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행태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추 위원장은 "조 의원의 행태는 날치기도 뭣도 아니고, 그냥 아이들 장난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국회가 놀이터냐"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회법에 따른 정당성'에 대해서도 "상임위원장석을 놀이터로 만들고 자기들끼리 모의연습게임 한 것을 갖고 법적 효력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조원진 간사는 위원장석 방망이를 장난감으로 아는 모양"이라고 비꼬며 일축했다.

 

한나라당 원내사령탑인 안상수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추 위원장은 "안 원내대표는 국회의 대선배 아니냐, 그럼 한나라당 간사를 잘 가르쳐야 할 것 아니냐, 의사봉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게 해서야 되겠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기습상정 시도 소식을 듣고 달려온 민주당 환노위원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상희 의원은 "'조원진 쇼'가 단지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 것인지, 한나라당 차원에서 의원들에게 지시한 것인지 안 대표가 답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간사인 김재윤 의원도 "3시 반에 간사회의를 열기로 해 놓고 이래도 되는 것이냐"며 "사회권 이양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한 것은 의회민주주의 파괴행위이자 국회 무시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추 위원장은 이날 한나라당의 기습상정을 법적 효력 없는 해프닝으로 보고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도대체 말귀를 알아들어야 사과도 요구할 수 있지"라면서 "조 의원이 이 정도로 상황을 전개시켰으면 본인이 알아서 사과하러 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법적 효력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국회법 제50조5항의 해석을 둘러싸고 여야간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추 위원장은 조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하고 고소 등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다.


태그:#비정규직법, #환노위, #추미애, #조원진, #국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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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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