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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행렬에 참여하러 가는 길, '소심인'(가명)씨는 시청역 지하철 입구를 빈틈없이 막고 서 있는 전투경찰들을 보고 머리가 멍해진다. 어느 방송 인터뷰에 나온 다른 시민도 그와 같은 느낌이었는가 보다. 너무 기가 막혀 나온 한 마디,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었던 그 길을 경찰이 방패를 들고 막아섰다.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불법시위로 번질 수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한다. 설명을 들었으니 이제 이해가 가야 하는데 오히려 더 화가 난다. 평소에는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협조를 잘하는 나 인데, 오늘은 어쩐지 양보해주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 소심인씨, 경찰 방패에 가로막히다

24일 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앞에서 촛불을 든 한 추모객이 서울광장을 원천봉쇄한 경찰들앞에 서 있다.
 24일 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앞에서 촛불을 든 한 추모객이 서울광장을 원천봉쇄한 경찰들앞에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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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라도 화풀이하고 싶다만 조용히 품위있게 삭히기로 한다. 나는 법을 어기는 것을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소심인'이지 않던가.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배웠으니, 차라리 법에 물어보자. 내가 무엇을 이해하지 못해 화가 나는 것인지 법 어딘가 설명해 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헌법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그래, 이건가 보다. 나에게는 집회의 자유가 있고, 나는 그 자유를 방해한 사람들에게 화가 난 것인가 보다. 그런데 어라? 헌법을 조금 읽어 보니 국민의 자유가 질서유지를 위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단다.

헌법 제37조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흠, 헌법에 보장된 자유도 제한될 수 있단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면, 나도 아마 질서유지를 외쳤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구호 있지 않은가. "자유는 방종이 아닙니다!"

조문 위한 나의 자유를 질서유지 위해 제한?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분향소 주변과 서울광장을 여전히 차벽으로 에워싼 경찰의 '조문 방해'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분향소 주변과 서울광장을 여전히 차벽으로 에워싼 경찰의 '조문 방해'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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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쩐지 아까부터 올라 온 화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궁금해진다. '지하철을 타고 내려 저 입구를 통해 덕수궁 앞으로 걸어가서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고 절을 하고 오려고 한' 나의 자유가 그 '질서유지'를 위해 제한되도 괜찮은 걸까? '필요한 경우 법률로서 제한한다'니, 그럼 한 번 그 법률이란 걸 살펴보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조 (목적) 이 법은 적법한 집회(집회) 및 시위(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호라,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란 법, 국민의 "적법한 집회를 최대한 보장" 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란다. 내 식으로 단순히 이해해 보자면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 없으면 국가는 내 집회를 도와주거나 좋지 않은 시위로부터 나를 보호해 준단다. 그럼 오늘 내가 조문하러 가는 길은 적법인가 위법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 집시법에서는 뭐라고 하나 한 번 보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5조 (집회 및 시위의 금지) ①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집회나 시위를 주최하여서는 아니된다.
1.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
2.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

내가 함께 하려고 하는 조문행렬이 위의 1번은 분명히 아니고, 그렇다면 2번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일까? 나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려 저 입구를 통해 덕수궁 앞으로 걸어가서 국화꽃을 놓고 영정 앞에 절을 하는 것'이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일인 걸까?

내 주변의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조문 행사는 적법인 걸까? 그런데 왜 경찰들이 나를 막고 있을까? 

정작 나를 위협하고 방해하는 사람은 경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5조 (적용의 배제)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는 제6조부터 제12조까지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집시법 15조를 보니, 이런, 알고 보니 쓸데 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지하철을 타고 내려 저 입구를 통해 덕수궁 앞으로 걸어가서 국화꽃을 놓고 영정 앞에 절을 하는' 계획은 아무래도 집회를 통제하는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은 '의식' 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아니면 '관혼상제'?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저 경찰들은 나의 "적법한 집회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길을 막고 있는 것일까? 아,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미궁으로 빠져든다. 

제3조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방해 금지) ①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집시법 3조를 보니 평화로운 집회를 폭행이나 협박이나 다른 방법으로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많은 경찰들이 이렇게 나와, 나같은 시민들이 내가 방해받지 않고 평화롭게 조문행렬에 참여하다가 가도록 해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고맙기는 한데, 왜 경찰은 오히려 내 길을 막고 먼 길을 돌아가게 방해를 하는 걸까? 그것도 무시무시한 방패를 들고 내 앞에 서 있다. 더 이상한 것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 보아도 경찰들 말고는 정작 나를 위협하고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상하다. 법을 들여다 보아도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고 되려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도대체 뭐가 적법하고 뭐가 위법한 걸까? 집시법 5조 2항을 다시 들여다 보니 더 알쏭달쏭하다.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가 위법이라니, 어라? 근데 미래형이다.

이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정부에는 미래는 예견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것 같은 전문가가 고용되어 있나 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얼굴만 보고도 내가 뭔가 잘못할 것이 "명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쫓겨나고 딱지떼고 철창갈 날이 오려나 보다. 이런, 오늘 벌써 시청역 지하철 입구에서 쫓겨나지 않았는가?

국민이 주지 않은 권력은 당신들에게 없다

24일 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켭켭이 둘러싼 경찰 차벽에 격분한 조문객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24일 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켭켭이 둘러싼 경찰 차벽에 격분한 조문객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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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돌아 다른 출구로 쫓겨 나가는 길에 나는 마침내 분노한다. 그들이 나의 이해의 선을 넘어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질서유지, 공공의 안녕을 위해 때때로 기꺼이 자유를 내어 놓을 수도 있는 나에게, 법으로도 무엇으로도, 오늘 그들은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당신들이 나의 앞길을 막아선 명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의 동의없이, 허락없이 나의 자유를 빼앗았다. 그렇게 마음대로 행동하는 당신에게 나는 화가 난다. 내가 허락한 국가경찰의 임무는 국민의 보호이고나는 분명히 그 권한을 남용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경찰법 제3조 (국가경찰의 임무) 국가경찰은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범죄의 예방ㆍ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의 수집, 교통의 단속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그 임무로 한다.
경찰법 제4조 (권한남용의 금지) 국가경찰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정중립을 지켜야 하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

그래 이제 알겠다. 내가 당신에게 화가 나는 것은 당신이 당신의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으로서 내가 당신에게 시킨 일을 두고, 당신은 내가 시키지 않는 일을 제멋대로 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무기와 방패를 주었더니 당신은 내 앞을 막아섰다. 당신의 역할을 잊고 나에게 도전하는 당신에게 나는 분노한다.

헌법 제1조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당신에게 모든 권력이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들 때 조심하라. 국민이 주지 않은 권력은 당신에게 없다.

덧붙이는 글 | 국내법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 작성한 글입니다. 더욱 정확한 법 해석이 있을 줄 압니다. 다만, 법이란 것이 국민이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이상과 서로에 대한 약속을 문서화한 것이라고 볼 때, 한 시민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법은 분명 옳지 않은 법이라 생각합니다. 법을 만드는 주권도 국민에게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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