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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여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시도를 앞두고 이상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인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대·창조한국당 추천)가 미국인이며,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처음 보도한 <독립신문>은 검찰의 수사행태를 비판하고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활동을 옹호해온 박 교수의 행적을 소개하면서 이와 같이 밝혔고, <프리존뉴스>는 이를 다룬 미발위 6월 22일 긴급기자간담회를 보도하였다. 뒤이어 <조선일보>가 25일자 기사에서 외국인이 정치활동을 하였다면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동아일보>가 동일자 사설에서 그의 행적과 결부시켜 '한국사회가 주는 온갖 혜택을 받으면서 교묘하게 의무를 피해가는 사람'으로까지 묘사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퍼슨웹>에 게재된 2001년 박경신 교수 인터뷰 내용이다.
 
박 교수는 '미국시민권은 갖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예. 특별히 가지려고 한 건 아닌데, 조국에 (교수로) 오려고 했더니 그게 없으면 군대 가야 한다네요. 상당히 아이러니하죠. 조국에 와서 일하려고 했더니 일하지 말고 군대 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땄습니다."
 
사실 이 발언만 놓고 보면 박 교수가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미국시민권을 딴 것처럼 보이지만, <퍼슨웹> 인터뷰 전문 을 보면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미국에서 활동했어도 충분히 잘 나갈 수 있는 변호사가 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 있다.
 
이를 두고 같은 위원회 변희재 위원(한나라당 추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은 "25일 이전에 위원직을 사퇴"하고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였다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직도 사퇴"하라고 6월 23일 <빅뉴스> 칼럼에서 주문하였다. 변 위원은 이에 덧붙여 박 교수가 활동한 기관들에 공개 질의를 하겠다면서 "별것 아닌 것 가지고 큰판 만들지 맙시다"라고 마무리하였다.
 
김우룡 위원장(한나라당 추천)은 "의회 60년 사상 최초로 '국민'까지 붙었는데, 미국 시민권자가 위원으로 활동했다"라고 유감을 표시했으나, 사실 '국민'자가 무색하고 부끄러워야 할 사람들은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다. 이들은 위원회 초기에는 여론을 선동할 위험이 있다며 여론조사를 반대하였고, 이후에는 비용조달, 국민의 무지,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여론조사를 반대하였다. 전체회의 공개도 초기부터 반대하였으며, 지역공청회 합의와 실시에도 불성실하게 임하였다.
 
결국 이들은 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불과 5일 걸려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동안, 애매한 박경신 교수의 국적 문제와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면서 110일의 활동을 마무리하고야 말았다.
 
'외국인'이 정부기구에서 활동하였다는 빗나간 문제제기
 
'외국인'이 정부기구에 임용되는 것이 부적절한가? 한나라당 위원들이 그토록 주장했던 대로 '자문기구'에서 전문가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정책수립에 전문성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국적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더구나 민주당 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의결기구'라고 해도 크게 문제될 소지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의결'이 국회가 수행하듯이 국민의 대표로서 행하는 '의결권'이 아닐뿐더러, 해당 법안은 문방위와 국회본회의의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의결기구라는 주장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공청회하듯이 의견을 밝히고 끝나는 기구가 아니고 '위원회'로서 의사결정과정의 '의결' 기능이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외국인 공무원 임용방침을 세우고 국가공무원법 개정의지를 밝혔으며, 데이비드 엘든(David Gordon Eldon) 두바이국제금융센터 회장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 이외에도 윌리엄 라이벡 금융감독원 특별고문과 윌리엄 러플린 전 카이스트 총장 뿐만 아니라 정부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이 적지 않으며, 점점 확대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고 이는 인수위에서도 주장한 내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사실 따로 있다. 만약 법적 개념으로서의 시민권과 국적을 떠나서 진심으로 한국의 법과 제도를 걱정하고 한국을 연구했느냐를 그 사람의 '국민성'으로 따지자면, 박경신 교수는 너무나도 분명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국민성과 같은 근대국민국가적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박경신 교수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지만, 같은 프레임에서 반박하기 위한 것이니 양해하시리라 생각한다).
 
박 교수는 변희재가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 "국적을 버렸다면, 일체 공적 논쟁을 하지 않고 조용히 돈이나 벌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었고, LA에서 변호사를 하면서 그럴 만한 충분한 실력과 재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1999년 한동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하자 주저 없이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서울대 등에서 강의를 함과 동시에 법무법인 한결에서 외국법 자문을 하면서도, 공익소송 자문 등 공익활동을 쉬지 않았다. 또 2005년에 고려대학교 부교수가 된 이후에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겸하는 열정을 보여 왔다.
 
기름유출된 태안으로 달려간 박경신 교수
 

어차피 순결한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몇 가지 일화를 밝히고자 한다. 박경신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고려대학교 영문법률저널(KULR)'이란 것을 만들어 학생들과 영문으로 저널을 편집·제작하고, 이를 세계 200개 대학에 배포하는 피곤한 작업을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시작하였다. 필자가 그 편집팀에 있으면서 느낀 박 교수의 열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국제법률시장에서 한국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쉬움을 학술적으로, 그리고 학생 중심적으로 풀고자 그는 새벽에도 학생들의 이메일 질문에 답했으며 편집팀 학생들을 챙겼다.
 
2007년 12월에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한국에서 맨손 어민과 관광숙박업 종사자들이 제대로 보상받아본 적이 없는 선례를 바꾸겠다며 학생들을 모아서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법률봉사단'을 만들어 태안으로 내려갔다. 가서 한겨울에 사무실을 열고 주민들에게 법률상담을 제공하였으며, 상법상으로 중한 과실이 있을 경우 삼성중공업이 피해에 대해 전액 배상하여야 한다는 이론을 세우고 이를 동료 변호사들에게 설득하고, 결국 공익소송대리인단까지 결성하고 당시 연구성과를 모은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단순히 박경신 교수가 고향이 안면도여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교수에게는 천금같은 시간인 겨울방학을 날리면서 그가 추구한 것은 한국에서도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것이자,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기름을 닦는 영세어민들에 대한 애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학생 모집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조개 캐고 낙지 잡던 어민들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데… 죄송합니다"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눈물의 의미를 변희재 위원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에 문제가 된 동일한 인터뷰에서 답한 바와 같이 박경신 교수에게 대한민국은 '조국'이고, 그에게 조국은 '망해도 같이 망할 사람들' 정도의 의미였다. 바로 그러하기에 박 교수는 '조국'의 전기통신기본법과 미네르바, 사이버모욕죄, 명예훼손과 언론의 자유,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권한, 정보통신망법 개정 등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모든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쉬지 않았고, 여기에 미국 헌법과 미국법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탄광 안의 카나리아'로 활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박 교수가 허위사실유포죄에 관해 '짐바브웨 대법원에서조차 위헌으로 판결하였다'고 지탄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미국에서 로스쿨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아마 대부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한국의 지식인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박경신 교수는 현 정권의 정책이 초래할 '표현의 자유 제한'과 그것이 불러올 '민주주의의 후퇴'를 앞서서 지적하고 걱정하였다. 그러기에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 참여하여 100일간의 논의에 참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전의 냄새가 난다, 마녀사냥!
 
작전의 냄새가 난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시꺼먼 옷을 입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주저앉히고 반나절 후에 중구청 직원들이 분향소를 '완전 철거'해버리는 정권에서, 22일에 <독립신문>이 <참여연대 박경신 반정부 활동 '눈에 띄네'>라며 '반정부'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여 국적 논란을 제기하고, 이를 같은 날 <프리존뉴스>와 <빅뉴스>에서 동시에 독립 기사로 보도하며, 다음날 바로 변희재 위원이 <박경신 위원님, 국민위 위원직 사퇴하십시오>라고 장문의 칼럼을 쓰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후속 보도를 내보내는 것은 간단할 것이다.
 
더구나 변희재 위원은 마치 판사와도 같이 "그런데 문제는 박 위원님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이유가 군대를 가기 싫어서라는 거지요"라고 이미 박경신 교수의 의도를 못 박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14년 동안 미국에 있었고, 일가친척이 모두 미국에 있으며, 29세였던 박경신 교수의 상황에서 한국에서 6개월 머물기 위해 2년 넘게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은 불합리했을 것이다. 결국 3일간의 작전 같은 '미국 국적·병역 기피' 공론화 시도는 '내용'으로 반박하지 못하자 행하는,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마녀사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기사가 오히려 박경신 교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걱정되지만, 미국에서도 'Kyung Sin Park'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꿋꿋이 활동한 사람에게 본명이 "스티브 박입니까? 쿠웨이트 박입니까?"라고 조롱하는 사람에게는 대응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필자가 아는 박경신 교수는 25일까지 위원직을 사퇴할 분도 아니다.
 
그러나 뜻있고 열정 있는 지식인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외국인의 정치활동'이란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분노할 뿐이다. 아마 그러한 사람들은 다시 박경신 교수를 LA로 보내버리고 똑똑한 반대파 없이 조용히 사회를 장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박 교수, 아니 '교수님'의  <퍼슨웹>  인터뷰 중 한 말을 들려주고 싶다.
 
"뭔가 사회를 위해서 살겠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그 일을 어디서 제일 잘 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그건 한국이지, 아프리카의 어디는 아니거든요.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상대적으로 제가 잘 알고 있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미국에서 (활동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여태까지 살아온 걸 봤을 때 한국과 미국에서 좀 더 뜻있게 살 수 있겠다, 나는 인간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살 수 있겠다는 거죠. 한국은 제게 그런 곳입니다."

태그:#박경신,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미발위,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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