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시는 미디어다
 도시는 미디어다
ⓒ 책세상

관련사진보기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막아버린 모습을 볼 때마다 민주주의를 짓밟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분노하지만 한 편으로는 '버스' 자체가 주는 답답함과 그 차벽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빌딩, 그 사이를 오고가는 차량과 시민들 모습은 현대 도시 문명의 고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서울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경남 진주도 논과 산은 갈수록 사라져버리고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사람과 모든 생명을 살리는 '땅'이 아니라 사람과 모든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삭막한 시멘트 문화'가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월 용산철거민참사가 단적인 예다.

자고나면 사람만 유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도시도 자고나면 산이 하나 사라져버릴 정도로 지구에 있는 어떤 나라 도시보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집들은 끊임없이 부수고, 도로는 하루가 멀다하고 넓히지만 좁다고 아우성이다. 한 외국인은 한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돈 때문에 헐어버리는 대한민국 도시의 모습, 무엇이 우리를 생명이 아닌 죽음의 문화에 더 익숙해졌을까?

김찬호는 책세상문고·우리시대 064번 <도시는 미디어다>는 급격한 도시화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가꾸면서 생명이 넘치고, 더불어 살던 공동체를 자본과 효율성에 매몰되어 황폐화시켜버렸다고 지적하고 있어 읽을 만한 책이다.

도시를 보면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활동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도대체 표정이 없다"고 말한다. 볼거리는 많지만 눈길이 머물만한 대상이 없는 도시는 우리를 무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어 삶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김찬호 생각이다.

살기 위해 도시로, 도시로 향했지만 이제 도시 문명은 살림이 아니라 죽음이 더 친숙해져버렸는데 그럼 길은 없는가? 김찬호는 '소통'을 말한다. 콘크리트 도시 문명은 한 마디로 '소통' 부재이다. 차벽이 서울광장을 막아버렸듯이 온통 벽이다. 이 막힌 담을 헐어 서로 부대끼면서 삶을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구시 삼덕동의 '담장 허물기'와 일본의 '마을 만들기'운동, 브라질 남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꾸리찌바 시가 보여주는 도시 행정을 통하여 도시 문명도 소통 공간으로 변화면 얼마든지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삼덕동 담장 허물기는 김경민 대구 YMCA 사무총장이 1998년 동무의 장인 집을 전세를 얻어 살았는데 정원이 담 때문에 항상 그늘진 것으로 보고 담을 허문 것에서 시작되었다. 김 사무총장은 담만 허물지 않고, '꾸러기 환경 그림대회' 따위를 통하여 동네 아이들이 출품한 환경 그림을 골목에 전시하고, 벽화 그릭, 녹색 가게를 만들어 사람 사는 동네로 만들었다. 삼덕동 담장 허물기는 <오마이뉴스> 2009년 3월 15일 자 '담장 허물고 '관계'를 심었어요'를 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대구 삼덕동에는 담장 허물기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마을 만들기'가 있었다. 일본도 1950년대부터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전 국토가 개조되면서 도시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농촌은 인구가 급감, 교육, 교통, 소방 따위 사회 생활 조건이 붕괴되었고, 도시는 인구 급증으로 인하여 주택난, 통근난, 교통 재해 따위 문제가 발생했다. 이 모든 것은 정부와 행정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진 일들이다.

결국 주민들은 정부와 행정이 주체가 아니라 "주민이 지역의 거주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 자원의 공동 관리를 지향하는 운동"과 "거주 환경을 정비하기 위하여 주민의 다양한 요구를 받아들여 계획에 주민 참여를 도모하는" '마을 만들기'를 시작한 것이다.

삼덕동 담장 허물기과 일본 마을 만들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와 행정이 주체가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어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자본과 효율성에 내주 않는다면 도시도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면서 나무와 풀을 심으면서 자연과 소통하고, 스포츠를 통해 몸을 부대끼면서 소통한다면 도시는 자연스러운 생명을 표출할 수 있다고 김찬호는 말하고 있다.

"시민은 누구인가? 도시의 디자안에 참여하는 자만이 그 이름을 달 수 있다. 도시 공간을 배회하는 정체불명의 이미미들을 거두고 사람의 얼굴을 심어가는 운동, 소음 속에서도 자기 내면의 깊은 생명의 외침을 들으며 미래를 조망하는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자, 그가 도시의 주인이다."(169쪽)

그렇다 도시도 내가 주체가 되어 담을 허물고 마을을 만들면서 몸으로 부대낀다면 얼마든지 살아 숨쉬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막힌 담을 헐어라 그리고 사람과 자연 누구와도 소통하라.

덧붙이는 글 | <도시는 미디어다> 김찬호 지음 ㅣ 책세상 펴냄 ㅣ 4,900원



도시는 미디어다

김찬호 지음, 책세상(2002)


태그:#도시, #담장, #소통, #생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