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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교인 한 분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15년간 돌본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 시절 그 분은 장남인 남편의 뜻을 따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정성스레 보살펴 드렸다. 물론 시어머니가 하는 반찬투정은 예삿일이었고, 벽에다 똥칠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런 일들은 몸으로 때우면 될 것이기에 괜찮았다.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붙이는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자기 물품을 아무데나 함부로 두고서, 며느리를 도둑으로 몰아세우기가 일쑤였다. 어쩌다 남편의 친인척들이 와서 그 광경을 보면 괜스레 이상한 사람으로 내비쳤던 것이다.

 

15년 동안 그 세월을 보냈으니 어떻겠는가? 처음 몇 년은 건망증 정도였다가, 점차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붙일 때에는 가슴앓이를 하게 되었고, 마지막 떠나기 전까지 2-3년 동안 누워만 지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가셨으니 원망스럽기도 했고 또 죄스러웠다고 한다.

 

그래도 떠나기 1-2년 전에는 늘 환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아주셨다고 하니, 자신의 정성스런 돌봄을 그 마음으로 표현해 준 게 아니었겠나 싶었다고 한다. 지금도 시어머니의 마지막 해맑은 얼굴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오자와 이사오의 <치매를 산다는 것>은 치매 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깨닫게 해 주고 있다. 지은이 자신이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치매환자들을 지켜보고 또 치료해 왔는데, 치매환자들을 대하는 가족과 일반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치매환자들의 생이 즐겁거나 슬픈 쪽으로 기울어진다고 한다.

 

"치매라는 병을 수용해야 하는 사람은 치매를 안고 있는 본인만이 아니다. 그들과 관계있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지역, 그리고 사회 전체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또는 치매라는 사태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살고 늙어가고 병을 얻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 중 하나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주변증상은 반드시 사라지고 치매라는 난병을 안고 있어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209쪽)

 

여기서 말하는 주변증상이란 앞서 말한 시어머니가 교우에게 대하듯 도둑으로 몰아붙이는 일이나 길을 잃고 헤매는 일들을 비롯해 날짜와 시간관념이 없어서 한밤중에도 일어나서 밥을 달라고 재촉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치매초기에는 정신증상이 일어나고, 중기에는 언행장애가, 그리고 말기 때에는 수족을 못 쓰는 등 신체적인 문제에 부딪힌다고 한다.

 

물론 주변증상이 항상 나쁜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격렬한 주변증상이 나타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느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평온한 상태가 지속된다고도 한다. 그러니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도우미들이 더욱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노인의 물건에는 인생이 가득 차 있다."(122쪽)

 

이 말은 너무 평범한 말이지만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40대나 50대에도 치매가 걸리지만 대부분 치매는 노년 때에 발생한다. 그렇기에 그때까지 공들여 모은 집이나 물건을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함부로 팔거나 내다버린다면 그것은 그의 치매를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 일들은 이 책에서 손쉽게 엿볼 수 있다.

 

흔히 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에 걸리면 당사자는 물론이요, 다른 가족들까지도 고통에 처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만큼 치매를 극심한 정신질환으로 여기는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른들을 정신병자로 대할 게 아니라, 그저 잠깐잠깐 몸이 불편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할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야말로 치매환자에게도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도우미들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사건은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감정 속에 좋은 감정들을 자꾸 축적한다고 한다. 그러니 똑같이 치매에 걸렸어도 우울한 눈빛으로 배회하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노인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차이에서 오는 일일 것이다.


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지음, 이근아 옮김, 이아소(2009)


태그:#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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