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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 울려펴진 애증의 서곡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2002년 한일 월드컵, 그 뜨거웠던 열광의 추억! 4강 신화 한국 축구대표팀의 기적과도 같은 폭풍질주는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시작됐다. 2002년 6월 4일 화요일 밤 8시30분 부산, 한국대표팀의 첫 경기.

대회 1년 전인 2001년, 재수생이란 '신분 제약'을 무릅쓰고 밤을 새워 간신히 구했던 티켓을 덜덜덜 손에 들고, 덜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출발지는 서울). 떨림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나는 오버해서 경기 전날 밤에 한참을 서둘러 부산에 도착했고, 돈 없는 학생이었기에 해운대의 모래를 침대삼아 잠을 청했었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양 시민들의 환호 속에 붉은악마 무리와 함께 부산 거리 응원을 펼치며 결전의 장소, 부산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서의 내 자리는 정말 '겁나게' 좋았다. 붉은악마 응원석 중앙 앞줄. 그간 축구장을 몇 번 기웃거려 봤다지만 이렇게 좋은 응원 자리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월드컵 경기인데!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단지 수사가 아닌, 정말로 12번째 선수가 된 듯하다. 경기장의 응원석에 들어와 있단 이유로 경기장 밖에 있는 '국민' 수만 명을 대표하는 느낌이다. 경기시작 몇 시간 전인데도 경기장내 응원은 이미 뜨겁다. 아, 그리고 나의 가까운 왼쪽에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흥겹게 꽹과리를 쳐댄다. 경쾌한 사물놀이까지 펼쳐지니, 지화자 좋구나! 그러나, 그때 난 몰랐다. 차마, 미처. 그 꽹과리 소리가 내 애증의 서곡이었을 줄은!

월드컵 첫 승의 감동 그리고 내 생애 최고의 선물

삑- 드디어 킥오프! 3-4-3 전술을 들고 나온 한국팀. 월드컵 본선보다 어렵다는 유럽예선을 가볍게 통과한 폴란드를 맞아, 과연 월드컵 도전 48년 만에 첫 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2002 월드컵 폴란드 전에서 왼발 발리슛으로 첫골을 성공시키고 있는 황선홍 선수.
 2002 월드컵 폴란드 전에서 왼발 발리슛으로 첫골을 성공시키고 있는 황선홍 선수.
ⓒ MBC방송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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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26분, 부상당한 이영표를 대신해 나온 이을용이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절묘한 크로스를 올렸고, 황선홍이 이를 더욱 절묘하게 논스톱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 골대 왼쪽 구석에 박힌 공, 골이다! 94 미국 월드컵의 아쉬움과 98 프랑스 월드컵의 안타까움을 그 한 순간에 씻어내듯, 한국 간판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환호의 득점 뒤풀이를 펼쳤다. 결국 후반 7분 유상철의 중거리포 추가골이 터지며 2:0 승! 한국의 월드컵 첫 승! 16강의 청신호! 경기장은 정말 미친 듯 한 환호에 빠졌다. 너무도 큰 흥분이 터지고, 터지고 또 터질듯이 경기장 전체를 숨 막히게 메우고 있었다.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선수들 역시 한껏 상기된 얼굴을 안은 채 붉은악마 응원석으로 다가왔다.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응원단에게 꾸벅 감사의 인사를 했고, 나를 포함한 우리는 당당히 펼친 머플러와 큰 함성으로 답했다. 악! 악! 나는 환호의 소리를 지르는데 바빴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황선홍 선수가 관중석 쪽으로 한발 두발 더 가까이 다가오며 유니폼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앞서도 밝혔듯이, 내가 앉은 자리는 응원석 완전 중앙의 엄청나게 앞줄! 두근두근.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과연 내 삶에도 일어나는 것인가! 마치 황선홍 선수가 내 눈을 보며 다가오는 듯, 그와 내가 정면 일직선상에 서있다.

첫 골의 주인공, 차범근을 잇는 한국의 대표 스트라이커, 내 마음의 영웅! 그가, 월드컵 첫 승을 만들어낸 그 옷을, 생생한 땀이 축축한 감동으로 배어있는 그 옷을, 관중들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그 옷은, 나의 오른손에, 꽉, 쥐어졌다!

애통하도다, 천국발 지옥행 급행열차

아, 믿을 수 없다. 그 순간을 회상하는 지금도 너무 두근거린다. 내 삶에 이런 극적인 순간이 있을 줄이야! 누군가에겐 '오버'스럽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그랬다.

물론 나의 자의적 관점이 반영됐겠지만, 황선홍 선수가 상의를 벗어 던져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막말로 '개떼'같이 몰려들진 않았었다. 그가 옷을 벗고 던지는 건 꽤나 짧은 순간의 급작스런 일이었기에, 그의 앞으로 다가간 건 고작 5명 무리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다고 댓 명이 옷 하나를 잡고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도 펼쳐지지 않았다. 모두가 손을 뻗었지만 그의 옷은 내 오른 주먹에 꽉 쥐어졌고, 나는 나의 오른손을 단독으로 치켜들며 적어도 5초 이상 놀란 함성을 질러댔다. 주변의 내 '라이벌'들은 어느새 물러나 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선물! 살다 살다 느껴본 최고조의 기쁨과 흥분! 사랑해요 황새 황선홍!

월드컵 도전 48년만의 첫승. 황선홍 선수가 전반 26분 선제골을 터트린 후 환호하고 있다.
 월드컵 도전 48년만의 첫승. 황선홍 선수가 전반 26분 선제골을 터트린 후 환호하고 있다.
ⓒ fifaworldc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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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물 나게도,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내 왼쪽으로부터 '무언가'가 달려든다. 경기 중엔 내 왼쪽으로부터 사물놀이패의 '흥겨움'이 날아왔었지만, 이번엔 '흥분한 무언가'였다. 그때 내가 그 '무언가'로부터 느낀 두려움은 군대시절 야외훈련을 나간 깊은 밤에 똥을 누러 홀로 산 속에 자리 잡았다가 멧돼지와 1미터 앞에서 얼굴을 맞닥뜨렸던 두려움과 절묘하게 겹쳐든다.

그 '무언가'는 바로 사람 A씨! 그는 상당히 상기된 얼굴과 숨결과, 목소리로 내 손에 있던 황새의 유니폼을 거칠게 잡아당긴다. 바로 전 여러 명 사이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줄다리기인데, 이제서야 갑자기 줄다리기가 발생했다. 달려든 기세가 가히 엄청나다.

결국 나는, A씨를 당해내지 못했다. 1초 전까지만 해도 바로 내 손 안에 있었던 그 축축한 유니폼, 그는 전리품을 그러잡고 잽싸게 왔던 그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그에게는 줄다리기, 나에게는 강탈.

그때 내 나이 스물. 난 너무 어렸고, 너무 어수룩했다. 내가 좀 더 세상을 알고, 좀 더 세상을 경험했었더라면 그렇게 내 선물을 허망하게 '뺏기진' 않았을 텐데…… 아득바득 버티거나 차라리 싸우기라도 했을 텐데……

그렇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런 기억의 재구성은 지나치게 나의 주관에만 치우쳤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내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을 해주실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멧돼지처럼 나타났다 매처럼 사라져간 A씨를 바라보며 나는 그저 망연자실이었다. 그저 그 자리에 넋 놓고 멍하니 서있었다. 누구 절 도와줄 사람 없나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아저씨,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게 말을 건넨다.

"야~ 됐어, 그냥 일루와 앉어~ 그냥 줘버려~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 나는 어쩌면 그 순간, '삶의 허무'의 5할을 배웠고, '세상이 이상이 아닌 냉혹한 현실주의임'의 4할을 배웠다.

어쨌든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 아저씨가 보이신 반응과 그날 함께 경기장 옆자리에 있었던 내 친구의 반응 - 지금도 만나면 그때 "너가 억울했다"를 넘어 "우리가 억울했다"라고 회상하는 반응을 생각해 본다면, 나의 '주관적'인 이 글의 내용에 '객관성'이 조금은 보태질 수 있으려나.

아무튼, 그랬다. 나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천국발 지옥행 급행열차. 이건 단순한 관용구 수사가 아니다. 이해가 가겠는가. 축구에 미쳐 살던 나, 월드컵 첫 승, 그 현장, 그 감동의 순간. 그럼에도 난, 기쁘지 않았다.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왜 그토록 기다리던 월드컵 첫 승의 순간에 나는 기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유니폼을 향한) 내 개인의 욕망과 집착 때문에 (월드컵 첫 승이라는) '우리'의 기쁨을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안의 아집을 떨쳐내고, 이 순간 함께 첫 승의 뒷풀이를 즐길 수는 없을까.

아마도 '전국민'이 기뻐했을 그 순간에, 나는 수도승의 고뇌에 빠졌다. 황선홍 선수의 유니폼과 함께 내가 느낀 첫 승의 감동은 그렇게 증발해버렸다.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란 말의 씁쓸함

내 마음의 지옥의 밤을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떴다. 이제는 욕망과 집착이 좀 가라 앉았으려나. 그러나 하늘에 해가 떴듯, 내 마음 속에는 '유니폼'이 떠버렸다. 아, 다시금 성직자의 고뇌.

당시는 떠나간 사랑의 아픔보다 떠나간 '유니폼'의 아픔이 훨씬 애절했고 따라서 당시의 고뇌를 담아 쭉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며, 누군가가 공감해주길 바라며.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인터넷공간이 지금과 같이 활발하진 않았으며, 난 그 활용방법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나의 글을 올렸던 곳은 단지 붉은악마 자유게시판. 언제인가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너무 오래전 글이라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당시에 글을 쓰던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더한다. 이번엔 과연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려나, 과연 누군가가 공감해주려나. 모르겠다.

2002년 월드컵, 6월 4일, 부산, 폴란드전, 황선홍의 골, 한국의 첫 승, 스무 살의 나.
그 시절 그 때, 황선홍이 벗어던진 유니폼 상의. 무엇보다도 내 생에 최강 환희의 선물 그리고 동시에 최강 좌절의 선물. 그래도 그 기억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해왔는데,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결단코 쉽지 않은가 보다. 나는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일뿐인 것이다.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 씁쓸함이 입안을 감돈다.

A씨께 보내는 쪽지

"A씨, 안녕하세요. 이미 한참 지난 일을 가지고 왜 굳이 지금 언급하는지, 기분이 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넓은 마음으로 제 안에 똬리 튼 욕망과 집착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씨, 그냥 한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괜찮으신지요?
황선홍 선수의 유니폼을 선생님의 손에 쥐게 되신 그 순간, 어떠셨습니까, 어떤 감정이셨습니까? 선생님께는 기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나와의 '추억'을 깡그리 잊으셨습니까?

저는 당신으로부터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란 씁쓸함을 배웠습니다. 약속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아랫세대들에겐 '인생이 원래 다 그런거야~'란 말이 결코 대물림되지 않도록, 그런 삶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맡고있는 황선홍 선수. 얼마전 FC바르셀로나를 유럽정상에 올린 과르디올라 감독은 1971년생, 황선홍 감독은 1968년생이다. 황선홍 감독도 과르디올라 감독과 같이 멋진 성과를 보여주길 기대하며, 응원한다.
 지금은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맡고있는 황선홍 선수. 얼마전 FC바르셀로나를 유럽정상에 올린 과르디올라 감독은 1971년생, 황선홍 감독은 1968년생이다. 황선홍 감독도 과르디올라 감독과 같이 멋진 성과를 보여주길 기대하며, 응원한다.
ⓒ 부산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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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잊지 못할, 내 생에 가장 극적인 선물, 황선홍이 던져준 유니폼! 그 시절 그 땐 그렇게 날 울렸는데, 지금은 이렇게 묘한 웃음을 준다. 황선홍 감독님, 부산 아이파크 경기 응원가면 손수건 하나라도 다시금 던져주시겠습니까? 이번엔 결코 '기쁨'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 응모글



태그:#황선홍, #월드컵, #2002, #폴란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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