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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잠들지 않습니다

 

                            나는 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

                            나는 눈 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나는 무르익은 곡식 비추는 햇빛이며

                            나는 부드러운 가을비입니다

 

                            당신이 아침 소리에 깨어날 때

                            나는 하늘을 고요히 맴돌고 있습니다

                            나는 밤하늘에 비치는 따스한 별입니다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죽지 않습니다

 

                                                           -시,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점심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인이 된 사실을. 하루 종일 TV를 통해 그의 서거 뉴스를 들으며, 또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을 보며, 한 편의 시가 생각났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열 두 줄의 짧은 이 시는 누가 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의 장례식에서 존 웨인이 낭독하였고,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25주기 기일 때에도 이 시는 낭독됐다. 그리고 미국 9.11 테러의 1주기에서, 테러로 부친을 잃은 11살의 소녀가 이 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낭독해 듣는 이들의 가슴을 뭉쿨하게 했다.

 

시인 신현림은 이 시를 소개한 같은 제목의 에세이집에서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떠나간 사람을 추억하고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생과 죽음의 시'라고 말했다.

 

한때는 다이아몬드였고, 한때는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었으며, 또 한때는 밤하늘에 비치는 따스한 별이기도 했던 사람. 이제 그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

 

유서에서 노 전 대통령은 화장을 부탁했다. 본인 뜻을 존중해야 하지만 작고 따스한 봉분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생전 순탄치 않았던 그의 삶 탓일까...

 

                            무덤이 되고 싶다

                            잘 태어나는 일보다

                            잘 죽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죽은 목숨

                            둥그렇게 껴안고 잡초

                            따뜻한 피 피워올리는

                            봉분이 되고 싶은

 

                            봄볕.

 

                                                           -김경미의 시, <무덤>


태그:#추모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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