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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생활은 자유로움 그 자체다. 어느 것 하나 얽매임이 없다. 자연과 풀과 짐승과 밤하늘의 별과도 맘껏 소통할 수 있다. 자연이 주는 사계절의 빛깔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산 중 널브러져 있는 이름 모를 것들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 산은 비움으로부터 채움을 만끽케 하는 참 스승인 셈이다.

 

도심 속에서는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소낙비가 지나가고 햇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에 지렁이가 기어가지만 그게 자기 목숨이던가. 고층빌딩 아파트 앞에 대형 소나무가 서 있긴 하지만 그게 어디 자연 속 유유자적한 소나무에 비기겠던가. 도심 속 미물과 나무가 그럴진대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오직 채움과 경쟁의 숨 막히는 전쟁터가 도심이지 않던가.

 

그 숨 막히는 도심 속 겹겹의 옷들을 훌훌 벗어던진 사람들이 있다. 산의 정령들이 불러내는 소리를 따라, 산 속 자유로움의 이끌림에 못 이겨, 그리고 스스로의 고립과 구도와 고독을 자처하여, 그렇게 산 속에 틀어 박혀 사는 이들이 있다. 뭔가에 취하면 취할수록 그것이 사람을 집어 삼키듯, 그들이 산에 취해 사는 것도 결국은 산이 그들을 집어 삼켰으리라.

 

박원식의 <산이 좋아 산에 사네>는 도심 속 생존의 경기장을 벗어나 산 속에서 제 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이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야 그들이 사는 산 속 칩거 생활을 한 쪽 창문을 열고 빼곰히 쳐다보는 격이겠지만, 그들은 그렇든 말든 눈치 보는 일이 없다. 산골 생활이 쉬울 수도 있겠지만 도심에서 쌓은 숱한 관계를 물리지 않으면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도시를 박차는 일이란 전선의 병사가 주둔지에서 이탈하는 것처럼이나 위험하거나 무모하다. 권재은에게도 망설임이 많았을 게다. 도시에서 쌓은 관계와 기반을 물리고 산으로 들기 위해선 마음을 비우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할 테니 이게 이미 내공을 요하는 일이다."(156쪽)

 

그것이 충주 부용산 자락에 사는 소리꾼 권재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의 산중에 살며 병마를 떨친 도종환도 그렇고, 버스에서 살림하며 산천을 떠도는 목수 김길수도 그럴 것이다. 더욱이 춘천 퇴골 자두나무집에 사는 여인 정상명도, 인제 설피밭 마을에서 세쌍둥이와 사는 어머니 이하영도 그렇다. 그들은 모두 도심 속 기반과 물욕을 뒤로 한 채 산골로 허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다.

 

뭐든 초기 삶이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법이다. 시골 벽촌을 떠나 도심에서 공장생활 하는 이들도 춥고 배고프듯, 모든 인연의 끈을 뒤로 한 채 산속으로 들어간 생활 역시 혹독하기는 마찬가지일터다. 꽤 유명한 산골 글쟁이들이야 예전처럼 원고청탁이 잘 들어오겠지만, 무명 시절의 박남준과 김도연은 처음 몇 년 동안은 극한의 어려움을 견뎌야만 했다고 하니, 그것도 뚝심이 없이는 버틸 재간도 못 되는가 싶기도 하다.

 

뭐든지 궁즉변, 변즉통이라고 했다던가. 그래도 극한의 상황을 견뎌낸 그들에게 산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자족할 수 있도록 하늘의 이슬과 대지의 젖을 먹여주었다고 한다. 단돈 6만원 쥐고 산에 들어와 한지마을을 일군 청원 벌랏골의 이종국이 그렇고, 땡전 한 푼 내지 않고 부안 묵방산 재각지기로 12년 동안 살아오다 이제는 야생꽃차를 만들어 대형백화점에 납품할 정도로 통한 삶을 살고 있는 이우원도 그렇다. 산중에서 온천수를 퍼 올린 형국이다. 아니 산의 정령들이 산골지기로 살아 온 그들에게 은덕을 베푼 일이리라.

 

"정착에 성공하고 잘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욕심이 없다는 점, 그리고 맨몸뚱이로 들어왔다는 점이죠. 녹차 농사를 하든, 찻상을 깎든 그들은 뭘 하든 마침내 고수가 됩니다. 그러나 돈 좀 가지고 들어 온 이들은 대부분 무너지더군요."(354쪽)

 

단돈 200만 원을 손에 쥔 채 지리산에 든 지 10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이원규 시인의 이야기다. 지리산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우를 정도로 드넓으니, 수천의 유량인들이 들어와 사기를 치고 있고, 상품바람으로 선량한 할머니들까지 장사꾼들에게 농락당한다 한다. 그렇지만 잔머리 굴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리산 산골지기들에겐 지리산이 대지의 젖을 가득 안겨 주리라 이야기기 한다.

 

그렇듯 비가 오면 비에 흠뻑 젖어 살고, 눈이 오면 눈 속에서 온 겨울을 나고 산다는 그들 산골지기들의 삶은 도심 속 먹이사슬의 경쟁자로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지금의 도심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라고 적극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들의 현 주소지에서 비움을 통한 채움의 나래를 어떻게 펼쳐 나갈지, 그들의 산중 창문을 통해 나름대로의 비법을 전해 주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산이 좋아 산에 사네 - 산골에서 제멋대로 사는 선수들 이야기

박원식, 창해(2009)


태그:#산이 좋아 산에 사네, #산골지기들의 삶, #비움을 통한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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